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내마을 무름덕 박연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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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내마을 무름덕 박연순 할머니
  • 차은숙 시민기자
  • 승인 2024.02.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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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세 번째 겨울, 혼자여도 함께도 좋아요”

 

무름덕이 택호세요.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열일곱에 결혼을 했어. 신랑은 스무 살, 혼인하는 날 처음 얼굴을 봤어. 친정은 팔덕이지. 우리 친정 동네에 무름산이 있어. 시집 와 무름덕이란 이름으로 칠십년 넘게 용내서 살았지.

큰애기 때는 읍내 한 번도 나가보지 않고 살았어.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지. 그냥 동네에서 물 길어다 밥해먹고 살았어. 그러던 내가 지금은 딸이랑 사위랑 같이 좋은 데 많이 다녀. 목포도 몇 번 가고 진도도 가고. 손자랑 하동으로 해서 지리산 갔다 오고.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아흔셋 겨울을 보내고 계시네요. 마음이 어떠세요?

아흔셋, 아이고 나이 많은 것 자랑할 것 없어. 지금도 특별할 것 없이 그럭저럭 지내지 뭐. 내가 어릴 적에 엄마를 일찍 잃어버렸어. 엄마가 나를 낳고 몇 달 안 되어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나를 키웠어. 작은아버지 밑에서 살았지. 그래도 고생은 하지 않았어. 이름은 삼순이지 언니가 둘 있고, 셋째 딸인데 호적에는 연순이로 올랐어.

언니가 내가 혼인을 한다고 하니까 문을 열고 닫을 때도 살짝 열고, 치마 자락도 조심스럽게 걷어들고 그런 소리를 했어. 어른들한테 밥상을 가져다 놓을 때도 들고 나갈 때도 정성스럽게 하라고 했는데 그때는 웃었지.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살고 보니까 그건 다 옳은 소리여.

우리 형제들 중에 내가 제일 오래 살아. 내 위로 오빠가 하나 있었지. 그런데 오빠가 서른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어. 언니 하나도 젊어서 그렇게 되고. 큰언니는 팔십다섯에 돌아가셨지. 우리 형제들이 못 산 세월을 내가 명을 이어 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결혼하고 부모 모시고 자식들 키우고 농사짓고 힘든 시절 다 보내셨죠?

내가 결혼하고 애를 낳기는 다섯을 낳았지. 그런데 큰애를 놓쳤어. 열다섯 먹은 아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지금 생각해도 간절하지. 그 마음고생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지.

내가 혼인할 때는 모다 가난하던 시절이라 우리 집도 농사가 없었어. 문중 밭에 농사를 지었는데 중간에 빚도 지고 했어. 살림이 어려웠지. 힘들게 자식을 키워놨더니 딸들이 빚을 갚아주고 돈도 보태줘서 논이 여덟 마지기가 됐어. 거기를 가서 보면 참 좋아.

이제 동네 젊은 사람이 그 논 농사짓지. 거기서 쌀이 나오면 아들, 딸 조카들까지 싹 갖다 붙여. 요새는 오늘 붙이면 내일 들어가 버리니까 참 세상이 좋아. 쌀을 받으면 다들 고맙다고 인사를 해.

우리 영감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어. 시대를 잘못 만나서 제대로 풀어내지를 못했지. 아들이 준 음료수 하나를 다 먹고, 뭣이 이렇게 맛있다냐 하고는 아들 딸 다 봤지. 우리 딸이 아버지 하고 부르니까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어. 그리고 영안실로 옮겼지. 찬데다 옮기니 살 놈도 죽어버리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눈을 감았어. 나는 이제 혼자 이렇게 살고 있지.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총기가 좋다고 하는데 젊을 때부터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어. 그래도 나이 많고 건강하다고 자랑하면 못 써.

 

떠나간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으시지요?

늘 생각나지. 여기서 살면서 부모도 보내고, 아들도 보내고, 남편도 보내고, 형제간도 다 보냈지. 그렇게 좋게 살던 이웃들도 세상 떠났고. 결혼해서 이 마을에서 70년을 훨씬 넘게 살았지. 지금은 내가 자란 고향은 잘 생각도 안 나, 변하기도 많이 변했고.

옆집에서 평생을 같이 살던 이웃은 몹쓸 병을 얻어 몇 년 전에 죽고 나니 지금도 보고 싶고 생각나네. 성질이 좀 별났어도 싫은 마음이 나지 않고 마음이 든든하고 좋았어. 떠난 사람들 생각하면 눈물이 날 때도 있지. 제사가 봄인가, 이제 지났는가? 언제인지 모르것네.

이 마을에서 함께 살던 아짐은 이십 년도 넘었어도 생각나지. 아주 좋은 양반이 있었어. 나보다 한참 어른이신디. 잘 챙겨주셨지. 언제였지 8월이던가더운 때였지. 위독하다고 해서 가서 보니까 안 좋으셔. 그날 밤에 돌아가셨지. 초상집으로 갔더니 관을 모셔두었어. 그때는 그랬어. 관이 나가는 날 방에 들어가서 내가 전부 소제(청소)를 다했어. 혹시나 나쁜 물이라도 나올까 싶어서. 할머니가 원체 좋으니까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지. 그 방을 치우면서 싫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고 더러운 생각도 없이 치웠지.

우리 영감님이 떠난 지도 7년이 넘었어. 우리 영감은 두 달 넘게 아프다가 세상 떠났어. 그런데 조금 후회가 나더라고. 떠나기 바로 전에 다리가 좀 보대끼는 것 같았어. 그런데 어디가 더 아프냐 그렇게 묻지를 않았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자버렸어. 그걸 더 묻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그것이 좀 서운하더라고. 아직도 생각이 나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요?

나는 젊어서 누구랑 입다툼하고 그런 적이 별로 없었어. 내가 내 성질대로 다하고 살지 않고, 이 사람은 이런다 하면 그 성질을 받아주고 저 사람은 저런다 하면 또 그 성질 맞춰주고 그렇게 살았어. 그게 좋아.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하면 안 돼. 내가 그 사람을 그대로 받아주고 맞춰주고 살아보면 내가 좋아.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다 좋고 나쁜 사람이 없어. 지금은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나서지 않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해.

그냥 여기 집에서 전기장판 따숩게 틀어놓고 하루하루 보내. 그리 적적하지도 않고 혼자 놀아. 이제 습관이 되었어. 성경책을 보거나, 사람들이 놀러오기도 하고. 혼자 사는데 내가 밥 하고 나 먹고 싶은 반찬 해서 먹지 하나도 아쉽지 않아. 지금은 김장 담아놨으니까.

혼자서도 잘 살고, 사람들하고 함께도 잘 살고...

 

 

이 글은 풍산면 신문 <풍구>(2024. 02. 01.)에도 실렸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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