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조선솔 향이 좋아서” 30년째 금산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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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조선솔 향이 좋아서” 30년째 금산 올라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3.09.13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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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도 두렵지 않다! 모험 좋아 정글의 법칙 즐겨보는 83세 강옥희 할머니

▲금산 중턱 너럭바위 위에 놓인 벤치에서 순창읍내를 바라보는 강옥희 할머니.
옥색 스웨터를 입은 뒷모습이 곱기도 하다. 반듯한 허리와 사뿐사뿐 내딛는 걸음. 매일 아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금산(순창읍 순화 소재)에 오른다는 할머니를 찾으러 실상암 앞에 차를 세웠다. ‘무작정 기다리자’ 맘먹고 쳐다본 등산로에 이게 웬걸, 저 멀리 할머니 한 분이 산을 오르고 계신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어르신을 따라 “어르신! 잠시만요!”를 외치며 부랴부랴 따라갔다.
숨이 턱을 넘어 콧구멍까지 차오른다. 가파른 길에 돌까지 튀어나와 아래만 보고선 뛰어 올라가는 중이다. ‘이정도면 보이겠지’ 하고선 자꾸 위를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어르신.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셨는지 뛰다 걷다 쉬다 올라가니 그제야 저만치 강옥희(83ㆍ순창읍 순화) 어르신이 뒤 돌아본다. “그냥 가~ 응? 노인네가 운동하는 것이 뭐 신문날 일이라고 이렇게 아까운 시간 내서 왔어. 얼른 가~ 얼른~!”하시며.

조선솔 좋아 오른 ‘금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0년이 넘도록 이곳을 찾는 강옥희 할머니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금산의 명물이다. 서로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말벗이 되어 산을 오른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강옥희 할머니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50대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산행을 이어오고 있다.
인터뷰 도중 지나가던 김상일(42ㆍ순창읍 남계)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르신을 뵈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계속해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다”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르신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뒤 따라오던 두 명의 여성 등산인도 “우리 할머니 모르는 사람 없지요. 피부도 고우시고 반듯하게 산도 얼마나 잘 타시는 데요”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나 담양에서 시집오셨다는 이야기, 10년 전 떠나보낸 남편과 젊은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다녔던 이야기, 일곱 남매를 낳고도 하나도 트지 않은 배까지 살짝 보여주고 나서야 강옥희 할머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강옥희 할머니는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오르고 눈이 오면 아이젠 끼고 올라가. 몸이 아프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전국에 안 가본 산이 없어. 그래도 여기 금산만큼 소나무가 많은 곳이 없지. 소나무가 사람한테 좋다고 그러잖아. 특히 군데군데 조선솔이 많아서 더 좋아”라며 금산을 오르는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 금산을 오를 때는 함께 산을 오르던 이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한 사람씩 포기도 하고 병환으로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지금은 혼자 남았다. “보이던 사람이 안보일 때면 서운하기도 하고 어디가 아파서 그런지,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했었지. 이제는 나 혼자 운동하니까 째깐한 벚나무들이 벌써 이렇게도 컸구나 하기도 하고 진달래 피는 것도 보면서 산과 벗하고 살지”라며 담담히 말했다.
강옥희 할머니는 봄과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시원한 바람도 좋고 꽃과 단풍 보는 게 좋기 때문이라고. 30년 동안 산을 오르며 산도, 할머니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너럭바위 위에 올라 읍내를 바라보는 마음은 한결같이 평안하다고 말했다.

정글의 법칙 즐겨 보는 모험가
모험을 좋아하는 강옥희 할머니는 ‘정글의 법칙’을 가장 좋아한다. “텔레비전에 김병만이가 나와서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는 정글의 법칙이 제일 재밌어. 나도 꼭 한 번 가보고 싶고 뭣이라도 막 잡아보고 싶고 그래”라며 웃음 짓는 할머니는 산에 다니면서도 뱀을 무서워해 본 적이 없단다. 백옥 같은 피부에 작은 몸집으로 겁이 많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터프’한 반전 매력을 지녔다.
모험심 많고 포기도 잘 하지 않는 탓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발 432.9미터(m)의 금산을 정상까지 올랐던 강옥희 할머니. 요즘은 관절에 무리가 생길까 걱정하는 둘째며느리와 아들 때문에 중턱 바위까지만 올라갔다가 스트레칭을 하고 내려오지만 아직도 몸이 허락하는 한 전국의 산을 다 다녀보고 싶다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도 숨이 차 하는 산타기를 편안하게 즐기는 강옥희 할머니는 운동 말고는 따로 건강을 위해 하는 게 없다. 그저 산을 오르며 자연이 주는 보약만 마실 뿐이다. 보약이나 건강식을 챙겨먹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늙은 할미 뽀뽀해주는 손자덕에 웃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자식자랑은 끊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현재 둘째아들ㆍ며느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강옥희 할머니는 특히 보건의료원에 다니는 둘째며느리, 강현숙 씨에 대한 애정을 뽐냈다. “우리 며느리가 나한테 참 잘해. 내가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걸 알고 ‘어머니, 고기 잡수고 싶으시죠?’ 하면서 한 달에 꼭 세 네 번은 외식도 시켜주고 같이 콧바람도 쐬고. 고맙지.”
이어 자식들보다도 더 예쁜 손주들 자랑도 빠짐없다. “이 할미가 가면 키가 180도 넘는 손주들이 입에다 뽀뽀하고 안고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안겨. 그뿐이야? 내복도 사다주고 용돈도 주고”라며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강옥희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푸른 ‘조선솔’이 기다리는 금산을 계속 오를 것이라 말한다. 아침 9시, 한 걸음 한 걸음 금산을 오르는 강옥희 할머니를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기를. 세월이 녹아난 재미난 이야기들은 덤으로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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