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순창의 판소리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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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순창의 판소리 명창’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3.10.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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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판소리 역사를 집대성한 순창의 판소리 명창(최동현, 순창문화원, 2023)이 발간되었다. 책 집필은 순창 판소리 복원을 염원하는 군민의 소망을 순창문화원 박재순 사무국장이 최동현 군산대학교 명예교수에게 의뢰하면서 시작되었다.

필자 최동현 교수는 순창은 판소리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쇠락하여 흔적조차 없고, 그러한 사실마저 잊혀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순창 판소리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책은 제1부 판소리 역사와 제2부 순창 판소리 명창들로 구성되어 있다. 2부 순창 판소리 명창들에서는 현재 활동 중인 소리꾼들을 포함해 스무 명에 가까운 명창들을 다루고 있다.

19세기 전기8명창 중 한 사람인 주덕기 명창, 서편제 창시자 박유전 명창, 또 다른 동편제 시조 김세종 명창, 남원판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장재백 명창, 곡성과 순창을 오가며 활동한 장판개 명창과 그 제자이자 반려자였던 배설향 명창, 일제강점기 최고 여류명창 이화중선과 그와 인연 깊은 장득주와 장득진, 곡성과 금과에 인연 깊은 한애순 명창, 복흥 출신 성점옥(성운선) 명창, 박복남 명창과 후예들(박미선, 박종호), 장판개 명창의 아들 장영찬 명창 등 순창 출신 소리꾼들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필자 최동현(崔東現) 교수는 순창 출신으로 전북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군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오랫동안 판소리 연구에 전념하여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민속원·2010), 명창 이야기(신아출판사·2011) 70여 권의 저서와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시집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를 냈다. 판소리학회 회장, 전북작가회의 회장, 전북민예총 회장, 전라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마당 이사장을 맡고 있다.

순창은 본래 음악 전통이 깊었던 곳도 아니고, 유명한 소리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박유전(朴裕全)과 김세종(金世宗)이라는 걸출한 대가(大家)가 출현하면서 갑자기 우리나라 판소리 중심지가 된다. 우리나라 판소리를 이끌었던 순창 소리꾼들은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안타깝게도 순창지역에 자신들의 소리를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소리는 다른 지역에서 더 활발하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박유전의 소리는 근거지를 전라남도 보성지역으로 옮겨서 이른바 강산제 판소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김세종 판소리 또한 보성소리에 합쳐져서 현대 <춘향가>를 대표하는 소리가 되었다. 장재백은 말년에 남원으로 거주를 옮기며 송흥록·송광록 이후 남원판소리 중흥에 크게 기여했다. 순창과 곡성에 걸친 장판개 집안의 소리는 동생 장도순과 장도순의 딸 장월중선, 장월중선의 딸 정순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순창판소리는 현재 판소리 최대 세력인 보성판소리와 남원판소리의 뿌리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므로 현재 전승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 판소리는 순창판소리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제 다시 판소리를 부흥시켜 옛 영광을 되찾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최동현 교수가 발간한 순창의 판소리 명창에 수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판소리사에 한 획을 그은 순창 출신, 또는 순창에서 활동한 명창들을 살펴보았다.

 

1. 주덕기

순창과 관련된 판소리 명창으로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주덕기(朱德基)이다. 그는 담양 출신으로 알려진 19세기 전기8명창 중 한 사람이다. 송흥록과 모흥갑의 고수로 있다가 소리를 배웠다. <적벽가>를 잘했고, 더늠은 적벽가 중에서 조자룡이 활 쏘는 부분이다. 19세기 중반 무렵 순창에서 살면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 박유전

박유전(朴裕全·1835?1906?)은 순창 출생 소리꾼 중 판소리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명창이다. 서편제 판소리라고 하는 새로운 양식의 판소리를 개척해 후세에 전한 명창이기 때문이다.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동서(東西) 유래는 송흥록 법제를 표준으로 남원·운봉·순창·곡성·구례 등지를 동편이라 하고, 박유전 법제를 표준으로 광주·나주·보성·강진·해남 등지를 서편이라 하였으며, “서편조(西便調)의 분류(分流)가 박유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박유전을 서편제 시조라고 일컫는 것은 평조·우조(평온하고 남성적인 가락) 위주의 동편제 소리와는 다른 계면조(슬픈 가락) 위주의 서편제 소리가 박유전에 이르러 기본 골격이 완성되었고, 그의 소리 양식이 서편제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유전은 25(?) 때 전주부 통인청대사습에 나가 <심청가>로 장원을 차지해 일약 유명 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라감사 주선으로 상경해 흥선대원군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본바탕을 서편제 소리로 채운 후, 운현궁에서 대원군과 좌상객을 상대로 소리를 다듬었다. 세마치장단을 비롯해 여러 장단을 다양하게 운용하고, 정연한 붙임새 기교를 더해 새로운 음악 양식을 개발했다. 그것이 이른바 그의 호를 따서 강산제(江山制)’라 불렀다.

박유전을 지극히 총애했던 대원군이 1873(임오군란 후) 청나라로 압송되자, 박유전은 고향 순창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당시 전라도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던 나주로 내려갔다. 박유전은 나주 부근에서 상당한 재산이 있던 소리꾼 정재근을 만난다. 정재근은 박유전을 모시고 전남 보성군 보성읍 강산리로 이사한다. 박유전은 보성에 정착한 후에 다시 새로운 소리의 지평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정재근은 박유전에게 배운 소리를 친조카 정응민에게 전한다. 이 소리가 이른바 '보성소리'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박유전의 소리는 계보상으로 이날치와 정재근, 정창업에게 이어졌다. 이들 소리를 싸잡아서 통칭할 때는 서편제라고 하고, 오로지 정재근에게 이어진 소리만을 가리킬 때 강산제라고 한다.

