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숨겨진 이야기(12)순창지역 시장 개설과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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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숨겨진 이야기(12)순창지역 시장 개설과 변천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3.12.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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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민이 꼭 알아야 할 의미 있는 이야기, 또는 그동안 잘못 알려진 순창 관련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검증된 객관적 사실 위주로 살펴봅니다.

 

1930년대 순창시장 - 종걸 스님 제공.

 

조선시대 정기 시장인 장시(場市·시장)는 성종 원년(1470) 전라도 무안과 나주지방에서 열리기 시작한 이래 장문(場門향시(鄕市허시(墟市오일장·시골장·재래시장·전통시장 등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

조선시대 장시는 별다른 시설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상인과 인근 지역 주민이 모여 직접 교역하는 곳이었다. 초기에는 한 달에 두 번이나 세 번 열리는 열흘장, 또는 보름장이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은 이전에는 없던 형태였다.

장시가 열리는 지역이 증가하고, 장시 수도 점차 증가하면서 17세기 후반에는 5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장으로 발달했다. 대개 읍치(邑治·읍내)를 중심으로 3050리 정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개시일을 달리하여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장시 분포의 특징은 행정 중심지와 교통 중심지에 분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순조(純祖) 연간에 발간된 호남청사례에서 읍 규모를 대읍·중읍·소읍·잔읍 등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전라도는 다음과 같이 분류되며, 순창은 중읍에 속했다.

대읍 : 나주·전주·광주·남원·순천·영광·영암 등 7

중읍 : 장흥·담양·장성·순창·김제·보성·고부·임피·무장·흥양·강진·해남·태인·함평 등 14

소읍 : 능주·여산·익산·낙안·금산·진도·금구·만경·창평·용안·무안·부안·함열·임실·흥덕·광양·곡성·옥과·고산·구례·장수·운봉·정읍·옥구·남평 등 26

잔읍 : 무장·진산·용담·진안·동복·화순 등 6

 

조선시대 순창 장시

순창지역에 장시가 개설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순창읍에 처음으로 장시가 개설된 시기는 16세기 초, 또는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전라도를 비롯해 충청도·경상도 등 방방곡곡에 장시가 개설되지 않은 곳이 없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330개 내외 군현의 읍치를 중심으로 장시가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전국 장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는 동국문헌비고(1770)에는 전라도에만 216개 장시가 있었고, 전국적으로는 1,062개 장시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18세기 후반 이래 여러 문헌에 소개된 순창지역 장시 개설 상황을 살펴보면, 1760년 편찬된 옥천군지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는 순창읍내장·연산장·삼치장·녹사장·피노리장 등 5개 장시가 날짜를 달리하며 개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임원경제지(1830)에는 5개 장시 가운데 읍내장과 삼치장만 수록돼 있어 다른 세 곳은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읍내장 한 곳만 표시되어 있어 장시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엽 이후 입지조건 변화나 이용자 감소, 인접 장시와의 경쟁관계 등으로 연산장·녹사장·피노리장은 폐지되었다.

 

순창지역 장시 주요 거래 물품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조선시대 순창지역 장시 주요 거래 물품은 다음과 같다.

읍내장은 관문 밖에 설치되어 개시일은 1·6으로 끝나는 날이다. 주요 거래 물품은 쌀··참깨·들깨·면화·면포·저포·삼베·생마(生麻종이·목물(木物죽물(竹物곶감·유기(鍮器·놋그릇무쇠솥이다.

삼지장(삼치장)은 복흥면에 설치되어 개시일은 4·9일이다. 주요 거래 물품은 쌀·산채(산채생피저(生皮苧)이다.

 

일제강점기 순창 장시

일제는 19149월 총독부령 제136호로 <시장규칙>을 공포했다. 조선총독부는 <시장규칙>을 통해 시장 신설이나 변경 등 모든 사항에 대해 도장관(道長官)의 허가를 받도록 하여 허가주의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소·돼지 등의 축산류는 반드시 가축시장, 또는 우시장에서 매매하도록 했다.

순창읍내장은 남계리 800 일대에 192311일 조성되어 개장했으며, 전라북도에서 각종 상품 유통량이 많은 장시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다. 1920년대 초반 연간 20만원 이상 상품이 거래된 전북 도내 시장은 다음과 같았다.

농산물의 경우 순창장은 전주장이나 남원장보다 월등히 많은 수량이 거래되고 있으며, 수산물·직물류·축류 등은 비교적 적었음을 보여 준다.

 

쌍치장·동계장 개설

조선총독부가 1924년 발행한 자료 조선의 시장(朝鮮市場)에는 순창군에 개설되고 있는 시장은 순창읍내장과 피노리장이 소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피노리장은 1922년 개시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본다면 피노리장은 19세기 전반 경에 폐지되었다가 이 시기에 다시 개설된 것으로 파악된다.

