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토종씨앗조례 제정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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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토종씨앗조례 제정을 제안하며
  • 김은진 교수
  • 승인 2013.06.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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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은진 원광대 교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씨앗이건만 자기 씨앗을 가진 농민을 찾기는 쉽지 않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다수확품종 개발과 확산에 따른 결과이다.
농민들이 오랜 기간 자가채종을 통하여 보존해오던 씨앗은 수확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농약과 비료를 이용한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점차 정부나 기업에서 제공하는 씨앗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더욱이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농사에 규모화정책이 도입되면서 농민들은 씨앗이나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농민들의 씨앗은 사라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부와 종자기업은 물론이고 많은 농민들도 우리 고유의 씨앗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과 농민들이 씨앗에 보이는 관심은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농민들은 그 씨앗을 직접 심고 기르기 위해서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정부나 기업은 이 씨앗을 유전자원으로 삼아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유전자조작종자를 만들기 위한 특정 형질을 가진 유전자를 찾기 위해서 또는 신품종개량종자를 만들기 위한 자원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즉, 농민은 씨앗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정부나 기업은 산업을 위한 원재료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세계 6번째 규모의 유전자원센터를 가진 우리나라는 이 센터에서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종자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웠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계획 속에 농민, 농업, 농촌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씨앗의 가치가 식량을 통한 인간의 생존권의 문제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없다. 대신 모든 것을 금전가치로 환산하고 이를 누리려는 자본의 독점욕만 있을 뿐이다.
그 독점욕을 교묘하게 ‘강국’이라는 단어 속에 마치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것처럼 포장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런 자본의 논리와 싸우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2008년 토종씨앗 보존을 위한 지침을, 2009년에는 채소품종에 대한 토종씨앗 보존을 위한 지침을 제정했다. 그러나 ‘종자강국’을 통한 이윤을 꿈꾸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입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산 농업을 근간으로 삼는 지방정부의 조례를 통해 토종씨앗의 보존을 위한 지원이 가능하다.
조례가 제정되면 지역에서 대대로 이어온 토종씨앗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호할 수 있다. 씨앗은 오랜 세월 이어오면서 자신의 땅에 적응해 온 역사를 가진다. 그리고 그 역사가 바로 유전적 특성으로 나타나는데 조례를 통해 이 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독점적 지위를 누리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다.
특허나 식물신품종 등의 지식재산권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새로운’ 것이라야 한다는 점이다. 조례를 통해 토종작물을 공시하게 되면 이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떤 기업도 토종작물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특성을 가진 작물이나 씨앗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없다.
따라서 농민들은 자유로이 이 토종작물을 재배할 수 있으며 자가채종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씨앗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현재 경상남도와 전라남도가 토종작물 보호·육성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지역 내에서 토종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충청북도가 토종가축 보호·육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또 몇 개의 지방정부가 조례제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례들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한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도지사가 지정한 작물에 한해서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토종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도지사의 지정에 따르기 보다는 EU처럼 농민이 일정정도의 이력을 증명할 수 있으면 누구든 지방정부에 토종씨앗으로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렇게 등록된 씨앗을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씨앗의 많은 부분이 외국의 종자기업이나 정부기관 등에 넘어갔다. 더 이상의 유출은 없어야 한다. 또한 지식재산권을 통한 독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토종씨앗을 위한 조례를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씨앗은 누군가 소유하는 상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모두와 나누는 것이다.

-한국농정신문(2012.5.7) 농민마당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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