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 버리고 사지 택한 정동영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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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 버리고 사지 택한 정동영 “각오했다”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2.03.21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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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을에 출사표 던진 정동영

▲ '정치적 고향' 전주 덕진을 내려놓고 '보수텃밭' 강남을을 선택한 정동영 의원이 한·미 자유뮤역협정에 대한 폐기를 주장하며 상대 후보와 대립하고 있다.

일복 많아 대중인지도 상승, 대변인으로 정치입문
대한민국 총선 최대 격전지 상대는 새누리 김종훈
가치전쟁 화두 “강남 정치 바꿔야 대한민국 바꿔"

16대 대선 경선후보와 17대 대선후보를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 텃밭을 내놓고 가시밭길에 발을 디뎠다.

우리 군 출신 정동영(59·구림 통안 출신) 의원이 최근 서울 강남을에 출사표를 던지고 민주통합당 공천이 확정되면서 그의 정치인생은 또 한 번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됐다.

구림면 통안마을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전쟁의 상흔을 몸소 느끼며 자랐다. 정전협정이 서명된 1953년 7월27일이 그가 태어난 날이다. 그의 숙부는 빨치산에 희생되기도 했다. 직접 정치수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구림면장과 자유당 도의원을 지낸 아버지를 보며 정치활동을 눈에 익혔다.

문화방송(MBC) 기자 출신인 정 의원은 스스로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전라도 출신인데다 전두환 시절에 기자노조를 만들어 활동한 탓에 경영진으로부터 압력을 받았고 한직을 전전했다. 그는 “주무부처 출입 중 큰 비중이 없는 외교부에 다닐 때 아웅산 테러사건과 대한항공(KAL)기 추락사건이 났다. 특파원으로 간 로스앤젤레스도 한직이었지만 가자마자 지진이 나고 폭동이 났다. 북한부에 갔을 때는 김일성이 숨졌다”며 보도하기 바빴던 기자시절을 소개했다.

그의 정치 입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통해서다. 기자출신의 정 의원은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아 대중인지도를 높였고 2002년에는 ‘노풍’ 속에서도 경선을 끝까지 치루며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경선에서 탈락한 다른 후보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등을 돌릴 때 그는 “우리가 후보로 뽑은 사람을 도와야 된다”며 선거운동에 가세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그를 2007년 대선후보로 밀어줬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은 그는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장시간 대화 끝에 핵 포기, 북미수교, 평화체제를 목표로 하는 9ㆍ19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대권 도전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노조파업, 한진중공업 사태, 4대강 사업,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고자 뛰어다녔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표에 따라 좌 클릭한다”며 비난하지만 “한진중공업 회장을 국회로 끌어낸 정동영을 영도로 데려오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스스로 “정치적 고향”이라고 못 박은 전주 덕진을 내려놓은데 대해 정 의원은 가치 전쟁을 화두로 내걸었다. 그는 “강남이 정치를 바꾸면 대한민국의 노선이 바뀌고 진로가 바뀐다”며 행복중심주의를 주창했다.

그가 발을 디딘 사지(死地) ‘강남 을’은 보수텃밭이라 할 정도로 세가 만만치 않다. 강남 중의 강남이라는 대치동을 비롯해 개포ㆍ세곡ㆍ일원동 등 지명만 들어도 알만한 부촌이 형성돼있고 재건축과 교육열기가 뜨겁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찬성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런 가운데 그가 상대할 새누리당 후보에는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결정됐다. 한-미 FTA 저격수와 전도사의 날선 공방은 벌써 시작됐다. 국회에 마련된 300석 중의 한 자리지만 무게감은 역대 총선을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구에서 성사된 홍사덕-정세균 대결은 이미 묻혔다. 정 의원의 ‘강남 을’ 승패는 한-미 FTA를 포함해 대한민국 경제ㆍ복지정책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됐다. 정 의원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ㆍ미 FTA는 한 명의 관료가 어떻게 나라를 망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이번 가치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은 지난해 주민자치대학 특별강연에서 “2013년에 들어서는 정권부터 내부적으로는 5000만 국민에게 적어도 애 낳고, 키우고, 대학 보내고, 몸 아파서 병원가고 65세에 은퇴하면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시작해야 한다. 통일국가를 시작하는 원년도 2013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어떤 아픔도 견디겠다는 그의 다짐은 보장된 자리와 명예를 버리고 ‘강남 을’에 뛰어든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순창의 성공이라고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 따라 서울에서는 상당히 많은 향우들이 그의 당선을 돕고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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