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일 전 읍장]매년 오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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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전 읍장]매년 오는 손님
  • 강성일 전 읍장
  • 승인 2023.09.13 09: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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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전 순창읍장(금과 아미)

9월이 되니 무더위가 조금은 가셔 밭에 나가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긁히거나 벌레에 물리는 건 흔하다. 그래서 연고와 일회용 반창고를 응급으로 사용하는데 매년 한번씩은 상태가 심각해서 병원에 간다. 부위도 해마다 다르다.

한해는 뭣에 쏘였는지 얼굴이 찐빵처럼 퉁퉁 부었고 한해는 발이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작년에는 풀독이 올라선 지 온몸이 가려워 병원에 갔더니 피부가 예민해서 그런다며 치료를 받았다. 헌데 올해는 손이 많이 부어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갔다.

7월초였다. 밭에 퇴비를 넣기 위해 손수레로 운반을 했는데 오른쪽 손목을 어디서 긁혔는지 피부가 약간 벗겨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연고를 바르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처 부위에서 진물이 나와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고 밭에 가서 풀을 뽑았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부기가 심해서 손목이 젖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일요일이라 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께선 상태가 심각하니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지금까지 경험으론 의료원에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큰 병원으로 가라 하니 심란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손이 빨간 토마토처럼 붓고 진물이 계속 흘러 시키는 데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데 장마비가 억수로 내려 마음까지 후줄근했다. 응급실에선 나를 앉혀두고 젊은 의사 간호사 등 5~6명이 둘러싸고 여러 가지를 물어 봤다. 마치 중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단 여러 가지 검사를 시켰다. 소변 검사, 피검사, 진물검사, 엑스(X)레이 촬영, 시티(CT)검사까지상처에 비해 검사가 많다고 생각은 했지만 죄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고분고분 따랐다.

응급실에는 환자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데 내 옆 자리엔 위 통중이 있어 오셨다는 할머니는 연신 투덜댔다. 수액이 너무 늦게 떨어진다의사는 언제 오냐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냐등등 계속 불만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다 피 검사를 하라는 간호사 말을 듣더니 아까 했는데 몇 때롱이나 뽑냐며 여기 있다간 쌩병이 나겠으니 그만 보내 달라고 했다. 괄괄한 성격이셨다.

간호사는 피를 또 뽑는 건 용처가 다르다면서 의사께서 퇴원을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도 편치 않은데 옆에서 푸념을 듣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노인이 보호자도 없이 혼자 응급실에 오니 불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하여 도와 드리고 싶었지만 나도 아는 게 없고 급박한 응급실 분위기에 눌려 나서지 못했다.

검사로 오전을 보내니 오후에 감염 내과와 피부과 의사가 와서 상처를 보고 약을 처방한 후 매주 금요일에 와서 진료를 받으라 했다. 3주 동안을 꼬박 다녔다. 점차 물집도 없어지고 부기도 빠지면서 딱지가 지고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는데 보기 흉해서 외출은 않고 집에만 있었다.

매년 피부 질환을 겪으면서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넘어갈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나에게는 사단이 난다. 농촌 생활의 신고식이자 예방 주사라 생각한다. 치료가 끝날 때 쯤 대학병원에서 카톡으로 응급실 만족도 설문 조사가 왔다. 20여개 항이 주로 의료진의 친절도에 관한 걸로 구성돠어 있는데 마지막엔 바라는 사항을 말해 달라고 했다. 옆에 계셨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응급실에 상담 인력을 배치하여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응급실은 야전 병원처럼 의료진들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고통, 신음 소리가 옆에서 들려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워 부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한 서비스는 환자를 궁금케 하지 않는 것일 거다. 시설 이용과 상황 대응에 서툰 장년, 노인들에겐 꼭 필요하다고 본다. 목마른 사람에겐 물이 우선이고, 부채는 그 다음이다.

한 달 이상을 꼬박 집에만 있었다. 직장 다닐 땐 쉬면 괜히 불안했는데 이젠 백수로 이력이 붙었는지 그냥 그냥 지냈다. 그 사이 풀은 무성하게 자랐고 우리집에서 사는 길냥이는 새끼를 4마리나 낳았다.

자연은 기어이 살아내고 줄기차게 번성한다.

강성일 전 순창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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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2023-09-13 13:20:23
읍장님!

내년에 그 손님이 길을 잃어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종이에다 대놓고 말하는 것처럼
술술 익혀지는 글입니다.

또 글 따라가며서
읍장님의 고생과 저항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간간히
정감가는 우리순창에서 주로 쓰는 말도
너무 좋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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