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를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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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를 권하는 사회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2.03.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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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회식자리에서는 ‘폭탄주’가 등장한다.

10여년 전 썩 달갑지 않은 기억이 있다. 당시 이 고을의 치안책임자가 한 음식점에서 지역신문의 복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때 병권(甁權 : 폭탄주 만드는 권한)을 잡은 그는 식사를 하기도 전에 '소맥(소주+맥주) 폭탄주'를 돌렸다. 회오리치는 ‘소맥’을 즉시 털어 넣으라는 식이었다. 그의 강압에 가까운 권주를 지역의 꽤 힘 있다는 이들이 순응하며 따르는 모습이 더 달갑지 않았다. 그 시절 술자리에서의 폭탄주는 시간 제약도 조제 비율도 대중이 없었다. 병권을 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병권은 아무나 잡을 수 없는 '절대 권한'이었다. 모임의 좌장 격인 이의 손으로 폭탄주를 제조하다보니 마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건너뛰면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엄격한 폭탄주 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소폭’은 여전히 대세다. 예나 지금이나 '소폭'은 주당들의 최고 술이다. 지난해 한 식품 관련기관의 조사에서 폭탄주를 마셔봤다는 응답자가 3분의 1에 달했고 이 중 9할 이상이 ‘소폭’을 마신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더구나 영악(?)한 상술은 최근 ‘소맥자격증’을 만들어 배부하고 소주와 맥주를 황금비율로 섞어 마실 수 있는 전용 잔(소맥타워)까지 선보이고 있다고 하니 세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적당한 술은 애환을 달래주는 삶의 동반자이며 내수 경기 촉진에도 기여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민들이 주로 마시는 소주 소비량이 느는 것을 경기 촉진과 바로 연결하는 것도 달갑지는 않다. 아무튼 요즘 주류업체들이 앞장서는 ‘소폭’ 판매 전략은 전 국민을 폭탄주 세계로 인도한다. 그들은 지나친 음주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라는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직장인은 물론 대학가에도 '소폭'이 대세를 이루면서 업계가 앞 다퉈 ‘소폭’ 문화를 활용한 판촉 활동에 들어갔다는 며칠 전 보도를 보고 새삼 놀라웠다. 음주문화에 과문해서지만 주당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소주와 맥주의 이름을 활용한 신조어들이 입소문을 타고, 주류회사들은 이를 이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선주조의 ‘예맥잔(대선주조 소주 '즐거워예'의 '예'와 맥주의 '맥'의 합성어), 하이트 진로의 ‘소맥타워’(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실 수 있는 전용 술잔), '참이슬디’( '참이슬'과 '드라이피니시D’), '카스데이'(맥주 '카스'와 소주 '좋은 데이') ‘카스처럼’(맥주 ‘카스’와 소주 ‘처음처럼’) 등이 생겨나며 국민 폭탄주로 널리 사랑 받고 있다고 한다. 요즘 서울 대학가에서는 ‘제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폭탄주를 가게 주인이 직접 ‘담가’ 아예 갈색 유리병에 담아 판다고 하니 이를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소폭’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인을 만날 때도, 거리를 느끼는 이에게도 술이나 한잔하자고 말한다. 술 한 잔이 세상사를 원만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쉬 권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술이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음주문화도 점차 기성세대의 문화를 닮고 있다’는 분석에 마음이 편치 않지만 과도한 음주문화가 세상사를 그르치는 일이 빈번하여 걱정이다. 매번 반복되는 캠퍼스 음주 사망사고, 사회 지도층 인사의 엄청난 실수, 취중발언으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설화, 긴장 해이로 인한 성희롱 등 그 피해와 파장을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한때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연말) 회식 때 폭탄주로 인한 긴장 해이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자제를 부탁한다”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었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음주문화는 초등학생의 생일잔치까지 영향을 미쳐 어린이들 생일파티에서 콜라와 사이다를 섞어 ‘폭탄음료’를 만들어 마시자고 한다는 웃어넘기기 어려운 전언이 오랫동안 충격을 남긴다.

어느 누가, 어떤 권력자가 폭탄주를 없앨 수 있겠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칵테일의 하나’로 자리 잡은 ‘소폭’일지라도 술자리에서 강요하지는 않아야 한다. 술에 약한 이에 대한 배려를 넘어 ‘소폭’ 마시고 주책부리다 망신당하는 사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둔 계절  봄이다. 요즘 우리 지역에서도 과도한 술자리가, 분위기에 휩쓸린 ‘소폭’이 혹 큰일을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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