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길 위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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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길 위의 삶’을 살아간다
  • 정기애 기자
  • 승인 2012.05.29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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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설 집배원이 어르신 앞으로 온 택배를 전하고 있다.

▲ 윤영설 순창우체국 집배원
“잘생겼지, 마음씨 좋지, 사람들하고도 잘지내지. 어디 빠지는 데가 없어요.”

“개성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겨주고 다독이며 이끌어 가는 큰형님 같은 분이시죠.”

윤영설 집배원에 대해 동료들이 오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소리들이다. 동료들은 입을 모아 그가 얼마나 성실한 집배원인지 얘기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지만 정작 본인은 민망하고 당혹스런 표정으로 진땀을 닦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집배원을 직업으로 길 위에서 생활한지 24년째인 윤영설 집배원(47세)은 유등면 외이리가 고향이며 지금은 해태아파트에 살고 있는 순창토박이다.

겨울밤 손전등 들고

함께 배달했던 사람들

그 따뜻함이 그립다

윤 집배원은 89년, 24살 때 정읍의 감곡우체국에 첫 발령을 받고 2년 6개월여 동안 일을 했다. 초임지에서 처음 배달을 시작 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진 붉은 황톳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바퀴에 황토가 얼마나 끼는지, 항상 꼬챙이를 가지고 다녔다.

“조금 가다가 바퀴에 낀 흙을 파내고, 또 조금 가다 파내고…. 당시에는 황토와 자전거와 싸우면서 배달을 다녔지.”

처음 배달을 하며 힘들었던 건 황톳길 때문만이 아니다. 길을 몰라 헤맸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다. “아, 전임자가 동네 길만 가르쳐 주고 가버린 거야. 편지를 집집마다 전해줘야 하는데 주소만 들고 찾아다니려니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겠어. 거기에 발령을 겨울에 받았는데 겨울에는 해가 짧잖아. 편지를 들고 찾아다니고 있으면 날은 어두워지지, 아직도 배달할 편지는 남았지. 오죽하면 동네 분들이 손전등(후레쉬) 들고 함께 집을 찾아 다녔겠어.”

윤 집배원은 추운 겨울 저녁 초임 배달부를 위해 손전등을 들고 함께 동네를 돌던 마을 분들을 회상하면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고 말한다.

항상 길 위에서 생활하는 집배원들은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윤 집배원은 학교 앞을 지나다 자전거를 탄 학생과 부딪쳐 지금도 앞니가 부실할 정도지만 당시에는 학생이 다쳤을까봐 더 노심초사한 기억이 있다. 또 다리를 건너다 오토바이에서 중심을 잃고 물에 빠졌는데도 그 상태로 배달을 마친 경우도 있다.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넘어지면 다치는 것보다도 넘(남)들이 볼까봐 추접시럽기도(창피하기도)하고 혹시라도 오토바이가 고장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많이 들제. 높은 사람한테 혼나니께.” 

또 집배원들은 집집마다 배달을 하기 때문에 특히 개한테 물리는 사고가 잦다. 윤 집배원도 두 세번 물린 기억이 있어 개가 있는 집은 항상 경계하는 습관이 있다.

“개가 아무리 짖어도 집주인은 ‘우리 개는 순혀서 안물어, 암시랑 안허당께’ 하고 말하지. 근디 뒤돌아서면 그냥 여지없이 물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해. 혹시 몰라서 광견병 예방 주사도 몇 차례 맞었다니께.”

주민 여러분!

올바른 새주소 사용을 부탁해요

현재 윤 집배원이 맡고 있는 곳은 읍내에 있는 기관과 아파트 단지다.

우체국에는 읍내안쪽을 담당하는 금산팀과 강천산팀, 섬진강팀이 있는데 윤 집배원은 금산팀 팀장으로 10년 이상 일하고 있다. 그런데 아파트에 배달을 가면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아 낭패를 볼 때가 있다. “애기가 혼      

 자 있으면 우체부 아저씨라고 해도 문을 안 열어줘. 그럴 때는 엄마한테 다시 전화해 문 좀 열어달라고 부탁하지.” 이럴 때면 윤 집배원은 삭막한 현실사회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한다.

대도시 우체국에는 택배만 전문으로 배달하는 직원이 따로 있지만 군단위 소도시는 모든 배달이 집배원의 몫이다. 윤 집배원은 하루 우편물 1200여통에 택배는 40여개 정도를 배달한다.

특히 부피가 큰 택배가 있으면 한꺼번에 오토바이에 실을 수 없으니 하루에도 우체국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나 배달을 하면서 가장 곤란한건 주소가 잘못되어 찾기가 어려운 경우다.

윤 집배원은 “작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새주소를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배달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며 새주소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부탁했다.

“사람들이 가끔 예전 주소의 ‘리’를 쓰고 새주소의 ‘번지’를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우편물이 가는 집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나마 이 일을 오래 한 집배원

들은 사람들을 다 아니 좀 나은데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집배원들은 잘 찾지 못해 고생을 하지.”

또 택배를 보낼 때는 꼭 전화번호를 써줄 것도 당부했다. 받는 사람이 집에 없을 경우 연락을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가 없는 경우도 간혹 있어 곤란을 겪기도 한다는 것.

윤 집배원은 탁구실력이 좋아 해마다 도민체전에 탁구선수로 출전하기도 하고 우정노조 순창우체국지부 교육홍보국장직을 맡는 등 다재다능한 실력도 함께 갖추고 있다.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를 하는 시간에도 한쪽에서는 우편물을 챙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집배원들의 쉴 새 없는 손놀림 속에 지역별로 분류되고 있는 저 우편물들이 내일이면 주인들의 손에 전해질 것이다.

“편지요, 전보요” 집배원의 고함소리에 맨발로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이들이 들고 온 소식에 우리는 울고 웃었다. 그 시절에는 이들이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아무리 인터넷과 휴대폰이 발전했어도 집배원은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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