순창 출신 김경숙 작가 '걸똘마니들'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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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출신 김경숙 작가 '걸똘마니들' 발간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3.06.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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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 다룬 장편소설, “한국 현대사의 참혹한 현장 기록”

 

5·18문학상 수상 김경숙 작가

이 소설을 쓰기 전, 그 바다에 갔었다. 파도는 험준한 산을 오르듯 치솟았다가 내리막을 달리듯 급물살을 탔다. 탄식을 사그라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해 보였다. 파도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항쟁을 배경으로 이념의 폭력에 희생된 민중들의 아픔을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었다.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슬픔이 없길 바라며. 작가의 말을 쓰며, 쓰고 지우고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아마도 소설이 아닌 나이기에 그러하리라. 글을 쓰는 동안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은 젊고, 몸은 늙어간다. 뭔가 행복하다고도 느낀다. 아주 드물게.”

19805월이 남겨놓은 시대의 아픔을 소재로 한 첫 작품집 <아무도 없는 곳에>를 지난 2015년에 펴내며 5·18문학상을 수상했던, 순창 출신 김경숙 작가가 이번에는 19484월의 제주를 조명한 장편소설 <걸똘마니들>을 지난 526일 펴냈다.

 

밥을 얻어먹는 아이 걸똘마니

김경숙 작가는 <걸똘마니들>작가의 말에서 위와 같이 고백했다. 소설의 제목 걸똘마니밥을 얻어먹는 아이를 이르는 은어.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인 걸똘마니시장터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와 거렁뱅이 아이들, 제주도를 휩쓴 이념의 폭력 속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가라며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해미의 감은 눈 속으로 어린 시절 걸똘마니들이 보였다. 걸똘마니들의 차림새는 상여를 메고 가는 상여꾼 같았다. 새끼줄을 이마에도 허리에도 두르고 있었다. 찌그러진 양푼과 수저를 새끼줄에 차고 있었다. 더벅머리는 까치집 같았고, 얼굴색은 진흙을 발라놓은 것처럼 구릿빛이었다. 기워 입은 누더기. 그 사이로 삐져나온 팔과 다리는 살을 발라놓은 생선 뼈처럼 앙상했다.

그렇지만 새까만 눈동자만은 초롱초롱 빛났다. 하나같이 앙상하여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우나, 자세히 보면 각자 특색이 있었다. 얼굴 가득 버짐이 핀 광조, 눈 밑에 콩알만 한 사마귀가 난 태수, 골격은 크나 풍채 값도 못 하고 얻어터지기만 하는 울보 덕배, 찌그러진 함지박 안에 새끼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자는 송이, 왼쪽 귓가에 앵두알만 한 점이 있는 쌍둥이 형제 남수와 해미의 모습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국가 폭력

작품은 제주 4·3사건에 휘말린 한 가족의 증오와 용서,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참혹한 현장을 기록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국가 폭력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있다.

조선은 해방됐어. 우리는 나라를 되찾은 거라고. 난 되찾은 나라를 식민 교육 노예들에게 맡길 수 없어. 지금 섬에는 식민 교육 노예들이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하고 있어. 노부유키가 한 말처럼 되고 있다고. 노부유키의 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인지 나는 이곳에서 실감하고 있어. 헐뜯고, 음모하고, 누명 씌우고, 죽이고 있다고…….

! 날 설득하려 하지 마. 형은 언제나 그랬지. 할머니가 우리 때문에, 아니, 나 때문에 경찰서에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도 형은 지금처럼 말했어. 이럴 때일수록 법을 지키자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자고. ! 법은 희망이 없어. 약자의 편이 아니니까. 죄인을 잡아야 할 경찰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죽이고 있으니까. ! 비록 나를 버린 고향이지만 내 고향이 피로 물들고 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

작가는 폭력과 희생, 가학과 인고, 핏빛 역사로 얼룩졌던 제주의 그 날을 작품에 불러낸다.

김경숙 작가. 1967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첫 작품집 <아무도 없는 곳에><그녀들의 조선>(공저)을 펴낸 바 있다. 서울시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문학 나눔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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