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12)/ 겨울 내내 어울렁 더울렁 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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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12)/ 겨울 내내 어울렁 더울렁 놀다가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3.1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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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⑫
여기저기 논밭서 ‘손짓’하는 봄이요

봄날  -김용택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꼬옥 내 맴 같당게요. 예쁜 여자라는 단어를 화악 빼 불고 유머스럽고 멋진 남자로 바꿔불믄 오지지만 허퉁한 꿈 같은 이야그가 될까라!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월 초하루 머심들 날이기도 험서 농군들 날이기도 하제요. 새복마다 흐옇게 서리가 내리고 낮에는 뜨거워져서 윗옷을 벗게 만듬시롱 비위 맞추기 영판 애롭게 하는 날씨지만 더 힘든건 일을 죽어라 해야 되는 일철이 돌아왔다는 거제라. 겨울 내내 어울렁 더울렁 놀다가 여기저기 논밭에서 손짓하며 불러대는데 목도 어깨도 아푸고 다리도 쑥신거리는게 한해마다 눈에 띄게 달라지건만 돈 달라고 내미는 애들 손은 가마솥 뚜껑만해지니 일을 내뿔수도 없고 답답해져 오제라.
오죽하면 호랭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우리네 조상님들도 엄청 일하기가 싫어 설라므네 거짓뿌렁 사내끼 매 갖고 뒷산으로 목매달러 갔다는 이야그가 전해지잖여요. 고것도 콩 볶아갖고 먹으면서 갔대니 참말로 재미진 웃음이 절로 나오지요. 찬찬히 살펴보믄 울 조상님들도 놀 땐 놀 줄 아는 강남스타일 분들이셨던것 같아요. 
매섭던 추위가 물러나고 쬐까 따땃해 지는 요맘때부터는 다아 때가 있다고  해버려야 될 농삿일들이 허벌나게 많거든요.
그래서 긍가 ‘동국세시기’에는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 이름 붙여 이제부터 농사를 짓느라 땀 흘릴 머슴들을 위해 잔치를 열고 술과 음식을 푸지게 내놨을 뿐 아니라 용돈도 듬뿍 주고 장터에 가서 쓰게 했는데 이때 서는 장을 ‘머슴장’이라고 했다네요. “앞으로 뼈 빠지게 고생할 테니 이날 하루라도 실컷 먹고 마시고 놀아라”고 어르고 달랬던 것이지요. 글구 나이떡이라고 송편같은 것도 해먹이구요. 근데 우리집 주인마님(울 남편)은 머슴을 어르고 달랠 생각을 토옹 안하는게 워쩔랑가 모르겄네요.
옛날에 시아버님께서 소개하실때 “내는 머슴이고 저것들이 내 주인네라우” 그러시면 “아버님은 지가 상 머슴이지유. 요렇게 심난허게 입고 다닌 주인네가 어딨데요. 그라고 보면 주인네는 단비아빠 밖에 없네요. 쇠경 월매나 받을까요”그러면 “그려 단비어메 애쓴다”하시며 쐬주 한잔씩 따라주셨거든요. 하하
우리 마을에 봄이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서울떽 옷차림이여라. 새벽부터 심난하게 흙 묻혀 갖고 다니면 골목마다 부딪치는 어메들마다 “오호라! 인제 일철이 돌아왔구먼”하심서 웃으시거든요. 넘들 안하는 일 혼자 다~아 허는 것처럼 일할 때 하도 심난허게 일을 헝게 지저분 그 자체거든요. 그려도 일은 잘해요.
그러고 봉게 지도 정말루 많은 일들을 싸목싸목 해냈구만요. 지난 대보름 이후부터 해 놓은 일을 일러 바칠까라! 일단 뒤꼍에 묻어둔 장독대 김치들 군둥내 안나게 저온저장고로 모다 옮겨 놓고 삼겹살 구울 때나 돼지 갈비나 등뼈 넣고 김치찌개 해먹을 것은 따로 놓지요. 묵은 동치미 무시들은 빼서 씻어서 참지름과 고춧가루만 넣어 칼칼하게 무쳐 정리해불고라.
하얀 찹쌀 찌고 엿지름 넣고 고추장 메주 넣고 차가운 곳에서 솥단지에 불 때느라 매운 연기 들이 마시며 맹글어 놓은 고추장을 항아리에 퍼서 담그는데 한나절 꼬박 걸렸고라.
말 날, 잘 띄운 메주와 소금으로 정갈하게 간장 만드는 것은 지 혼자 허긴 처음이고라. 뻥 쬐까 보태서 말하자믄 나무 몽뎅이만 자르면 아궁이로 들어갈 정도로 가찹게 있는 30년 된 묵은 밤나무들 잘라서 나무 보일러 옆에 수북히 쌓아놓길 한나절도 더 해부렀고요. 고추랑 배추 밭 비니루들 걷어서 차곡차곡 모태 놓고, 감자 심을 밭에 거름 뿌려서 말끔하게 해농게 새벽부터 서둘러서 오늘 비니루도 쳐부렀고요.
봄맞이 한다고 집 안팎에 있는 냉장고 정리하고 저온저장고에 있는 음식들도 정리까지 했다고 말 헝게 겁나게 제집이 깔끔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쌈, 워낙 털털해서 치워도 치운 것 같지만은 않다고 미리 고백해야제라.
그 뿐인가요. 1월부터 시작한 학원에서 중학교 아이들 국어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웃어 불고 화도 바짝 내고 강천산 해설가서는 옛 매표소 앞에 피어있는 노란 복수꽃 사진도 찍으며 황홀해 하고 노랗게 움트는 생강나무와 버들강아지도 보면서 탄성도 지르느라 마음도 바빴답니다.
‘봄볕은 며느리에게 쐬이고 가을볕은 딸네미에게 쐬인다’라는 봄날 새까맣게 그을릴 서울떽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영등할매가 며느리를 데꼬 와서 풍년 들길 바라네요. 딸을 데리고 올 때는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는디 바람이 불면 그해 농사가 흉년이 들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헝게 풍성하고 푸지고 오진꼴 보게 올 한해 풍년이 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농사꾼 아지메 권주가 한번 오지게 불러잡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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