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생 젊은 이장 - 구 용 월산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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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생 젊은 이장 - 구 용 월산마을 이장
  • 김선영(시민기자)
  • 승인 2024.02.20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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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도 내가 만족하는 일을 조금 더 해야겠다”
“젊은 사람 없다 없다, 하지만 친구들 꽤 있어요”

마을, 00()를 대표하여 일을 보는 사람이장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네요. 또 어떤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정정한 남성 노인이 주로 이장을 하나 간혹 4~50대 남성이 이장을 맡기도 한다. 이도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한다.”라는 해설이 있어요. 이장의 자격 요건에 연령이나 성별이 있는 것은 아니죠.

급변하는 현대 사회지만 농촌만큼은 전통사회의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30대 젊은 이장의 등장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리하여, 풍산면 최연소 이장, 월산 마을 구용 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는데요,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 구용 이장을 만나 나눈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 김선영 시민기자

88년생입니다. 서른일곱 살이지요. 반월리 월산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생활도 면사무소에 했어요. 스무 살부터 할아버지 농사를 도와드렸습니다.

구 용 이장, 풍산 작은도서관에서

학교 다닐 때까지는 제가 농사일을 아예 몰랐어요. 그러다가 할아버지 농사를 도와드리면서 계속 마을을 왔다 갔다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점점 버거워하시는 것이 보이더라구요. 시간이 되면 주말이고 평일이고 언제든 왔어요. 지금은 할머니(김송자, 81)하고만 살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한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시골 어른들은 자식이 의사나 고액 연봉자가 되면 잘 됐다 하시지요. 아니면 도시에 건물을 소유하고 편하게 돈 버는 걸 좋아하시고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일을 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농사도 지었고요. 할아버지께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 틈에 할아버지를 병원에 1년에 100번 정도를 광주로 모시고 다녔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그 뒤로 저는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 같고좀 힘들었습니다. 이제 할머니만 계신데 할머니도 병원에 다녀야 했습니다. 돈보다도 내가 만족하는 일을 조금 더 해야겠다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었어요. 2112월이었습니다. 딱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내년부터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돈도 중요하지만요.

주민들과 함께

제가 5학년 때 오산초등학교가 폐교되고 풍산초로 통폐합이 되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시골에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더 큰 문제고요.

어릴 때는 마을에 사람이 참 많았어요. 지금은 저희 마을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어요. 아직은 사람이 살고는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지요. 저는 평균 수명대로 보면 사오십 년을 더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이 계속 유지될까?

내가 터를 잡고 쭉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니까 막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은 그나마 마을 청년회가 조직이 돼 있어 가지고 서로 왕래도 하고 그래요. 이름은 청년회지만 저한테는 삼촌 이모뻘인 분들이죠. 제가 사는 마을이 면소재지 마을인데도 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에요.

월산마을 전경

우리마을 이장을 맡게 됐습니다. 저 이전에는 김상묵 이장님께서 18년간 하셨어요. 나이로 보면 이장을 맡기에는 아직 어린데 멋모르고 해보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했어요.

앞으로 5, 10년만 지나도 어르신들 안 계실 수도 있고요. 그래서 당장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할머니도 계시니까 우리 마을과 지역을 위해서 좀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막상 이장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참 뿌듯합니다. 제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신경 쓸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힘들지도 않고 크게 어렵지도 않더라고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사회복지사로 복지관에서 근무도 해보고 이장하기 전에도 읍에서 봉사단체 활동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하고 도와드리는 게 몸에 뱄고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우리 마을에 귀촌한 부부가 있어요. 그분들이 불편 사항이나 민원을 해결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입주민들보다는 원래부터 거주하던 목소리도 크고 힘도 좀 쓰는 분들 위주로 일이 해결되더라고요.

마을에 이제 들어오셨지만 그런 분들이 적응을 잘하면 앞으로 마을 이장도 하고 지역을 위해서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원주민이고 기득권이 있다면 새로 오시는 분들을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장 일을 하면서 그런 분들이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문제점을 해결하며 살기 편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농촌에 들어오려는 분들이 많거든요. 한 분 두 분 들어와야 마을이 활성화되는데그런데 살 곳이 없어요. 빈집은 있는데 팔지 않으니 더 그렇죠.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 노력해야죠.

