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시작된 ‘국정원 사건 규탄 및 원세훈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는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 민변, 한국진보연대 등 209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의 정치ㆍ선거 개입과 경찰의 축소ㆍ은폐 전모를 규명하는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전국 15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서울대ㆍ이화여대ㆍ경희대 등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고등학생들도 나섰다. 지난달 29일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 모인 고교생들은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민주주의 도난 사건”이라고 규명하고 규탄했다. 개신교(기독교)ㆍ천주교ㆍ불교 단체들도 일제히 나섰다. 손과 손에 촛불과 손 팻말을 들고 집회현장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선거ㆍ정치 개입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나라 밖 동포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 진보성향 한인단체들의 모임인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미주희망연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한인 동포들의 지역별 규탄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프랑스 파리의 교포들도 누리집 <프랑스존>에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해외 동포들은 “지구상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져서는 안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바로 우리의 조국에서 일어났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엄중 처벌 등을 요구했다.
국정원의 정치ㆍ선거 개입에 맞서 공개된 ‘엔엘엘(NLL, Northern Limit Line, 서해북방한계선) 대화록’은 ‘경천동지’할 일이나 세상의 옳고 그름이, 아름다움과 추함이 이렇듯 뒤바뀔 수 있다는 현실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코걸이ㆍ귀걸이 인가. 숭고한 이야기도 더럽고 추잡한 이야기로 돌변한다.
노무현의 엔엘엘 발언 비판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발언과 태도를 들여다봐야 한다. 2002년 5월,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었다. 3박4일 동안 북측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남북철도 연결, 통일축구경기 재개를 요구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모두 수용했다. 박 대표는 갈 때는 중국을 거쳐 갔지만 올 때는 “굳이 먼 길로 돌아갈 필요가 있느냐”는 김정일의 권유에 따라 차편으로 서울로 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과 북이 이렇게 가까운데 먼 길을 돌아서 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졌다”고 박 대표의 자서전에 적혀 있다.
한편, 그해 9월에 열린 남북통일촉구대회와 관련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은 자서전에서 “박 전 대표가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문제가 또 생겼다. 축구 경기 시작 전에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을 외쳤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다시 내게 항의했다”고 적고 있다. 그 해에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까지 대통령선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던 박근혜 대표는 ‘원수’와 손을 잡는 냉혹한 권력 의지의 화신이었을까? 이처럼 아름다웠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이상한 이야기로 바뀔 수 있다. 박근혜도 노무현도 자유롭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한 박근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사실관계조차 왜곡해서 공개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대선 때 이미 국정원과 짜고 ‘엔엘엘’ 관련 발언을 입수 선거에 이용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말로는 민생이 중요하다면서 민주주의 텃밭을 짓밟아 놓고 허리가 부러진 꽃과 풀들의 비명 소리에는 모르쇠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동안 수차례 이런 방법으로 처참하게 짓밟혀왔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3ㆍ15부정선거와 다르지 않다.” “나라가 뒤집어질 일인데 사람들이 무감각해 진 것 같아서 화가 난다.” “선거가 잘못된 것이니 얼마나 위기인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함께 나왔다.” 다시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목소리다. “청와대가 침묵과 방관의 자세로 더욱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는 지적과 요구에 답해야 한다. 국민이 든 ‘촛불’ 앞에 박근혜 정부는 ‘사죄’해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촛불’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