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5)/ 월매나 얄미웠을까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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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5)/ 월매나 얄미웠을까 하고 ...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2.11.22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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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⑤
월매나 얄미웠을까 하고 어머님 산소 있는 선산 한번 올려다봅니다

 

워메, 간만에 집에서 하루 종일 나무를 해서 쟁여놓고 표고버섯을 따고 배추와 무시를 뽑아왔네요. 워째선지 나이가 들수록 농삿일 안하는 요맘때가 쓰잘데기 없이 더 바빠지네요.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 지 얼굴에 책임을 진다고 허길래 아조 편해질 줄 알았는데 쌩판 더 바빠징게 참말로 뭣한다고 요리 바삐게 사는지 허퉁해지기도 하지만요.

 

인디언들은 주위의 풍경 또는 마음의 변화에 따라 주제를 달아 열두 달 이름을 정한다는디, 11월은 요렇쿠만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라크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 족)이라네요.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넘넘 멋져분다는 생각이 들어요. 메타 세콰이어 잎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강천산 애기 단풍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니랑게요. 내 옆에서 기쁨을 주는 모든 사람들도 고대로, 첫눈을 기다리는 가슴 가득한 그리움도 고대로, 이만큼 먹은 나이 속에 들어있는 사랑과 황홀함도 고대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잖아요.

순 우리말로 허면 ‘미틈달’,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이지만 서울떽은 오지게 맛나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달이네요. 시집올 때 제가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라면과 참치김치찌개 정도였어요. 크크, 근데 울 시어머님의 손맛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맛깔나서 근방에 소문이 자자했드랬습니다. 주로 순간에 뚝딱 만들어 내는 작품들이 아니고 한나절 내내 준비해야 만들어졌지요. 주로 화똑에 들깨를 갈아서 만드는 요리들을 해주셨는데 어찌나 맛나던지 잊혀지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소박한 맛이 일품이죠. 찬바람이 불어 된서리가 내리기 바로 직전 어머님은 안골 산중에 심어진 호박밭에 가셔서 아주 작은 애기 호박과 호박 넝쿨이 이제 막 뻗어나가려고 꼬물꼬물 하는 놈들을 시린 손 호호 불며 따오시죠. 평평한 곳에서 애기호박을 주먹으로 툭 치시거나 칼등으로 내리쳐 반쪼각 내시고 호박잎과 넝쿨, 그리고 애기호박을 조물락 조물락 된장으로 양념을 해놓고요. 화똑을 쓱쓱 씻은 후 이미 씻어 소쿠리에 건져 놓은 들깨와 쌀 쬐까를 와락 붓는데 꼭 전쟁터 나가는 여장군처럼 씩씩하게 팔 걷어 부치시던 표정이 떠올라 킥킥거려 봅니다. 쌀 뜸물로 된장 풀어 끓인 국물에 들깨 갈아 넣어 한소끔 끓이다가 호박잎과 넝쿨, 그리고 애기호박을 넣어 마늘만 툭툭 찧어 넣어주면 아! 그 맛은 이름난 맛집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딱 두 번 먹어 보았어요. 어머님이 그 이듬해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다신 맛볼 수 없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해보면 어머님의 그 맛이 안나올까봐 시도를 못하고 있어요.

겨울철 큰 가마솥에다 한가득 해놓으셨던 동지 팥죽도 생각납니다. 막내아들이 좋아한다고 밤새 동지알 만들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만드시고는 뒤안에다 퍼놓으시면서 “아야, 막둥이는 한달내내 요것만 묵어도 좋아항게 얼음 사르라니 얼면 퍼다줘라 잉”하시며 서울 시누이댁으로 마실 가셨지요. 호박죽, 팥 칼국수, 호박 조청 ,청국장, 토란나물들 정말 잘하셨어요. 눈이 오는 날 정지에서 제사준비하면서 토란대를 볶으시면 맛본다며 다 먹어 치워서 새로 하실 정도로 맛났지요. 월매나 얄미웠을까? 하고 어머님 산소가 있는 선산 한번 올려다봅니다.

쓱쓱싹싹 무시 씻어 항아리에 앉히고 노오란 배추포기 안에 파와 당근, 마늘, 생강 켜켜이 앉혀 볏짚 한 가닥으로 쨈매서 동치미를 담가 놓으면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한가득씩 먹으며 아! 시원타 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잘 익은 동치미 무시를 잘잘잘 썰어서 청국장에 들기름 한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먹으면 전라도로 시집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그런 어머님이 식성 까다로우신 아버님과 막내아들 두고 눈감으실 때의 애타고 절박하셨을 심정이 이제사 이해가 되거든요. 아마 며느리가 받을 고초도 헤아리셨을 꺼예요.

서울떽이 어머님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허벌나게 고생하는게 눈에 선하시지요. 허지만 지도 인제 맛나게 음식자랑 할 수 있구만요. 집에 온 사람들이 김치 줘, 족발 해줘, 음식점 차려봐 허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디, 워치코롬 올라갔는지 궁금 하시제라 잉! 다음호에 알려드릴께라. 기둘리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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