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우리동네 이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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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우리동네 이장님
  • 황의관 정주기자
  • 승인 2013.02.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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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석산 강경마을 김희수 이장을 만나다

 

▲김희수씨가 지난 2006년부터 오로지 연필과 색연필, 펜만으로 연습장에 그려온 그림들.
▲적성 강경마을 이장 김희수씨.

가난한 어린 시절 접어야 했던 꿈. 작은 연습장 위에 오로지 연필과 사인펜, 그리고 색연필만으로 아름다운 꽃과 탐스런 과일을 담아내는 적성면 석산리 강경마을의 김희수(56) 이장은 어린시절 이루지 못했던 그 꿈을 중년을 넘긴 지금에야 흰 종이에 그려내고 있다.
지난 29일, “우리 마을 이장이 그림을 기똥차게 잘 그리는데 한번 와서 봐봐”하는 소식에 찾은 강경마을회관에는 쑥스러운 듯 연필을 든 김희수 이장이 있었다. 아이들 연습장으로 쓰이는 노트를 건네는 투박한 손에서 농사짓는 순창토박이임을 알 수 있었지만 잠시 후 종이 위에 거침없이 그려내는 파도와 나룻배는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다 가난 때문이지”
적성 고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곱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순창읍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아주 어릴 때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순창초를 졸업하고 북중에 들어가면서 그림에 남다른 특기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전국 단위의 미술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는 그가 잠시 한숨을 쉬며 “다 가난한 탓이지”라며 인생사를 늘어놓는다.
북중을 졸업하고 지금은 제일고인 그때의 순창농고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는 그때부터 자연을 벗 삼은 농사꾼이 되었다. 그림에 대한 공부는 시작도 못했다. 북대미에서 먼저 밭농사와 벼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꾸리다 1978년 군에 입대했다는 그는 훈련소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고.

 

▲적성 강경마을의 김희수 이장이 인터뷰 도중 뚝딱 그려낸 그림.

“쉽게 사라지지 않아, 꿈이란 거”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그림과의 인연은 아내인 박경자씨와 인연을 맺게 하는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연애 시절, 그는 그림으로 지금의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내는 섬세하면서도 순수한 그의 그림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에는 농사일에 모든 시간이 뺏겨 그림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아이 낳아 기르면서 바쁘게 사느라고 그림을 꿈도 못 꿨지. 그러다가 지난 2006년 쯤 갑자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한번 또 연필을 잡으니까 쉽게 놓아지지를 않더라고. 그때 끄적거린 그림들이 이거야”라며 낡은 연습장을 꺼내놓는다.
매화, 복숭아, 여인, 낙엽, 과일 그리고 탐스런 장미까지 투박한 농사꾼의 손으로 그렸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섬세한 그림들이다. 그의 지인들은 “도화지에 그렸으면 액자에다 걸어 놓아도 될 정도 아니냐”, “이장이 대학교도 다니고 그랬으면 지금 아주 크게 됐을 인물인데….”라며 감탄 섞인 아쉬움을 내비친다.
조그만 화실이나 전시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게 뭐라고 전시를 해. 누구 보라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야. 그림 그리고 앉아 있을 때 느끼는 이 감정이 좋아”라고 답했다. 

“이 곳에서 농사꾼으로 그림 그릴 것”
요즘은 무엇이든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와야 인정하는 세상 아니겠나, 그저 나는 간간히 취미로 그림 그리면서 조용히 농사짓고 사는 게 꿈이라는 그는 잘 나가는 ‘화가’보다 그림 잘 그리는 ‘강경 이장’의 인생을 택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 특출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날들을 살아가는 김희수 이장은 오늘도 연필 한 자루로 세상을 그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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