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만 배달하는 게 아니에요. 달리는 또 다른 119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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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만 배달하는 게 아니에요. 달리는 또 다른 119예요”
  • 윤덕환 기자
  • 승인 2012.05.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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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방방곡곡 이야기(3) 심상신 풍산우체국 집배원

▲ 근무 중 주변 일에 무심코 지나쳐 본적 없다는 풍산우체국 25년차 심상신 집배원

“여기 풍산 사거리인데요. 할아버지가 길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쪽으로 빨리 와주세요!” 119에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하는 이는 동네주민이 아닌 우체국 집배원이다.

사계절 매일 매일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 이들은 본연의 직무수행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임무를 맡아 수행하고 있다. 그 임무는 바로 119 역할이다. 직업상 매일 동네 여기저기를 왕복하는 탓에 이런저런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

위급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는 누가먼저라 할 것 없이 바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에 연락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대처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여름철 고령의 농민이  홀로 밭이나 논에서 일할 때 탈수증세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순창우체국에 근무하고 있는 심상신(57·풍산) 집배원은 25년 동안 근무하면서 이와 관련된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심 집배원은 “요즘처럼 뜨거운 한 낮에 술에 취해 길에 누워 자고 있는 어르신을 시원한 곳으로 옮겨 드린 적도있고, 반대로 추운 겨울에 길에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깨워 얼어붙은 몸을 주물러주고 119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 할어버지를 만날 때마다 “그때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세상 사람이였을텐데 항상 고맙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이뿐 아니라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중 하나가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지 않은 채 볼일을 보러나간 빈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대신 불을 꺼준 경우이다. 무심코 지나쳤다면 큰 화재로 이어져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도 발생했을지 모른다.

이와 반대로 도움을 줬다가 오히려 가해자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는 심 집배원은 “자전거를 타다 눈을 크게 다친 분을 119에 신고하였는데 오히려 가해자로 오해받아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며 “이후 사실이 밝혀져 오해가 풀렸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우편배달을 하다보면 안타까운 분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는 심 집배원은 “순창은 고령의 독거노인들이 의외로 많다”며 풍산 한사마을 제일 높은 곳에 사는 강순례 할머니를 소개했다.

한사마을에서도 제법 높은 곳에 거주하고 있는 강순례(95) 할머니는 95세 고령의 나이에 홀로 지내고 있다. 한 겨울 물통을 들고 눈이 쌓여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오르내리는 할머니를 보고 대신 물을 길러주었다는 심 집배원은 “상수도가 얼어붙어 아래 집에서 물통에 물을 받아 해결하시는데 허리까지 굽어 들고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경사도 심하고 쌓인 눈 때문에 매우 미끄러워 위험해 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 할머니를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 더 신경을 쓴다는 심 집배원은 “우편물이 없더라도 주마다 두세 번씩은 찾아가 도움을 드리고 있다”며 “집 앞 마당이 폭우에 많이 무너져 내려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혼자사는 강순례 할머니 돌보기도
일터에서 만난 한 독거노인과의 인연

▲ 강순례 할머니 댁의 절벽 같은 마당이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위) 홀로 사는 강 할머니(95세)는 허리마저 굽어 거동이 불편해 강순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아래)

딱한 사정을 듣고 직접 강 할머니를 찾아가 집으로 올라가는 길과 집 앞마당을 살펴보았다. 심 집배원 말대로 상황은 매우 심각하였다. 집은 100여년이 넘어 보인 작고 오래된 낡은 집이였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95세의 할머니가 오르기엔 경사가 심한 편이였고 50센티미터(cm) 정도 밖에 남지 않은 한쪽 마당은 위태롭기까지 하였다. 마침 요양보호사가 찾아와 할머니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틀 전 텃밭 일을 하다 낫에 손을 다치셨다는 강 할머니는 매우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기초수급 대상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강 할머니를 맡고 있는 강순임(순창읍 순화) 요양 보호사는 “작년 8월 이후 쌀 지급마저 끊겨 우체국, 요양보호센터 등 여기저기에서 쌀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자식들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어렵게 살고 있다”며 거주지 개선과 관련해서는 살고 있는 집도 땅도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어 도움을 주기가 난감한 형편이라고 전했다. 인근 요양원에 들어가자는 권유에 강 할머니는 “지금 사는 이 곳이 제일 마음이 편하고 좋다”며 “귀가 잘 안 들려 소통이 않되 요양원에 가도 불편하기만 할 것 같아 싫다”고 심정을 말했다.

강 요양사z는 “곧 닥칠 장마에 조금 남아 있는 마당마저 무너질까 걱정이고 할머니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기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다친 손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나선 강 할머니는 “가끔 날 찾아와 물도 길러다 주고 말동무도 되어준 집배원에 고맙다”며 요양보호사의 부축에 의지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경사진 길을 내려갔다.

강 할머니의 경우 현실적으로는 기초생활 수급자 그 이상의 지원이 필요 하지만 법적으로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현재의 지원체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실질적인 실태조사와 지원범위 확대, 관련기관, 단체의 복합적인 지원 등을 통해 강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복지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지원이 매우 절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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