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고례마을 ‘정문등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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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고례마을 ‘정문등 소나무 숲’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1.12.2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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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마을 숲 이야기 경진대회서 ‘장려상’

▲ 조선시대 문관 설휘와 그의 아내 옥천조씨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정문등 소무나 숲.

금과면 고례리에 있는 정문등 소나무 숲이 산림청에서 공모한 마을 숲 이야기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에 선정됐다.

정문등 소나무 숲은 조선 후기 1등 생원시험에서 3위에 오른 뒤 통덕랑(정5품 최고위직)까지 올랐던 설휘가 일찍이 병사하자 아내 옥천 조씨가 그를 따라 1년 뒤 자결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기리고자 마을 주민과 지역 유생의 요청으로 조정은 고례리 소나무 숲에 전각을 지어줬고 이를 정문이라 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곳 숲의 이름을 ‘정문등’이라고 불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숲이 장려상을 받는 데는 고례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양장희(73) 전 군의원의 역할이 컸다.

각종 설화와 기록을 정리해 응모한 양 전 의원은 죽어가던 정문등 숲을 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길게는 3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이곳 소나무 숲은 원래는 인근의 논까지 퍼져있어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폭우와 낙뢰를 맞은 소나무들이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숲의 규모도 점차 줄었다. 지금의 규모는 경지정리를 하면서 확정된 것. 양 전 의원은 자신이 마을이장을 맡던 지난 1977년, 소나무 뿌리를 땔감용으로 쓰는 행위를 금지하고 경운기 350대 분량의 흙을 이곳에 메워 소나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에 더해 고례리 출신으로 교직에 몸담았던 석관 최순성(작고) 선생이 정년퇴임 후 사비를 털어 정자를 건축하면서 정문등 소나무 숲은 주민 휴식공간으로 발돋움했다. 이곳의 체육시설은 양 전 의원이 의정활동 시절 설치했다.

숲이 아름다워지자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최옥선(72ㆍ금과 고례)씨는 “여름 복달임이나 유치원, 종교인 소풍이 이어졌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 작가들도 찾았다. 주민들은 운동도 하고 정자에서 회의도 한다. 마을의 명물이 됐다”고 말했다.

정문등 소나무 숲은 김영삼 정부 당시 국가소유로 넘어갔다가 주민소송 끝에 다시 마을 소유로 되찾아온 전력도 있다. 또 김삿갓 시인이 방문했을 때 마을에 예가 없다고(無) 명패에 썼던 문구는 주민 상의 끝에 있다(有)로 바꾼 일화도 있다. 고례리의 어원은 늙은 스님이 예불하는 곳이라는 ‘고승예불’에서 따온 것으로 마을 뒷산의 형상과 마을 모습의 조화를 표현했다. 또 우물이 3곳이나 돼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으니 예의를 무시할 정도로 팍팍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이 숲 가꾸기에는 주민모두가 참여해 제초작업과 꽃 가꾸기 등을 하고 있다. 양 전 의원은 “소나무는 저절로 크는 게 아니고 주민 모두가 가꿔야 자란다. 앞으로 이곳에 한송(한국 소나무)를 더 많이 심고 싶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이 숲에 얽힌 사연들을 마을 숲 이야기 책자에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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