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충권 회장님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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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충권 회장님 추도사
  • 이선형
  • 승인 2023.09.20 09: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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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형 (유등 금판마을)

김충권 회장님, 향년 77, 아직은 아까운 연세에 서둘러 우리들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영정사진 속 회장님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로 위로를 건네시는 듯하지만, 그 형형한 눈빛은 여전히 참 농민세상을 위한 미완의 과제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심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회장님은 해방의 감격과 새 조국 건설의 혼돈이 교차하고 있는 시기에 태어나셨고, 이어서 6.25전쟁과 그 이후의 참화 속에 유년기를 지나, 모질고도 참담한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셨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시고 곧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이후에 중학과정을 고등공민학교 체계로 겨우 마치실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풍산면 소속 향토방위병으로서 군 생활을 마치고, 인천 연안부두의 하역노동자 생활 등을 이어가다 결혼 이후 귀향하여, 농투산이로의 길을 돌아가실 때까지 유지하셨습니다.

이렇듯 김충권 회장님은 빈농의 자식이었고, 소농이었고, 민중이었습니다. 오늘날 농지를 1,500평 미만으로 소유하고 있는 농가가 전 농가의 67%에 달하고,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의 호당 평균이 1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농가 평균 소득이 도시 노동자 평균 소득의 60% 미만이라는 처참한 농촌 현실 속에서, 회장님은 평생을 빈소농과 함께 하셨습니다.

쌀을 비롯한 농축산물의 가격보장을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셨고, 의료보험 개선과 부당 수세철폐를 온몸으로 이끌어내셨습니다. 농협을 개혁하기 위해 피를 토하셨고 철옹성 같은 행정과 경찰 권력의 권위주의에 맞서 농민이, 민중이, 세상의 주인임을 당당히 밝혀나가셨습니다.

또한 회장님은 전 세계적 기후위기 속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줄 유일한 희망인 친환경농업과 친환경 축산에도 힘쓰셨습니다. 언젠가 축사에 방문했을 때, 친환경 톱밥 발효축사에서 허리 이상 높이의 돈분을 쇠스랑과 삼태기로 손수 퍼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요령과 얄팍한 상업주의가 아닌, 원칙과 정직한 땀으로 참다운 소농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 때의 돈분 가스가 회장님의 폐 기능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충권 회장님은 농민적 이익에 단호하고 원칙적이셨지만 반면에 평생을, 정신적인 여유로움과 낙관적 삶의 자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회장님이 술 한 잔 하시면서 당신의 과거 얘기를 꺼내실 때 빠지지 않는 말씀이, “내가 비록 방위병으로 군역을 마쳤지만 이 땅에 방위가 생긴 이래 어떠한 외적의 침입도 없었어이십니다. 힘들고 팍팍한 군 생활 속에서도 위트와 자부심이 넘치는 얘기로 기억됩니다.

또한 KBS 시청료 거부투쟁과정에서 난시청 여부를 판단하러 두승리를 방문한 관계자들에게, 한겨울에도 푸르게 잘 자라고 있는 미나리를 가리키며 당신들도 미나리 본 시청료 내라고 하여 주위의 폭소를 자아냈지요. 이는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광주학살자들의 만행과 비리를 감싸는데 혈안이 된 당시 KBS 어용방송에게 주는 날카로운 일침이었습니다.

중국산 식용 쌀이 대한통운 트럭을 통해 순창으로 입고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과정에서도 회장님은 큰 활약을 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순창경찰서에 연행되어 회원들이 석방요구투쟁을 경찰서 앞에서 진행하고 있을 때인데, 회장님이 굳게 닫힌 경찰서 정문 너머로 당신의 신발 한 짝을 던지셨답니다.

나중에 원만히 합의가 되어 농성을 해산하기로 했는데 회장님은 내 신발 내놓으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아서, 결국 경찰 측에서 새 신발을 구해드렸다고 합니다. 살벌하고도 긴장된 투쟁의 현장 속에서도 회장님은 신발 한 짝으로 회원들의 웃음과 여유 되찾아 주신 겁니다.

이렇듯 치열한 회장임의 삶 속엔 박미순 사모님과 영문, 영란 두자녀의 기쁨과 고통이 항상 함께 해왔습니다. 생전에 회장님이 사모님을 지칭할 때 우리 부인이라 하시며 항상 존중의 자세를 유지하셨고 사모님도 논밭에서, 축사에서, 각종 농민회의 투쟁 현장에서 회장님의 그림자처럼 늘 함께 하셨습니다. 덕문, 영란 두 자녀도 아버님의 성실함과 기개를 이어받아 대상주식회사에서 인정받는 일꾼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김충권 회장님을 보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회장님이 생전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확고한 원칙과 여유로운 낙관성그 정신은 윤석열 검찰 독재권력을 물리치고, 의혹투성인 채로 골프장 신설과 추모공원을 획책하는 지역 토호 세력들을 극복하게 하는 크나큰 힘으로써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회장님의 미완의 꿈인 참된 농민세상, 통일세상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으로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김충권 회장님!

이제 새로운 세상에서 산소호흡기 없이 자유롭게 호흡하시며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들 보내시길 빕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상향)

2023918

 

생전 김충권 회장님
생전 김충권 회장님
생전 김충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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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2023-09-21 11:36:05
삼가
김충권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35년전 순창지역 교육개혁운동에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주신 과정을
잊을 수 없었고

무척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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