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솔향 너머로 시간이 멈춰선 ‘귀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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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솔향 너머로 시간이 멈춰선 ‘귀래정’
  • 박재순 해설사
  • 승인 2012.03.2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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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재순 문화관광해설사

장류와 장수의 고장 순창에는 ‘남산대’ 라는 마을이 있어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담장위로 지붕을 타고 올라가는 향나무가 여러분들을 반길 거예요. 그 옛날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신말주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처가 동네인 순창으로 내려와 세월을 낚시질하며 이곳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여러분은 마음속에 갖고 왔던 욕심일랑 잠깐 내려놓으십시오.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풍류와 멋을 알았던 그 분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와집 건물들이 ‘어서 오시라’ 여러분들을 반겨줄 거예요. 계단을 오르느라 숨이 차지요? 잠깐 양팔을 옆으로 벌리면서 옛 향기를 들이켜 보세요. 시원함과 여유로움을 느끼실 거예요. 왼쪽을 봐 주세요. 강천사를 중창하면서 1482년에 선을 권하는 문첩을 만들고 있는 설씨 부인을 만나보세요. 노트보다 좀 더 큰 크기로 열네 폭에는 권선문을 두 폭에는 강천사의 경관을 그림으로 그리고 계시는군요. 여인의 몸으로 힘차게 써내려간 필체와 그림에는 두터운 불심과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답니다.

‘여성’이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네. 바로 이 설씨 부인이랍니다. ‘자해당’에 머무르면서 혼자의 재력으로도 불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중생의 뜻을 모아 중건함이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이야기하신 분이랍니다.

이곳 남산대는 또 한 분의 귀중한 분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조선시대의 지도하면 떠오르는 분이 누구냐고 물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 입에서 김정호 선생을 떠올릴 겁니다. 그런데 순창에는 이 선생보다 몇 십 년을 앞서 영조 시대에 광범위하게 지리서를 제작하셨던 신경준선생이 계신답니다. 조선시대에 자연, 지리의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조선 후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 분을 실학자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 산을 할아버지 산, 아버지 산, 아들 산, 손자 산으로 구분지어 만든 전통지리서인 산경표를 남기기도 하셨어요. 그 분의 생가가 바로 이 앞에 있는 건물이랍니다. 이분은 문학인으로서 ‘훈민정음 운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하셨어요.

바람에 실려 오는 책 내음마저도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작은 계단 위로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500여년 전에 이곳을 배회하면서 시문을 짓고 세월을 낚았던 선생님의 숨결이 멈춰선 곳 ‘귀래정(歸來亭)’이 여러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말주 선생의 친구이셨던 서거정 선생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 따 정자의 이름을 지어 주고 현판의 글도 남겨 주셨답니다.

시원하십니까? 순창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곳.

잠시 눈을 감고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순수해짐을 꿈꾸듯 여기에서 잠시라도 편히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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