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소문을 듣고 찾아간 기자를 보고 당연히 할 일이라며 사래를 쳤다. 하지만 30여분 설득 끝에 그가 살아온 세월을 잠시 풀었다.
그는 경상남도 양산출신이다. 친언니의 중매로 남편인 김형영(55)씨에게 시집을 왔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친어머니를 잃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이런 이유로 시아버지와 어머니를 친정 부모님과 같다고 생각하며 모시고 살아왔다.
결혼 3년차 시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이 씨는 3년여 동안 많게는 하루에 7~8번 정도 목욕을 씻겨드렸다고 당시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여 흘러 이제는 시어머니에게까지 치매가 찾아 들었다. 점점 깊어가는 병으로 아예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고 있다. 끼니때가 되면 누워있는 시어머니를 일으켜 세운 후 한 손으로 등을 받치고 또 다른 한 손으론 음식물을 삼키게 한다. 식사를 하면 어김없이 대변을 누는데 이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특히 변비가 있는 시어머니에게 관장을 해 줄 때는 괄약근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대변이 계속 흐른다. 이 때문에 내버린 이불도 적지 않다.
이 씨는 남편과 함께 복합영농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임대해 지은 논농사가 1만6000평(80마지기)이고 복분자, 고추농사까지 짓고 있다. 밭농사를 지어 알뜰히 모은 돈으로 소 2마리를 사서 키웠는데 현재는 7마리로 불었다. 이렇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아픈 시어머니를 보러 하루에 열두 번도 집과 농지를 오고 가야 하는 형편이다.
남편 김 씨는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계실 때 목욕한 번 못시켜드리고 돌아가시게 해 평생 한이 됐다. 그래서 어머니를 세 번 목욕 씻겨 들였는데 냄새도 참기 어렵고 쉽지 않았다”면서 “(간병의 어려움을 알기에) 항상 애들 엄마에게 고마움을 간직하고 살아간다”고 했다.
이 씨를 지켜봐 온 한 주민은 “이 씨는 계모임에서도 시어머니 걱정 때문에 항상 밥만 먹고 집으로 되돌아간다”며 “요즘 치매에 걸린 부모를 요양원에 입소시키는 것은 흉도 아니다”고 반문하면서 “동네사람들은 효부라고 칭송 한다”고 말했다.
소똥 치우고 밭농사 지으려 양치질만 하고 나왔다는 이씨는 “올해는 200여평 노지(토지 상태가 좋게 보이지 않았다)에 복분자를 더 심으려 한다”며 초등학교 3, 4학년생인 두 아이들이 커나갈 것을 생각해서 농사를 줄일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반 와사 상태라고 진단을 받은 시어머니가 언제 가는 세상을 뜨시겠지만 살아 계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일터인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