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단에 향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 그럼 저 벌들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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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에 향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 그럼 저 벌들은 뭐야!”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2.05.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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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마을 찾는 관광객에 ‘목단’ 뽐내는 게 ‘꿈’ …
‘40년’ 묵은 올곧은 목단 사랑 ‘임준식’ 할아버지

▲ 55년을 이어온 부부의 자연스런 웃음이 목단과 함께 피어났다. 그는 2미터(m)나 뻗는 목단 뿌리를 상하게 할까, 조심 조심 사뿐한 발걸음으로 화단에 들어가 설명을 했다. 지금 임준택 할아버지의 마당은 색색의 목단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끼-익.” 고즈넉한 옛집, 나무로 된 대문을 열고 들어선 그 곳에 남다른 목단사랑의 주인공 임준식(81ㆍ순창읍 남계)할아버지가 서있다. 지난겨울 목단사랑에 열성인 분이 있다는 제보에 취재를 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지금 말고 목단 활짝 피면 오라”는 대답에 봄이 오길 기다렸던 터였다.

지난 4일 아침, “목단이 만개하였으니 와서 구경이나 좀 하고 가시오”하는 연락을 받고 바로 ‘목단’ 구경에 나섰다.

젊은이에게는 생소한 이름인 ‘목단’은 ‘꽃 중의 꽃’, 또는 ‘화(花)왕’이라 불리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목단’은 ‘모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꽃으로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우는 데 9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활짝 피는 기간은 20일 정도로 짧아서 아쉬움을 남기는 꽃이라 한다.

올해로 여든 한 해를 살아가는 임 옹은 여든이 넘었다고 믿기 어려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반겼다. “시간 없는 분들이니 얼른얼른 보여드려야 겠다”면서 ‘목단박사’가 늘어놓는 ‘목단’ 이야기는 30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의 동반자 강윤진(77) 할머니는 “목단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정신이 없으셔요. 귀가 어두워지셔서 더더욱 자기 말씀만 하시는데 아, 목단하고 조금만 연관된 거라면 아주 지치지도 않고 저렇게 열성이십니다”하고 속삭이며 ‘이해하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40년간 목단을 가꾸어오며 각별한 사랑을 쏟고 있는 임준식 할아버지는 넓은 집 앞마당과 뒤뜰에 형형색색의 목단을 심어놓고 매일 키워가는 중이다. 일본에서 옮겨 심어 가꾼 목단부터 직접 씨앗을 받아 9년 동안 가꾼 끝에 꽃을 피워본 목단, 작약과 접목시켜 새롭게 만들어낸 목단까지 수십 종류의 목단을 혼자서 가꿔오고 있다. 그는 일본어로 되어있는 목단관련 전문서적을 읽어가며 독학으로 목단을 키웠다. 365일 어떻게 목단을 관리해야 하는지 술술 나올 정도로 목단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듯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씨앗을 심어 꽃을 보기까지 10여년이 걸리는 목단이기에 접목시켜 꽃피운 목단보다 씨앗을 심어 꽃피운 목단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줄곧 “올해 처음 꽃피운 목단이야”하며 자랑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직접 작약 뿌리와 접목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목단 품종에 대해서도 자랑을 빼놓지 않으며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이 없었다.

“이게 바로 ‘사자소성’인데 자줏빛이 얼마나 고운지 좀 봐봐. 요건 내가 직접 만들어낸 품종이야. 춘향. 이름 좋죠? 저기 있는 목단은 ‘옥천’입니다. 다 내가 만들어낸 목단이라 어디가서 찾을래야 찾아볼 수도 없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뒤따라 돌아본 넓은 정원에는 만개한 목단과 아직 피지 않은 작약, 그리고 사이사이 독특한 색의 철쭉까지 앞ㆍ뒤뜰 구석구석 꽃이 가득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햇볕 쨍쨍한 꽃밭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목단이야기를 늘어놓던 할아버지는 그제야 계속 짖어대던 강아지가 떠올랐는지 “저놈의 개, 저놈의 개”를 연발하며 “차 대접도 안하고 이러고 있었다”며 집안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이어 “집사람이랑 둘이 있으니 적적하기도 하고 집안에 꽃밭이 우거져 누가 오고 가는지도 잘 몰라서 개를 키우는데 저렇게 손님만 오면 짖어대니 나 참, 미안해서…”하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개 짖는 소리 따위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오로지 목단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마루에 앉자마자 본격적인 목단 강의가 이어졌다. 40년전 처음 목단을 키우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눈만 뜨면 목단부터 떠올린다는 그는 목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엄청났다. 집안 곳곳 목단과 관련된 서적이 빼곡했고 벽에는 목단그림과 목단달력이 여럿 걸려 있었다.

