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군의장실 입구에 군 직원 십 수 명이 모였다. 과장은 물론 평소 들를 일이 많지 않은 담당급 직원 들도 다수였고 주인이 자리를 비운 부 의장실은 아예 군 직원들로 점령된 상 태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초조해보였다. 평소 언변이 출중했던 직원도 이곳에서만큼 은 조용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바빴다. 의회사무 과 직원들은 열심히 의장실을 드나들었 지만 아무도 안에서 얘기되는 것에 대 해 언급하지 않았다. 바깥 직원들은 걱 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시각 의장실에서는 군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른 바 문제예산으로 지목된 사업들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를 논하는 ‘계수조 정’이 한창이었다. 자신들이 입안한 사 업이 불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돼 설명할 준비를 미리하고 직원들이 의장 실 주변을 맴돈 것이다.

직원들을 피 말리는 계수조정은 저 녁시간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그러 다 농업기술과에서 추진하는 블랙커런 트 시범재배사업이 전액 통과됐다는 얘 기가 전해졌다. 사업을 입안했던 담당 직원은 소식을 듣자마자 화색을 보이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의장 부속실을 나 서는 그의 등을 바라보던 다른 과 직원 들의 시선에서 부러움이 엿보였다. 한 직원은 “의원들이 사업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문제예산으로 지목했다”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막상 예산안이 통 과될 때는 “짜릿하다”고 말했다.

문제예산은 군의원들이 사업 취지와 소요 예산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며 따 로 심사하겠다고 분류한 사업안을 말한 다. 사업을 입안한 담당급 직원을 비롯 해 과장들은 문제예산이 생기면 열심히 의원실을 찾아와 사업 목적과 효율을 설명한다. 의원실 문을 여는 이들의 양 손에는 음료수나 먹을거리가 들려있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군의원은 “대개의 문제예산은 과장의 설명에 의해 계수조 정 전에 이미 합의가 된다. 사업 목적 이 완전히 틀렸다면 모를까 한밤에 찾 아와서 설명하고 부탁하는 노력은 분명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문제예산으로 분류됐다 통과된 사업은 공무원으로서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한 번 의심됐던 사업은 아무래도 의회 현장실태조사나 행정사무감사에서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고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몇 배로 비판받을 수 있다.

이날 의장실 입구에 모였던 군 직원 들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망치를 두 드릴 때까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 했다. 또 다른 직원은 “군에서도 이정 도인데 도청이나 국회는 오죽하겠나. 공무원이 결재서류 들고 복도에 줄지어 선 모습이 장관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