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47) 인생의 목적은 자기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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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47) 인생의 목적은 자기개선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2.10.25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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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 나와 관련 있는 사람, 나의 행불행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남과 남 사이에서 태어나 남과의 관계에 의해 살다가 남(흙)에게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내가 공부를 하는 것, 일을 하는 것, 생각을 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이고 산다는 것은 남과 함께함을 의미한다. 해서 사람은 삶의 목적이다. 일에 대한 견해 차이로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수단을 위해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혼자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서 성립된다. 따라서 인생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나무가 가만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듯이 나의 마음이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나와 관계있는 사람의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불행하다면 내 마음의 평화는 부서진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이 행복해야할 이유이며 남의 행복을 위해 내가 관심 가져야 할 이유이다. 우리들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기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어 자신의 결함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매한 욕구에 의해 인도되어 불행과 재앙을 자초한다. 우리들 육안의 눈은 보이지 않는 곳을 못 보며 우리의 귀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우리의 입은 먹어보지 않고 맛을 모르듯이 우리 인간은 한계 속에 갇힌 존재이며 한계 내에 갇힌 체 욕심에 의해 세상을 해석함으로서 다른 사람과 충돌하고 그럼으로써 인생의 평화는 깨어진다. 사회와 인생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나와 다름을 긍정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한다. 내가 옳다는 교만한 생각은 언제나 자기 안에 갇혀 있을 때 생기는 것이고 겸손이란 자신에게 갇히지 않은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 용서와 다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들의 좁고 어두운 마음의 눈은 길흉화복의 원인을 구분하지 못하며 삶의 절반을 불행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경쟁을 권장함으로서 욕망을 조장하여 강자 독식의 세상을 만들어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고 기아와 불행을 확대 생산한다. 경쟁과 탐욕은 모든 죄악의 원인이다. 따라서 사회와 개인의 재앙과 불행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공존과 비움이 세상과 인생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탐욕과 관능 약육강식의 노예에 불과하다면 하찮은 동물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은 동물과 같은 생명체이면서도 동물이상을 추구하는 존재가 되길 추구할 때 보존되는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최선의 경지는 자신과 인류의 불행의 원인을 알고 미연에 예방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이다. 자기 확대의 욕망에 근거한 다듬어지지 않은 무지한 언행이 인간관계의 불행의 근본이니 인간관계를 유쾌하고 원활하게 하기위해선 심성을 원만하고 여유 있게 길들이고 자신을 철저히 비워서 탐욕, 미움, 차별이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비우면 분란이 잃어나지 않으며 비우면 사물의 실상이 보이고 실상을 알면 해법(길)을 찾을 수 있다. 뱃속을 비우면 배가 편안하고 마음을 비우면 마음이 편안하다. 비우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농부가 거름을 욕심내면 벼는 바람에 쓰러지고 키큰 나무는 태풍에 부러지며 너무 무성한 나무는 뿌리가 뽑히지만 메마른 벼와 키 작은 풀은 태풍에도 온전하다. 즉 더 갖고 싶고 더 크고 싶은 욕심 더욱 성하게 잘 살고 싶은 과욕은 재앙의 원인이 된다.

대영약충(大盈若冲) 크고 채워져 있는 것은 비워있는 것과 같다[노자]

비어있다는 것은 시야가 가려지지 않아 투명하여 밝고 맑아 잘 볼 수 있으니 지혜롭다는 뜻이며 인간으로서 최상의 경지에 차있는 사람은 비워져있다는 말이다. 하늘은 비어있기에 하늘이고 신은 보이지 않음으로 신이며 인류의 스승들은 스스로를 비울 수 있기에 인류에게 길을 제시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다. 약고 영리한 작은 지혜는 경쟁하고 충돌하여 불화를 만드니 어리석고 어둡다하고 지혜가 최선에 이르는 것을 성스럽다한다. 최선의 지혜에 이르면 자기를 비우게 되고 공존을 추구한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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