유정마을 회관 2층을 농촌유학 가정에게 빌려준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희 마을회관도 2층이 있는데, 농촌유학가정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고 방치돼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결국 시설도 못 쓰게 되지요.

들어오는 분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있어요. 텃세가 심하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모든 게 본인 하기 나름이잖아요. 도시처럼 너무 개인적인 생활만 고집하거나 이기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분들이 오면 잘 섞일 수 있는 거예요.

노인 분들이 많은 농촌 마을에는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정,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 간의 정이 있어요. 농촌에 오는 사람들이 그런 거를 느끼고 농촌유학 기간 끝나고 정착을 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겠죠.

시골 살이 매력을 느끼고 작은 학교의 장점과 혜택을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정착하게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진짜 6개월, 1년 잠깐 혜택만 받고 돌아가는 거죠. 또 지역 주민들도 도시에서 온 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 안 되죠. 사실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학교 살리기에 온 지역이 나서는 것 아닙니까?

* 농촌유학 : 도시에 사는 부모와 자녀가 농촌과 소규모 학교를 경험하기 위해 농촌에 내려온다. 순창에서도 2022년부터 면에 있는 작은학교가 도시 가정을 받아 1학기, 1년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풍산면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취약한 것 같아요. 다른 면을 들여다 보면 소재지가 중심지 역할을 하더라구요. 식당도 많고 다양한 이용시설들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요. 그러니까 여론도 확산될 수 있다고 봐요.

쌍치, 구림, 복흥 같은 면은 면민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면 아주 단결이 잘 돼요. 인구도 많고 젊은 층도 많고요.

그런데 풍산면은 소재지가 한쪽에 이렇게 치우쳐져 있다 보니까 11개 읍면 중에 소재지 발전이 제일 더디다고 봐요. 식당도 하나뿐이고, 그러니까 주민들이 소통하고 그럴 공간이 제한적이거든요. 전화로 하는 거랑 만나서 자연스럽게 식사도 하고 얼굴 보는 게 다르잖아요. 그러다 보니 조그마한 목소리를 제각각 여기저기서 내고 의견도 잘 안 모이고 단합도 잘 안 되고. 풍산은 그런 점에서 많이 취약하다고 봐요. 정치하시는 분들은 지역구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알겠죠? 이번 추모공원 지정되는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신 분이 거의 없었어요.

좌절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좋은 기회예요. 추모공원은 앞으로는 꼭 필요한 시설이고 혐오시설은 아니예요. 풍산으로 결정됐다고 이제 끝났다. 풍산은 무시당했고 이제 이걸로 끝났다고 할 게 아니라 이번 계기를 통해서 나부터 달라져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달라질 것 같아요.

뭐든지 바뀌려면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해요. 사람들이 잘잘못을 따질 때 항상 외부부터 보잖아요. 적이 밖에 있는 줄 알구요.

이번 기회에 정말로 달라지면 좋겠어요. 저 혼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답이 없거든요. 풍산의 젊은 분들이 우리 지역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기성세대도 있지만 풍산에 대한 마음이 더 크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지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더 단합된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그대로 있으면 10년 뒤에도 똑같은 상황, 똑같은 말만 하고 있을 거예요.

20년 전 즈음 저 어릴 때, 풍산에 귀농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20년 세월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우리 지역을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 주시면 풍산에 미래가 있지 않을까, 저도 같이 할 거구요.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아주 부흥은 안 되더라도 다른 면 못지않게 활성화가 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으로 함께하고 싶어요.

, 구용, 봉사도 결혼도 해야지요. 저도, 제가 지금까지 결혼을 안 할 줄 몰랐어요. (웃음) 지금 저의 1순위 목표가 결혼이고 또 봉사하는 삶, 그 두 가지예요.

젊은 사람이 없다 없다, 하지만 친구들이 꽤 있어요. 제가 친구들한테도 그래요. 정말로 마을을 위해서 좀 더 해야지 이렇게 방관하면서 내 일 아니라고 외면하면 진짜로 방법이 없다고요.

그래서 저도 지금 마을 이장일 보면서 올해도 많은 마을사업을 갖고 왔는데, 앞으로도 마을만들기 사업이나 새뜰사업 등 더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마을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귀농 귀촌하는 하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풍산면 신문 <풍구>(2024.02.01.)에도 실렸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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