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느 마을의 이장 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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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마을의 이장 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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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1.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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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이장을 맡고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갔더니 마침 그날이 이장 선거란다. 이장 임기가 만료되어 이장도 선출하고 마을 구심체 임원 개편이 있다 해서 따라가 보았다. 회관에는 남녀 어르신 여나뭇 분이 나와 계셨는데 그래도 많이 나온 편이란다. 그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이장의 간단한 경과보고가 있고 이장 선출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한다. “개발위원장이 사회를 봐라” “무슨 소리, 임시 의장을 뽑아 회의를 주관하게 하라” “다 필요 없고 누가 나와서 내가 이장하겠다고 나와 보라” 등 무수한 발언이 쏟아진다. 어수선해진다.

“이장시키면 좋을 만한 사람 복수 추천해서 거수든 무기명 투표든 결정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듣고만 있던 선배 이장이 한마디 한다. “이번 이장 선출은 주민화합차원에서 선거보다는 추대형식을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이장 선출에 있어 꼭 선거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장을 추대 형식으로 뽑는 마을도 많다는 얘기를 하는데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다 자기말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가 싶더니 개발위원장이 한마디 하겠단다. 왈 “내 나이 칠십대 후반이지만 여러분이 맡겨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하고 눈치를 살핀다. 잠시 후 누군가 소리친다. “특별히 반대하시는 분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박수로 가결하자”며 박수를 유도한다.

이렇게 해서 이장 선출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전임 이장에 대한 수고의 말이나 신임 이장의 인사말도 없이 하나 둘 일어선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선배에게 물어봤다. “선배님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시지 그랬어요?”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못할뿐더러 동네 이장 선출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검증이 될 만큼 됐는데 새삼 무슨 각오가 필요해?”

선거제도는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도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갈등을 조장한 면이 있다고 보면 이장 선출만큼은 다른 방법을 연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설마 순창군 전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방자치 제도하의 선거문화의 산물이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동네사람 판단이 맡길만 하다면 추대 받을 수도 있는데 먼저 일어서 열심히 하겠다고 사정하는 멘트가 이장선거에서 나오다니 충격이었다. “그런 얘기하는 사람치고 잘하는 사람 하나도 없더라”는 어느 분의 냉소적인 농담이 생각난다. 하여간 그 마을은 앞으로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의욕적인 이장을 뽑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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