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한마디에 ‘자부심’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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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한마디에 ‘자부심’ 느낍니다”
  • 정기애 기자
  • 승인 2012.05.16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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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방방곡곡 이야기 (2) - 이성근 순창우체국 집배원

▲ 우편물을 싣고 배달에 나선 이성근씨(위). 아침에 출근해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는 모습(왼쪽). 손짓, 몸짓으로 대화를 하는 어머니와 아들(오른쪽). 밖에 돌아다니기 힘든 어머니는 집안일과 텃밭 가꾸기에 열심이다.

“편지왔어요!” 정겨운 목소리. 오늘도 아침을 알리는 집배원의 “부르릉~” 오토바이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치는 사이이지만 그의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사연도 아는 것이 없다. 그저 소중한 편지, 소중한 물건들을 내 손, 내 눈앞까지 가져다 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면 하루를 또 잊고, 다음 날 아침이면 또 만나는 독특한 인연이다.

비 오는 여름, 낭만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휘~익”, 눈 내리는 겨울 아침 소복이 쌓인 싸리눈을 손으로 집어보려 밖으로 나선 그 때에도 눈 앞에 우편물을 내려놓고 바람같이 떠나는 사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매일 아침 마주치는 사이에 이름이라도 알고 지내면 좋을텐데 물어보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그저 “고마워요!”하던 것을 “고마워요 OOO씨~”하고 이름불러 인사하면 좋을 것 같은데….

기억하자. 오늘 만나는 ‘우체부 아저씨’는 성실하고 따뜻한 총각, 삐뚤빼뚤 손으로 써내려간 손주의 편지를 어르신께 전하는 보람으로 일하는 집배원, ‘이성근’씨다.

“힘들어도 배달을 하면서 사람들 만나면 괜찮아져요. 고향이라서 그런지 일을 하면서 사람들 만나는게 좋은거 보면 아무래도 배달이 저의 천직인가 봐요”

2006년부터 7개월, 6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시작한 우편배달이 지금은 이성근(32ㆍ구림 남정) 집배원의 천직이 되었다. “일로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힘들다. 즐기면서 일하다 보면 ‘고맙다’는 한마디에 자부심이 생기고 따뜻하게 건네주는 ‘음료수’ 한 개에 감동이 밀려온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열심히 오토바이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성근씨.

고객이 행복해 하면 힘든것도 사라진다

2009년 1월부터 상시직(무기계약직)으로 일하게 된 그는 비록 아직까지 비정규직이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계약직으로 일할때는 언제 그만두라는 소리를 듣게 될 지 몰라 출근길이 가시방석이었는데 이제 그럼 불안감은 더 이상 가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우편물을 분류하고 배달을 시작하면 하루에 오토바이를 30-40킬로미터(㎞)씩 타면서 700~800가구에 우편물을 배달하게 된다. 이성근씨는 물량이 대체로 많은 편인 읍내 남계리가 담당 배달지역이다. 하루 수백가구에 우편물이나 택배를 배달하는 그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면 역시 고객이 우편물을 받고 행복해 할때다.

“요즘 손글씨로 직접 써서 부친 편지가 별로 없는데 가끔 그런 편지가 올때가 있어요. 도시에 사는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손글씨로 삐뚤 삐뚤하게 쓴 편지를 전달했을때 받는 분들의 환한 얼굴에서 행복이 느껴져 전달하는 사람조차 덩달아 행복해지죠. 또 주소가 불분명한 우편물을 그냥 반송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서 전달해주면 받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 해요. 그 모습에 힘든 것도 다 사라져요.”

물론 힘든 기억, 안좋았던 기억도 있다. 가끔 주소지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우편물이 배달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이 사람 여기 안사는데 왜 우리집에 우편물을 보내냐’는 항의에 주소지 배달이 원칙인 집배원으로서는 ‘죄송하다’는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이제 6년차에 접어든 집배원 생활을 하는 그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읍내를 담당하는 금산팀을 이끌고 있는 윤영설 팀장이다.

“팀장님은 아무리 피곤하고 일이 많아도 사람들을 항상 웃으면서 대해요. 일을 할때 보면 ‘짜증’이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죠. 또 저희를 잘 챙겨주고 조언도 많이 해줘 배달일에서는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몸 불편한 어머니 편히 모시는게 꿈

이성근씨는 구림면 남정마을이 고향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 때문에 2년 정도 떠나 있었던 것 외에 줄곧 고향에서 생활해 왔다. 그가 도시로 나가지 않고 고향에 정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 송순임(53)씨는 어릴때 사고로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할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도 어느 순간부터 멈춰 버렸다. 특히 간질 증세까지 있는 어머니는 늘 옆에서 챙기고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아들 형제만 둘인 탓에 어머니를 세심하게 보살펴 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죄송스럽다는 그다.

“작년까지 외할머니가 옆집에 살면서 어머니를 보살펴 주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셔서 저희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해요. 그래서 동생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함께 살면서 야간에 일을 하고 있지요.” 어릴때 집을 나간 이후 소식이 두절된 아버지와 그동안 집안의 기둥노릇을 하던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신 지금은 이성근씨가 집안의 가장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며 어머니를 편히 모시며 사는게 꿈이예요. 어머니가 사고가 났을때 바로 병원에 가서 조치를 받았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해요. 너무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어머니를 낫게 해드리고 싶어요.”

어머니를 편히 모시기 위해서 그는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무기계약직(비정규직)은 정규직과 호봉체계와 임금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게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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