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암 선생 학술적 가치, 다방면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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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암 선생 학술적 가치, 다방면에서 빛난다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2.10.10 15: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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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암 신경준 선생 탄신 3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사상·학문에 해박, 융통성 있는 조선시대 학자

조선후기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 선생 탄신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5일 향토회관에서 열렸다. 여암선생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가 주창한 학술적 가치를 현대적 관점에서 짚어보기 위해 열린 학술대회에는 300여명의 주민과 후손들이 참가했다.(사진)

여암 선생은 지난 1712년 순창읍 남산마을에서 출생해 좌승지까지 벼슬을 지냈다. 불혹이 넘는 43세에 호남좌도 증광초시에 1등으로 합격했으며 장연현감, 동부승지, 병조참지, 순천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여암 선생은 다방면에서 학문이 뛰어나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고동환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다섯 살 때 시경을 읽을 정도로 문재가 뛰어나 여암의 집안에서는 여암을 8살 때 서울로 불러들여 가르치다가 9살 때는 뛰어난 스승을 찾아 강화도까지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런데 여암의 문집이나 주변 인사들의 글에서는 여암을 가르친 스승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 스스로 학문을 개척해간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설명했다. 여암 선생의 주요 저서는 산수경, 도로고, 산경표, 동국여지도, 수차도설, 부양도, 군헌지제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고 교수는 “여암 선생은 조선시대 주류적 사상인 성리학에만 몰두하지 않고 다른 분야의 학문에도 해박한 지식을 지닌 학자였으며 다른 사상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입장을 보인 사상가였다”고 그를 설명했다. 박명희 전남대학교 교수는 “여암 선생은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저서활동에 심혈을 기울였고 장연현감을 지낼 당시 지은 민은시를 본 영조가 흡족해 했다”며 민은시의 특징과 내용에 대해 청중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문학작품에서의 신경준의 사실적이고 개성적인 측면이 근대지향과 맞닿아있다고 판단한다. 전시대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현실을 존중하면서 자신만이 가진 개성적인 세계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토 히데토 일본 국립 도쿄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여암의 한자음, 그 한국적 특징과 보편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여암 선생이 연구하고 구사했던 한자음과 고어연구가 일본에 미리 알려졌더라면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국을 누비며 사람을 만나고 학문을 논했던 사람답게 그의 지리사상과 국토인식에 대해 논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됐다. 양보경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도로고는 유통경제, 시장경제, 화폐경제가 활성화되고 육로와 수로 등 도로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가장 잘 정리하여 반영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사회ㆍ경제적인 변화와 공간적인 변화의 상호작용, 양자의 관계의 중요성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또 조선 왕실의 권위와 정당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관원들이 통행하던 사성로와 일반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지름길 등을 수록해 다른 길이 있다는 융통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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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oopoudkbm@gmail.com 2013-08-10 14:05:53
I think so. I think your article will give those people a good reminding. And they will express thanks to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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