동아일보 193145일자에 쌍치면과 동계면에 장시가 개설되었다는 보도가 보인다. 이후 순창군에는 아래 도표와 같이 3곳에서 장시가 날짜를 달리하며 열리게 되었다.

 

순창읍 가축시장(우시장)

순창읍내 가축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는 전라북도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였다. 1922년 전라북도 가축시장에서 1년간 5,000() 이상 소()가 거래된 시장은 전주시장, 금산시장, 순창시장, 이리시장 4곳 정도였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반영하듯 순창지역에서는 축우품평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1927년에는 순창군 축우 수가 6만 두에 이르렀다. 추석 때 팔덕·구암(현 구림면 일부무림(현 구림면 일부) 3면 연합으로 축우품평회를 무림면에서 개최하고, 축우와 건초를 출품해 심사를 거쳐 시상했다. 관중은 매일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일반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조선유휘(매귀농악), 각희(脚戱)대회, 백일장(白日場) 등을 개최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동아일보 1927.10.9.)

매일신보 1934822일자 보도 내용에 따르면 축우품평회를 개최하는데 기존 순창우시장이 좁아 인근 광장으로 옮기고 있으며, 쌍치장에서도 품평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68월 개최된 종빈우 대시(大市)826일부터 27일까지 양일간, 축우대시는 88일부터 926일까지 열리고, 장소는 순창·동계·쌍치 우시장에서 개최되었다(매일신보 1936.8.11.).

이와 관련해 축우품평회가 개최되는 기간에는 난장도 열린 것으로 보인다. 품평회가 열리는 기간 소 거래를 비롯해 여흥으로 벌어지는 씨름대회, 활동사진 상영, 경품추첨 등은 상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난장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중국 상인들로 인한 피해

1930년 이후 순창지역도 외국상인이 들어와 조선상인과 경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내용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하자 순창에 거류하며 포목상과 잡화상을 경영하던 중국 상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각종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므로 일반 상인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매일신보 1937.8.31.).

 

철도 개통과 상품유통 중심지 변화

전북지역은 1912년 군산선(군산-이리), 1914년 호남선 개통, 19362월 전라선이 개통되었다. 철도 이외에 신작로라고 하는 도로 개통도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북지역 상품유통 중심지는 개항장 군산을 비롯해 철도가 연결되는 전주·이리·김제·정읍 등으로 전환되었다. 이들 지역에는 일본·중국 상인의 진출이 크게 증가했고, 상설시장과 상설점포도 크게 늘어났다.

순창지역은 철도교통과 근대적 교통시설과의 연계성이 약화되어 장세(場勢)가 위축되는 상황을 맞이해 상품유통 중심지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순창읍시장은 1960~1970년대 초에는 하루에 5,000여 명이 이용할 만큼 번성했으나, 197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2011년까지 재래시장 정비 사업을 추진해 시설을 현대화 했다. 16,406의 대지에 장옥, 상가 4, 관리사, 버스 휴게실 등이 갖추어져 있고 시장 한 쪽에는 순대촌이 형성되어 있다. 품목별로는 미곡전, 고추전, 건어물전, ·대추전, 어물전, 그리고 야채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창 우시장-자료사진.

 

우시장의 쇠퇴

순창시장이 전국 유수의 시장으로 꼽혔던 이유는 우시장 때문이었다. 순창우시장은 전국 7대 우시장 중 하나로, 한때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소의 3분의 1이 순창우시장에서 거래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순창 우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순창을 비롯해 인근의 정읍, 전남 담양과 곡성, 옥과 상인들이었다.

1960~1970년대에는 우시장 규모가 점점 확대되었다. 하지만 재래시장 인근에 더 이상 확장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1973년 순창읍 가남리 1114번지에 9,900부지를 마련해 이전했다.

우시장은 예부터 중개인을 통한 경매 방식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래서 중간에 있는 중개인들이 가끔 농간을 부리기도 했다. 순창우시장은 이것을 막고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5년 전자경매시스템을 도입했다. 전국 우시장들이 대체로 2000년대에 들어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비해 매우 빠른 전자경매시스템 도입이다.

하지만 이처럼 거래가 양성화되자, 우상인(牛商人)들이 순창 우시장을 회피하고 인근 남원·담양 지역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순창 우시장은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좋은 취지에서 도입한 전자경매시스템이 되려 우시장의 몰락을 가져왔다. 제 값을 치르기 위한 전자시스템이 되려 시장의 인심을 상처 내는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전자식 경매를 실시한 지 2년 만인 1987년 종래의 중개에 의한 거래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201545일에는 전자 경매 가축시장을 풍산면 금곡리에 완공하고 준공식을 가졌다.

<전북 순창지역의 시장 발달과 변동>(김대길, 가톨릭관동대학교), 옥천군지(1760), 순창군지(2015)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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