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교/ 힘이 있을 때 몰려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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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지교/ 힘이 있을 때 몰려오지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2.11.1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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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45

필자가 업무 관계로 안면을 트게 된 중국 모 부처의 부부장(차관급)은 격의가 없는 분이셨다. 사는 곳이 가까워 자연스레 방문하는 사이가 되어 어느 해 춘지예(春節. 음력 설)무렵 그의 집에서 저녁을 하게 되었는데 전화는 물론 찾아오는 이도 많아 문전성시였다.

“부부장님, 인기가 참 많으시네요. 평소에도 늘 이렇습니까?”/ “그게 아니고 앞으로 부장(장관)이 될지 모르니 눈도장 찍어두자는 게지!”/ “수하들을 위해서라도 꼭 부장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4년 후 다시 그 분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퇴직하여 힘이 없어져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뜻밖에도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갓끈 떨어지면 하릴없는 참새만 날아온다던데….”/ “무슨 말씀을! 시도지교(市道之交)란 말을 들어 봤나? 난 오래전부터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살아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도 지낼 수 있다네.”

사마천(司馬遷)의《사기ㆍ염파인상여열전(史記ㆍ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

객왈, 군하견지만야, 부천하이시도교, 군유세, 아칙종군(客曰, 君何見之晩也, 夫天下以市道交, 君有勢, 我則從君)…. 문객이 말하기를 “장군은 아직도 세상 시장상인들의 교제를 모르시는군요. 장군에게 힘이 있으면 모이고….”

염파(廉頗)는 전국(戰國, BC475- BC221)시대 조(趙)나라 명장이었다. 효성(孝成)왕 때에 진(秦)‧조(趙)간에 전쟁이 났을 때 장평(長平)을 지키고 있었다. 염파가 나름대로 계획을 갖고 방어전략을 펴고 있었으므로 진군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진나라는 간첩들을 몰래 보내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하였다.

“진나라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조나라가 조괄(趙括)을 대장군으로 기용하는 것이다.”

평소 의심이 많던 조왕이 염파가 뚜렷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들리므로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보냈다. 조괄은 이론에는 강하나 실전에는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공을 세워볼 생각이 가득하여 경거망동하여 바로 출전토록 하였다. 결국 진나라 백전노장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여 40만 대군을 잃고 국력이 더욱 쇠약해졌다.

한편, 연(燕)나라가 진ㆍ조간의 전쟁에서 조나라가 패하여 쇠약해진 것을 보고 조나라를 쳤다. 조왕은 지난번의 과오를 뉘우치고 염파를 대장군으로 다시 기용하여 응전토록 하였다. 과연 염파는 과연 욕되지 않게 사명을 다하여 연군을 대파하였다. 이후로 염파는 또 다시 조야의 중시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염파의 집 주위에 한 가지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염파가 면직되기 전 대장군 시절에는 많은 문객들이 몰려왔으나 해임되어 힘이 없어졌을 때는 뿔뿔이 흩어져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왕의 중용을 받게 되자 돌아갔던 문객들이 구름같이 모여 다시 모이는 것이었다. 염파가 이처럼 그의 권력의 부침에 따라 의리도 없이 오고가는 문객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한 문객이 말하였다. “아, 장군은 어찌하여 아직도 그 이치를 모르십니까? 이게 바로 장삿속 교제라는 것(시도지교)입니다. 세력이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와 따르지만 세력이 없어지면 이익이 없으니 당연히 떠나는 것입니다.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니 그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시고 받아주십시오.”

원래 상인들처럼 이해관계에 의한 교제라는 뜻이다. 훗날 사람들은 ‘자기이익만 꾀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는 작태’를 이 성어로 비유하였다. 한편으로는 정계나 관가에서 고위직이나 잘 나가던 사람이 과거에 자기를 따르고 교제해온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것에 세상이치가 그러하니 실망하지 말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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