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구도/ 비천한 재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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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도/ 비천한 재주일지라도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2.08.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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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도둑 도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40

국장이 인사과장을 불러 이번 인사에서 PㆍC를 빼고 YㆍK를 달라고 하였다. 상대방이 다소 의아해 하였으나 꼭 그렇게 해달라며 부탁하였다. 곁에서 이를 지켜 본 내가 국장에게 물었다.

“왜 그리 하려고 하십니까? 빼려는 사람들은 젊고 기획력도 있으나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경험이 좋기는 하나 기획은 좀 쳐지지 않습니까?“

“당신 말이 맞긴 하지만 PㆍC 같은 사무관은 너무 많아. 승진 싸움이 너무 치열해서 힘들어. 그리고 우리 국 업무가 대부분 농업인과 유통인 사이에 이뤄지는 일로 조정해야 할 게 많지.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그간 혈기와 원칙만 말하는 바람에 민원이 자주 나 윗선으로부터 욕만 먹었지 않은가. 나는 YㆍK 같이 좀 사교성도 있고 유들유들하며 뱃장도 있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적임자라고 보네. 이런 경우에 쓰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뭐더라?“

“예? 아,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하죠. 조직이 잘 굴러가려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기야 똑똑한 자들만 모이면 오히려 분란만 일어나기 십상이죠. 제가 이 논리로 인사과장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사기ㆍ맹상군열전(史記ㆍ孟嘗君列傳)》에 나온다.

‘최하자유능위구도자,…,객지거하좌자유능위계명(最下者有能爲狗盜者,…, 客之居下坐者有能爲鷄鳴) 식객 중 제일 아래 있는 자는 개 도둑으로,…,식객 중 아래에 있는 자는 닭울음소리를 내어’

춘추전국(春秋戰國, BC770-BC221)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문하에 3천여 명이나 되는 식객들을 두고 있었다. 누구든 특유의 장기를 갖고 있으면 맹상군이 매우 중하게 대접하였고, 문객들은 성심성의껏 맹상군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다.

한번은 맹상군이 왕의 명을 받아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진왕이 뜻밖에도 트집을 잡아 숙소에 연금을 시키고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고민만 하고 있을 때 마침 진왕의 애첩인 연희(燕嬉)가 왕을 설득하면 돌아갈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바로 그녀에게 왕을 설득하여줄 것을 청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교환조건으로 맹상군이 소중히 갖고 있던 보물인 여우가죽옷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맹상군은 마음속으로 아차 싶은 마음이 되었다.

“이것 참 큰일이다. 그 여우가죽옷은 이미 진왕에게 드렸는데…, 어디에서 다시 그것을 구해온단 말인가?”

맹상군이 어찌해야 하나 하고 일행인 식객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을 때, 이전에 도둑질을 해본 경험이 많은 한 식객이 나섰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 옷을 귀신도 모르게 빼 오겠습니다.” 그 식객이 심야를 틈타 몰래 궁중의 보물창고에 들어갔을 때, 수위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므로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그가 개 짖는 소리를 내었다. 수위는 창고 주위에서 기르는 개가 짖는 것으로 알고 돌아갔다.

연희가 여우가죽옷을 받고 매우 기뻐 진왕에게 애교를 부리며 맹상군을 보내도록 적극 부탁하니 진왕이 마침내 석방명령을 내렸다. 맹상군은 왕이 다시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 서둘러 행장을 차려 일행을 데리고 밤중에 도망쳐 나왔다. 마침내 진 나라의 국경입구인 함곡관(函谷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함곡관은 밤이 되면 문을 닫고 다음 날 새벽에 닭이 울어야 문을 여는 곳이었다. 아직 새벽이 되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으니 일행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다. 마침 닭 우는 소리를 잘 내는 한 식객이 앞으로 나와 닭 우는 소리를 내었다. 이 소리에 근처에 있던 닭들이 새벽이 온줄 알고 같이 울어대니 성문 수위도 날이 샌 것으로 알고 문을 열어주었다. 맹상군 일행이 재빨리 함곡관을 빠져 나와 서둘러 도망갔다.

그런 가운데 진왕이 맹상군을 풀어준 것이 뒤늦게 후회가 되어 바로 병사를 보내 다시 잡아 오라고 명했다. 병사들이 함곡관에 이르러 보니 맹상군 일행이 이미 멀리 벗어나 도망쳐 버려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맹상군이 위험을 벗어난 후 감개무량하여 말했다.

“이번에 내가 평안히 돌아오게 된 것은 모두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리를 잘 낸 식객들의 덕분이다!”

당초 이 고사는 ‘닭울음소리, 개 도둑 등 비천한 재주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 는 의미를 가졌으나, 훗날 닭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좀도둑질하는 하찮은 재주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재능이나 특기를 가진 사람, 어중이떠중이, 잔재주를 자랑하는 것,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바른 사람이 배워서는 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등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도둑 또는 어떤 큰 재능이 없더라도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사한 성어로 호군구당(狐群狗黨)이 있다. 여우와 개의 무리라는 것으로 악당의 무리, 불량배 등 의미를 갖는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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