 

3. 김세종

김세종(金世宗·?1898?)은 조선 후기 헌종·철종·고종 3대에 걸쳐 활약한 후기8명창의 한 사람으로, 순창이 낳은 동편제 명창이다.

김세종은 신재효와의 관계로 유명하다. 신재효는 소리꾼은 아니었지만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고 판소리 창자 교육과 후원에 힘쓴 판소리 활동가였다. 신재효가 집에 소리청을 만들어 수많은 소리꾼을 후원하고 길러낼 때, 이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동편제 명창 김세종을 초빙했다. 김세종은 신재효의 지침을 받아 판소리 이론을 확립하고, 장자백·김찬업·이동백·이선유 등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신재효가 길러냈다는 최초의 여성명창 진채선의 소리선생 역시 김세종이었다. 신재효는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을 축하하기 위해 진채선을 서울로 올려보냈는데, 이때 서울로 진채선을 데리고 가서 대원군에게 소개한 사람 역시 김세종이었다.

또한 그는 판소리사에서 <춘향가>를 남긴 명창으로 유명하다. 김세종에게서 김찬업으로 이어진 <춘향가>는 정재근을 거쳐 보성소리로 흘러들었고, 정응민이 이를 이어받아 김세종판 <춘향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춘향가>가 되어 있다. 현재 연행되고 있는 판소리 <춘향가>의 대부분은 김세종 판소리 영향권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4. 장재백

장재백(張在伯·18721907)은 순창 출신으로, 19세기 후반 순창과 남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후기8명창 중 한 사람이다. 동편제 판소리 대가였던 순창 출신 김세종 명창 제자이다. 풍신(겉모양)이 잘나서 미남자로 유명했다.

장재백 가계는 남원과 순창 일원의 판소리 명창들과 혈연으로 이어지면서, 이 지역 판소리를 면면히 잇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장재백이 남원으로 이주하면서 남원판소리는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반면, 순창은 몰락하게 된다. 장재백 한 사람의 움직임이 이렇듯 커다란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보면, 인재를 지키고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5. 장판개와 배설향

장판개(張判盖·1886~1938) 일가는 곡성과 순창을 오가며 예인들을 가르치며 살았으며, 장판개 집안은 대대로 곡성과 순창 일대 굿판을 관할했다. 그는 수리성(후천적으로 닦은 목소리)보다는 천구성(타고난 목소리)이 남달랐고, 상성부 통성에는 힘이 넘쳤다고 한다.

아들 장영찬 명창은 창극 스타로 크게 활약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07년 장판개-장도순-장영찬-장월중선-정순임으로 이어지는 그의 가계를 판소리 명가 1로 지정한 바 있다.

배설향(裵雪香·18951938)은 이화중선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고 인기 여성 소리꾼이었으며, 장판개 명창과는 사제 간이자 부부간이었다. 그녀는 순창 출신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순창 금과면 연화마을(삿갓대)에 거주하던 장판개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고, 말년에는 순창으로 귀향해 장판개와 함께 했다.

 

6. 이화중선

일제강점기 판소리 최고 여성 스타였던 이화중선(李花中仙·18991943). 그녀가 <심청가> 한 대목인 추월만정’(秋月滿庭)을 부르면 조선 여인들은 모두 따라 울었단다. 서정주 시인은 그녀를 하늘 아래서 제일 서러운 소리를 하다 간 사람이라 했다.

당시 남원에 거주하던 이화중선은 17살이 되던 1915118일 장재백 명창의 조카 장득진(당시 32) 첩으로 호적에 올랐고, 실제 그렇게 살았다. 2년 후, 장득진과 이화중선은 적성면 운림리로 이주했다. 적성면 운림리 임동마을 549번지, ‘매미터에 동생 이중선(李中仙)과 함께 기거하면서 장득진에게 <춘향가>·<흥보가>·<수궁가> 등을 배웠다.

 

7. 성운선(成雲仙)

성운선(成雲仙·19281997)1928년 순창군 복흥면 하리 610번지(복흥면 하리길 146-8)에서 태어났다. 호적명은 성점옥(成占玉)이다. 성운선의 예술은 판소리 뿐만 아니라 호남살풀이춤에서도 극찬 받은 바 있다.

 

8. 한애순 명창

한애순(19242014) 명창은 19241226일 곡성군 옥과면 출신이다. 193512세 때부터 1938년까지 담양 지실마을 정각에서 서편제 명창 박동실(朴東實·1897~1968)에게 소리를 배웠다. 1940년대에는 주로 순창에 거주하며 소리를 했다. 그녀는 16세에 당대 최고 명창 김소희, 오비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심청가>로는 국창 김소희도 못 따라온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스승 박동실이 월북 예술인임이 알려지면서 수식어도 월북 소리꾼의 제자로 바뀌었으며,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며 그녀를 괴롭혔다. 결국 문화재의 꿈도 버리고 낙향했다.

 

9. 박복남 명창

박복남은 적성면 운림리 매미터에 살 때 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19969월 전국판소리명창 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 대상에 오름으로써, 대통령상을 받게 되는데, 그때 그의 나이 칠십이었다. 1997년에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유성준바디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는 31녀를 두었는데, 딸 박미선은 전라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 민요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차남 박천음(박종호)도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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