“저기 벌 ‘윙윙’ 날아다니는 것 좀 봐요. 누가 목단에 향기가 없어서 벌, 나비가 앉질 않는다고 했답니까”하는 말끝에 눈길을 돌리자 활짝 핀 목단에서 날아오른 벌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얼마나 많은 꽃가루를 몸에 붙였는지 휘청거리며 잘 날지도 못했다.

임준식 할아버지는 1932년 순창에서 태어나 80년을 한 집에서 살아온 순창 토박이다. 순창초, 서울경동공립중, 광주고를 졸업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복흥중, 농림고(제일고), 순창여중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났다. ‘밭일 하는 선생님’으로 통했다는 그는 현역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목단에 쏟는 시간이 많았었다고 한다. 퇴직하고 나서부터는 목단에 거름 주고 잡초를 뽑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고. 부부가 일본에 여행을 가서도 유명한 관광지는 구경도 못한 채 목단식물원 견학하고 목단과 관련된 서적을 찾는데 바빴을 정도로 40년을 이어온 목단 사랑은 굴곡이 없었다.

남다른 목단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할아버지 때문에 함께 살면서 불만이 없느냐는 질문에 강윤진 할머니는 “나도 목단에 대해서 반 박사가 됐다. 선생님 옆에서 귀동냥으로 배운 게 있어서 그런지 요즘은 관심도 더 많이 가고 집에 꽃향기가 가득하니 좋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면 동네 할머니들이 저기 사랑방에 놀러 오시는데 요즘은 꽃구경에 신이 나셔서 더 오래 놀고 가신다”고 말하며 모란사랑 못지않은 부부애를 자랑했다.

더위에 약한 꽃이라 점심때가 되면 시들해진다기에 일찍 찾은 그의 집에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때가 되자 그 화려하던 꽃들이 힘을 잃고 고개를 숙여가고 있었다.

임준식 할아버지는 “우리나라에 목단 식물원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일본에는 사찰을 끼고 목단 식물원이 많이 발달했다. 10년 전, 일본의 대군도란 곳에 가서 목단식물원 견학을 하고 왔는데 어마어마하더라. 나 죽기 전에 그만한 식물원은 아니더라도 고추장마을이나 순창의 유명한 관광지에 심어서 ‘모란 꽃길’을 조성해 순창을 찾는 사람들이 입이 떡 벌어지게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이 꽃, 내가 개발해 낸 품종들까지 많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나 없으면 이것들 다 말라 죽을 텐데 그 생각만 하면 속이 상해 죽겠다. 무슨 방도가 없겠느냐”고 하소연하며 울컥 한숨을 내뱉었다.

지치지도 않는 듯 계속되던 목단자랑 후에 조용히 내뱉는 한숨에 여든을 넘긴 노인의 근심이 드러났다.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군에 한번 이야기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하고 말하자 “한번 얘기 꺼내봤는데 조용하다. 모란을 키우는 것이 돈 되는 일이 아닌 것이라는 게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이다”며 “사람들이 모란에 관심을 많이 갖게끔 사진이나 많이 찍어가 달라”고 말했다.

“아,네,그렇군요”하다 끝나버린 인터뷰였지만 질문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쏟아낸 이야기 덕에 할아버지의 목단 사랑이 얼마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寒,겨울)목단이 필 때 다시 또 들르라”며 못내 아쉬운 듯 작별인사를 건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처마 밑에 자리잡은 제비처럼 다시 꼭 찾겠다는 약속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노부부의 입에 맞춘 다디단 커피와 진한 모란향이 입가를 맴돌았다. 40년 경력의 목단박사는 자외선 차단제를 덧바르며 다시 모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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