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국무회의 통과 … 원안보다 형사처벌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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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국무회의 통과 … 원안보다 형사처벌 약화
  • 황의관 정주기자
  • 승인 2013.08.0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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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으면 무조건 처벌’에서 직무 관련 없으면 과태료로 완화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되지 않았어도 처벌하도록 했던 이른바 ‘김영란법’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심의ㆍ의결했다. 법무부의 ‘공무원 보호주의’가 담긴 ‘김영란법’은 당초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로 국회로 넘겨졌다.
이 법안에는 ▶공직자나 그 가족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에게 금품 등을 받으면 직접적인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이하 벌금 등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받은 돈의 2~5배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고 해임이나 파면의 중징계가 가능하도록 했다. ▶공직자가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이나 산하기관, 피감독기관 등에 자신의 가족을 특별채용하거나 수의계약을 통해 가족이 속한 기관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안은 대가성은 물론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이상 금품을 받은 공직자는 무조건 처벌하도록 한 ‘김영란법’ 원안에서 핵심을 거의 들어낸 ‘반쪽법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도 2012년 조사대상 176개국 중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전년도 43위에서 45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오이시디(OECD)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평판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부정부패의 골이 깊다. 그러나 부정부패를 단속해야 할 검찰, 경찰, 공무원 등에 만연된 금품 수수와 기부ㆍ후원 등을 빙자한 청탁 관행의 문제점을 끊으려고 입법한 당초 법안은 엉망이 되었다는 여론이다.
현행 형법상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모두 입증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돈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약한 처벌을 받거나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이젠 직무와 관련된 돈을 받으면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하므로 부패 예방효과가 클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입법 예고한 원안보다는 후퇴했다는 지적이 높다.

‘김영란법’ 반쪽 만든 법무부 뭘 겁내나
‘김영란법’은 권익위가 주도한 법이다. 공무원 뇌물에 대해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 처벌하는 게 핵심이다.
당초 권익위의 입법예고안에는 ‘100만원 넘는 돈을 받은 공무원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평상시 ‘관리 차원’에서 건네는 일명 ‘스폰서(기부ㆍ후원)’, ‘떡값’도 처벌대상이었다. 징계나 형벌을 받지 않는 한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되고 퇴직 후에는 연금도 받는 공무원에게는 높은 수준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법이었다. 미국에서는 1962년부터 대가성 없는 뇌물도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는 반대 의견을 냈다. 권익위의 설득에도 아랑곳없이 법무부는 “과잉 처벌 소지가 있다”며 “1만 명 중 1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부자가 되기 전 공무원으로부터 받은 도움이 고마워서 500만원을 건넨 경우, 먼 친척이 결혼 축의금으로 300만원을 보낸 경우” 등까지 처벌한다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통령선거 개입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시제이(CJ) 그룹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뇌물죄로 구속되고, 엠비(MB)정권 때의 ‘뇌물 부장검사’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등을 떠올려 보면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 스스로가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다잡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검사와 스폰서, 끊이지 않는 비리 공화국
“검사 하나 알면 무엇이든 해결된다.” “법조계에 아는 사람을 찾아 목을 맨다.” 그래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법조계 쪽에 아는 사람을 만들고 그 인맥을 관리한다. 이런 부조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 ‘스폰서 검사’ 2010년 4월 20일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검사와 스폰서’를 방영했다. 부산지역에서 대형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건설업자가 당시 부산지검장과 대검 감찰부장 등 부산경남지역 검사들에게 약 25년에 걸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성 접대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그 후 여야 합의로 특검 수사가 시작됐으나 고작 검사 10명 징계, 7명 인사조치, 28명 엄중경고에 머무는 민심과 동 떨어진 결과를 남겼다.
‘스폰서 검사’들이 무죄를 받았다고 그들이 받은 뇌물과 향응이 무죄라는 사실은 아니다. 단지 받은 향응과 금품에 비해 면직처분이 적절한 수준인가를 논의했지만 현행법에 처벌 규정이 없어 무죄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 ‘벤츠 여검사’ 흔히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 및 인사 청탁 비리는 대검찰청에서는 ‘혐의 없음’으로 처리됐으나 여검사와 내연 관계인 변호사로부터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 명품 백을 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특임 검사팀이 꾸려져 기소됐다. 그러나 벤츠를 받은 시점(2008년 2월)과 사건청탁 시점(2010년 9월)이 달라 대가성이 없는 ‘사랑의 정표’라고 판단해 2심까지 뇌물사건이 아니라 단순 불륜 스캔들로 정리됐다. 재판은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는 무죄로 바뀌고 현재 3심 재판 중에 있다.
# ‘그랜저 검사’ 이 사건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부장 검사가 친구인 건설업자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고 그 사건 담당 검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이 부장 검사는 이 사건의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 등 4600여만원의 금품을 받았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2010년 언론과 국정감사를 통해 ‘봐주기 수사’라는 질타를 받은 후 2년6월의 징역이 선고됐다.

‘김영란 법’ 후퇴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들의 금품수수는 직책을 이용하여 저지른 개인 비리이지만 공권력과 정부의 불신을 조장하고 부패 사회를 만들기 때문에 더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 청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금품을 제공하고 더 큰 대가를 얻고자 하는 부정부패라는 범죄가 판을 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 비리가 터질 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허탈했다. 그래서 ‘김영란법’에 거는 기대는 뜨겁다.
공직 비리는 느닷없이 돈 보따리를 안기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관리 모드’에서 비롯된다. 평소 밥 사고 술 사고 용돈 주며 관계를 맺다가 일이 생기면 청탁을 한다. 이른바 떡값, 대가성 없는 향응이라는 관계가 크고 작은 공직 부패의 온상이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 특유의 병폐에 대한 맞춤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란 없다’ ‘순수한 스폰서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공무원이 뇌물죄로 실형을 받거나, 집행유예ㆍ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 공무원직을 잃고 범죄 경력 자료에 기록돼 전과자가 된다. 벌금형은 직을 잃지는 않지만 전과 기록이 남는다. 그러나 과태료는 금액에 상관없이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는다. 직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금품을 받은 모든 공무원을 처벌하지 않고는 뇌물과 상납의 부패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공직자에게 돈을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현행 형법의 뇌물죄 적용이 어려운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애초 입법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뇌물 제공과 대가성 입증 어려움을 이유로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 부과로 처벌 수위를 완화한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국회 심의과정에서 금품수수에 대해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원안을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이번 법안은 국회 등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국공립학교, 공직자윤리법이 적용되는 공직유관단체(824곳)와 공공기관(295곳) 모두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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