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 몸을 숨길 곳이 많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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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삼굴/ 몸을 숨길 곳이 많아야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3.01.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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狡 날랠 교, 兎 토끼 토, 三 석 삼, 窟 구멍 굴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50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할 수 있는 굴이 있나요? 젊은 시절에는 집, 돈, 직장이 중요한 굴로 여겨지지만 이제 나이 들으니 가족, 고향, 친구가 가장 든든한 굴이라는 생각이 들더이다! 친구에게 평소 인심을 잃지 않고 동료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가족에게 사랑을 잃지 않는 굴이 진정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은신처이며, 나의 노후를 더 편안히 그리고 후회하지 않고 보내게 하는 굴인 것이다.
   
유향(劉向)이 쓴《전국책ㆍ제책(戰國策ㆍ齊策)》에 나온다. 풍훤왈, 교토유삼굴, 근득면기사이, 금군유일굴, 미득고침이와야, 청위군복착이굴(馮諼曰, 狡有三窟, 僅得免其死耳, 今君有一窟, 未得高枕而臥也, 請爲君復鑿二窟) 풍훤이 말하기를, ‘영리한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갖고 있지만 겨우 제 목숨 하나 건지는데 불과합니다. 이제 주군께서 굴을 하나 가졌지만 베개를 높이하고 잘 수 없으니 제가 주군을 위해 굴 두 개를 더 파도록 해주십시오.’

전국(戰國, BC475-BC221)시대 제(齊)나라에 풍훤(馮諼)이라고 하는 유명인사가 있었다. 집안이 곤궁한 처지라 당시 인재를 모아 키우던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으로 들어가 지냈다.
어느 해 맹상군이 자기의 봉읍지에서 받아와야 할 빚을 수금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풍훤이 이를 알고 용기를 내어 자진하여 이 어려운 일을 맡겠다고 나섰다. 풍훤이 출발하기 전에 맹상군에게 물었다.
“빚을 다 받은 후에 무었을 사 갖고 돌아올까요?”
맹상군이 간단하게 지나가는 말로 대답했다.
“네가 보기에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이 뭐인지 봐서 그것을 사갖고 와라.”
풍훤이 봉읍지인 설지(薛地)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모든 빚진 자들을 모으게 하고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맹상군은 너희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분은 너희들의 모든 빚을 탕감해주기로 하셨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빚 문서들을 태우겠으니 앞으로는 빚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들이 듣고 모두 감격하여 만세를 불러 맹상군의 인자함에 감사하였다.
풍훤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오므로 맹상군이 물었다.
“어찌 그리 빨리 돌아 온 것이냐? 돈은 모두 가져왔는가?”
“모두 거두었습니다.”
“뭘 사왔는가?”
“제가 보니 이 집에는 금은보화와 진기한 애완동물들은 매우 많으나 유독 인의(仁義)만이 없는 것 같아서 바로 그것을 사왔습니다.”
맹상군이 듣고 매우 기이하게 생각되어 물었다.
“인의를 어떻게 산단 말이냐?”
풍훤은 전혀 당황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제가 보기에 주군께서는 설지의 지주이기는 하나 자기의 백성에 대하여 가련하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고 오히려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단으로 모든 빚 문서를 태워버렸더니 모든 백성들이 맹상군의 은덕에 크게 감읍하였습니다. 이것이 주군을 위하여 인의를 사온 것이 아니고 뭣이겠습니까?”
맹상군이 듣고 돈을 날린 것에 기분이 매우 상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 없어 그냥 덮어두고 말았다.
그 이듬해 제나라 왕이 유언비어, 즉 맹상군이 유명해지고 신망이 커 왕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왕이 크게 걱정이 되어 맹상군의 직위를 뺏어 버리므로 갈 곳이 없게 된 맹상군은 도리 없이 그나마 남아 있던 자기의 봉읍지인 설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설지 백성들이 맹상군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남녀노소 모두 성 밖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이때 맹상군이 비로소 인의를 사왔다는 풍훤의 말이 생각나 그를 달리 보게 되었다. 그를 불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내가 오늘에야 그대가 나를 위해 인의를 사왔다고 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되었군. 고맙구나.”
풍훤은 맹상군이 이제야 자기를 신임하는 것을 보고 의견을 내었다.
“영리한 토끼가 세 개의 소굴을 파두기는 하지만 한 번의 죽음을 면할 수는 있을 뿐입니다. 주군은 이제 겨우 하나의 소굴을 갖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로는 사실 베개를 높이 베고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지요. 제가 다시 두 개의 소굴을 만들어 놓아 근심을 덜고자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이리하여 풍훤이 세객(說客)의 신분으로 위(魏)나라로 가서 양혜왕(梁惠王)에게 말하였다.
“여러분께서는 맹상군의 업적과 능력에 대하여 모두 들어 잘 아실 줄 믿습니다. 왕께서 나라를 강성하게 하여 제후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시려면 맹상군의 보필이 필수적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맹상군은 제나라로부터 버림을 받아 밖에 내쳐져 있어 제나라 왕에 대하여 원망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맹상군을 청하여 왕을 보필하도록 한다면 틀림없이 전심전력을 다하여 모실 것이라고 봅니다만….”
양혜왕이 듣고 서둘러 맹상군에게 사람을 보내어 중용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바로 즉답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우선 제나라의 반응을 기다리게 하였다. 양혜왕이 사자를 두 번이나 맹상군에게 보냈으나 모시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이러한 소식은 바로 제나라 왕에 알려졌다. 만약 맹상군이 위나라로 가 버리면 큰 낭패라고 걱정이 된 제왕이 되어 즉시 사람을 시켜 귀한 예물을 보내면서 그간 내쳤던 일을 사과하고 복직하도록 청하였다. 풍훤이 예상했던 일이 순조로이 나타나자 바로 왕에게 ‘제나라의 종묘(宗廟)를 설지에 설치’ 하도록 요구하였다. 종묘가 있는 곳은 한 나라의 중요지역이 된다. 만약 외국군이 쳐들어오면 온 나라가 나서서 막고 보호하므로 설지를 신성한 지역으로 만들어 안위를 보장받으려고 한 것이다. 종묘가 모두 설치된 후 풍훤이 맹상군에게 말하였다.
“이제 세 개의 굴을 다 만들어 놓았으니 베개를 높이하고 걱정 없이 잘 주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을 몇 십년간 지내는 동안 어떤 재난과 고난을 받지 않고 평안히 지낼 수 있었다.
당시 이 성어는 ‘방비를 위한 계책은 매우 조밀하여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몸을 숨길 곳이 많으면 재난을 잘 피할 수 있다’ 는 다소 나쁜 의미로도 사용이 되고, 영악한 토끼처럼 피난처로 각기 다른 세 개의 굴은 파 놔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유사한 성어로 고침무우(高枕無憂)가 있다. ‘베개를 높이 하고 걱정 없이 잘 자다. 마음이 편안하고 근심걱정이 없다’ 뜻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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