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1)/ 사람 살아가는 것이 으름덩쿨 칡넝쿨 맹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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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1)/ 사람 살아가는 것이 으름덩쿨 칡넝쿨 맹키로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7.19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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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21

의 자                   -이정록 지음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 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쐐기를 한 열방 넘게 한꺼번에 쏘였더니 아조 죽을 맛이었어라. 블루베리를 따는디 고 쬐꼬만 나무에 고로코롬 많은 쐐기가 잠복해 있을 줄 누가 알았겄어요. 아이코메! 쏙! 쏙! 쏙! 애려싼디 폴짝폴짝 뛰다가 주사 한방 맞아도 아픈 건 여전하고 물만 닿아도 온몸이 찌릿찌릿 해져분디 서울떽 엄살 꽤나 떨었당께요. 얼어 죽을 블루베리, 썩을 놈의 블루베리 뒤지게 욕만 퍼붓다가 한입 가득 입안에 털어 넣고 먹고 또 먹었지라. 얄미워서.
장마가 진다고 바람이 씨게 불길래 고추 줄을 치다가 들깻모 옮겨 놓은 밭을 봤더니 세상에나 징허게도 풀들이 올라오고 있어라. 뭔 전쟁 터진 것도 아닌 디 삐죽삐죽 한꺼번에 올라오는 잡초들 땜시 못살겄어라. 밟아도 밟아도 허벌나게 살아나기만 허는게 아니라 빈틈 한나도 없이 온 들판을 뒤덮어 버린당께요. 손 쓸 새가 없어불게 만드는 썩을 놈의 잡초들. 진짜 울 시엄니 말쌈대로 똥을 바가지로 쌀 놈들이구만요. 워째서 오지게도 독허디 독헌 제초제를 써도 다시 씨앗으로 살아나부니 생명력 하난 높이 사주고 싶구만요. 지는 울딸들이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쓰러지지 않고 도도허게 고개 쳐들고 인생을 살았으면 허구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도 잡초와 블루베리와 쐐기와 싸우는 각시가 안쓰러웠던지 아침 일을 끝내고 병원에 가려고 채비를 허는디 “큰딸! 우리 지리산으로 튀어볼까?”허고 여름방학이라 내려와 있는 큰딸에게 밑밥을 던지는 거예요. 요럴 땐 무조건 “넵”하고 쫄래쫄래 따라가는 게 최고입니다.

지가 연애헐 때부터 아는디요. 기냥 컵라면만 묵고 오는 한이 있어도 기분 좋게 따라가야 다시 데리고 가거들랑요.

남원 육모정을 지나서 정령치를 갔다가 성삼재를 휘리릭 한번 보고 내려오는 꼬불꼬불 할머니 지팡이 같은 길은 원제 봐도 정답거든요. 하동, 구례, 곡성을 거쳐 남원까지 오는 섬진강 길의 풍광은 두고두고 추억에 남제라잉.
참말로 연애할 때 오토바이 125씨씨(cc)짜리 뒤에 타고 지리산 길을 휘~이잉 바람소리 내며 올라다녔지라. 아무것도 안 먹어도 신나고 좋아서 꽉 껴안고 꼬부랑 꼬부랑 내려오는 길은 휘모리 장단쳐대듯이 신명났었걸랑요. 아시겠제라 그 맴! 섬진강 오붓한 곳에서 워떠케 살건지 고민도 허고.
고래선지 둘이 결혼을 허고 애기들을 낳고도 가끔 여러군데로 튀었제요. 오죽허면 우리 딸들이 학교 갔다 와서 전화 혀가지고 “또 어디로 튄거여. 쫌 딸들도 데꼬 가봐”하며 궁시렁 궁시렁 댔겄어요. 섬진강 오두막으로 밥 싸고 김치만 싸서 고기 구워 먹고 물놀이 하다 지치면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빙 돌다가 낮잠도 잤었제요. 기차 지나가면 다들 놀래고 신기허게 쳐다보던 우리 촌년 딸들이 이제는 컸다고 한번 모여서 나들이라도 갈라치믄 엄청 힘들구만요. 섬진강 돌멩이 갖고 공기놀이 하자던 네 딸들과 참게장에 밥 비벼먹던 원두막은 없어졌지만 추억은 고대로 남아 있더라구요.
“엄마! 그때는 아이스크림만 사 줘도 좋아서 어쩔 줄 몰랐는데 할아버지 외할머니랑 정령치에서 찍은 사진이랑 보니까 라면 먹던 생각, 파전먹던 생각, 막둥이 신발 잃어버린 것, 래프팅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 하더라구요. 참 빨빨거리고 다니면서 소소한 추억들을 만들었는디 지보다 워낙에 바쁜 학상딸들을 모시고 살라니 안 되네요. 요새는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도 많다보니 우리꺼정 오붓하게 있을 시간도 없지만요.
그려도 지는 이정록 시인 엄니의 말쌈처럼 사람들에게 의자가 되어 주고 싶은 맴이여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거창하게 대단해져서 멋진 삶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경 좋은 데에다가 의자 몇 개 내 놓고 나눠먹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멋져 보이는 삶 살고 싶어라. 지가 의자를 내 놓으면 오셔서 도란도란 오지게 사는 이야그를 들려주실 꺼제라.  서울떽네 농원에는 꽤 괜찮은 의자들이 으름 덩굴처럼 칡넝쿨처럼 더덕 향기처럼 기둘릴지도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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