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남편 생각…‘문학’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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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남편 생각…‘문학’ 인도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2.03.15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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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뉴스보고 이메일로 아들과 소통
먼저 간 남편, 아픈 자식 “글 쓰며 고독 달래”

▲ "정봉애 화이팅!"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할머니는 이렇게 외친다. 밥을 하다가도 글귀가 떠오르면 무조건 적는다는 그의 글에서 그리움과 사랑, 추억이 진하게 묻어났다.

“임 가신, 가신 곳은 어느 나라인지 전화도 핸드폰도 없는가 봐요. 하늘에 흘러가는 저 구름아 임 가신 곳 알거든 답답하고 애타는 이 마음을 전해다오. 하루 가고 한달 가고 일년 십년(年)이 다 지나가고 내 머리엔 흰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와 저 구름도 임 계신 곳 모르나 봐 아무 말도 없네.”

6년 전 남편을 여읜 그리움에 한 80대 할머니는 이렇게 글을 적었다.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몰랐다”는 그는 책과 신문을 곁에 두고 문장을 써가며 자신의 답답함을 풀어가려 노력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그는 최근 순창문인협회에 최고령 회원으로 정식 가입했다. 문학을 배우며 해보고 싶다는 의지였다.

정봉애(84ㆍ순창읍 남계) 할머니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훈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다니던 소학교에서 전 과목에서 ‘갑’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집안 막내인 그를 유난히 아꼈던 친오빠는 실력을 눈여겨보고 공주사범학교에 진학시키려다 위안부 징집소식을 듣고는 아버지와 상의 후 서둘러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사범학교 진학비로 마련했던 소 판 돈에 얼마를 보태 그녀는 유등면 창신마을의 가난한 농가에 시집을 갔다. 100가구에 한 대 꼴로 귀했던 미제 싱거미싱(재봉틀)을 혼수로 가져간 데다 손재주가 좋아 시댁에서도 밭일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사랑을 받았다. 남편이 8남매 중 장남이어서 시어머니와 같이 배가 불렀다. 그녀는 “갓 난 시아주비를 업고 키우며 ‘울지 마시오’라고 존대하며 달래기도 했다. 본인들한테 그 얘기를 하면 지금도 배를 잡고 웃는다”며 회상했다.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운 남편을 따라 읍내로 나온 가족의 생활은 비교적 안정됐다. 2000년경 문을 닫을 때까지 ‘신흥공업사’는 탄탄대로였다. 소학교(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주산과 경리에 능했던 정 할머니는 계산에 약한 남편을 대신해 직접 거래를 다녔다.

하지만 정씨의 아들들은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는 친오빠가 희생되기도 했다. 자녀의 병 걱정에 고민하던 그녀는 35년 전 종교를 가진 후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자신을 극진히 위해주던 남편마저 2006년 세상을 뜨자 그리움이 몰려왔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정봉애 할머니의 글에서는 부정적 시선들이 느껴졌다. 옛 추억부터 건강하지 못한 아들 걱정과 먼저 간 남편 생각이 여기저기서 묻어나왔다. 정 할머니는 “잉꼬부부란 말을 들으면서 재미나게 살았다. 남편이 술을 좋아했지만 첫 잔은 항상 내게 권해서 마신 후에야 잔을 들었다. 가신 뒤로는 내가 남편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곤 한다. 남편 덕에 혼자 사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불편함이 없으니 고마울 따름”이라며 그리움을 표했다. 그는 “고독하면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더라”며 적어둔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도 했다.

정씨는 건강한 노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남계리 북은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재활원에 있는 아들과 메일을 주고받을 정도로 컴퓨터에 능하다. 지난 2003년 우체국이 실시한 노인 컴퓨터교실을 끝까지 다니며 배웠고 주민자치대학도 2년 연속 빠지지 않고 수강해 수료증도 받았다. 손 전화 문자를 확인하며 정보도 얻기에 주변 노인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아침잠에서 깨면 좌선과 요가를 한 다음에야 아침식사를 하며 게이트볼을 즐겨 건강도 좋다.

“누가 보면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만 내 속은 삼근불속”이라는 정씨는 문학을 통해 마음을 다잡으려 하고 있다. 요새는 밥을 하다가도 문장이 생각나면 공책을 펼칠 정도다. 호롱불 기름 낭비한다며 시어머니께 꾸중을 들어도 소설책을 놓지 못했던 16살 소녀 며느리의 꿈은 증손자를 보고 나서 꽃필 채비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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