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5)/ 달님께 소원 빌새가 없도록 허벌나게 바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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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5)/ 달님께 소원 빌새가 없도록 허벌나게 바빴지라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9.2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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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25

벼                       -이성부 지음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노오란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들판을 쳐다보다가 얼른 밤나무 산으로 눈길을 돌려불믄 여그저그 일거리 천지당께요. 세상에서 최고로 이삔 노란색으로 빛나도 쳐다볼 새 조차 없이 바빠부네요. 지가 항상 추석 때나 명절 때만 되믄 이삔 문자로 고마운 분들께 선물하는 게 최소 200여 통은 되는디라, 워쪄다 봉께 고럴새도 없었당께요. 허벌나게 바빠농게 동그런 보름달도 쳐다보도 못허고 소원마저 못 빌어불고 허퉁하구만요. 시방이라도 달님께 소원을 빌어볼까 허는디 여러분들은 비셨나요.

서울에 가 있는 두 딸들이 추석 맞아 온다고 헝게 워째 막 집안도 치우게 되고 손님 같고 요상허등만요. 묵은지 맛나게 잘 먹고 있었는디 막 담아준 짐치 먹고 잡당게 총각무시 사다 짐치 담고 배추 겉절이도 쓱싹쓱싹 버무리고 고구마순도 벗겨서 담가놨구만요. 토종 미꾸라지 구해다가 한 솥단지 추어탕도 끓이고 족발도 사다가 맛나게 해 놓구요. 처음으로 소꼬리랑 소 발목아지랑 등뼈랑 몽땅 넣고 곰국도 끓였어라. 아조 바깥에다 솥단지 걸고 장작불로 이틀을 푸욱 고았구만요. 흐옇게 참말로 희뿌옇게 뼈에 송송송 구멍이 나도록 고아 부렀더니 아조 찐한 국물이 되드라구요. 국그릇에 한 국자 떠서 소금 쬐까 넣고 파 송송 썰어 넣고 기냥 마셔도 맛나다고 두 그릇씩 드셔불등만 난중에는 요새 울 시아버님이 식사를 못하신다며 떠가는 조카, 혼자 계신 울 시어머님 드리겠다며 가져가시는 형님, 사연마다 한 냄비씩 드렸구만요, 하도 푸시기로 퍼주니께 울 딸들 “엄마, 우리 먹을 것도 있는겨?” 라며 걱정하더라구요. 아무리 지 엄마가 푸시기로 딸들 맥일 것 생각 안하겠어요.

추석 안날은 딸들과 추석 음식 준비하고 정읍 외삼촌께도 갔다 오고 왼 식구들끼리 놀았지요. 추석날은 성묘하고 줄줄이 오시는 손님들 음식 챙겨드리느라 종종종 거렸는데 생각해보니 옛날엔 그 많은 손님들을 어떻게 대접했었지 했네요. 벌초가 많다보니 성묘하시는 분들이 겁나게 오셨었고, 손윗 아주버님 친구분들도 술 한잔 하러 들르셨고. 단비아빠 친구들도 꼭 우리집으로 모여서 놀았거든요. 시방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사둔의 사둔까지도 워낙에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항상 와글와글 했거든요. 올해는 밤이 추석 전에 안 떨어져서 긍가 알밤 줏으러 오시던 분들이 안 오셔서 그려도 한가 했지라. 딸들이 카카오톡으로 울 친구들은 심심해 죽겠다는디 우린 앉아 있을 새가 없잖여 험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든 말든 지가  해 놓은 음식 잘먹응게 마냥 좋아 헤헤거렸거들랑요.
애들 가고 나니 허퉁해 할새도 없이 알밤 줏으러 산 위로 올라가야 했구만요. 다행히 월요일날 순창교육지원청 분들이 오셔서 알밤도 주워주시고 고추도 따 주신 통에 일이 수월했구만요. 교육장님이랑 돌쇠처럼 힘 써주신 직원 분들 고마웠구만요.

 

오늘 아침은 증말로 바빴어라. 엄니들 마늘 심을 때 솎아 논 무시들, 강화 순무, 뿌랭이 배추들이 엄청 많아서 새벽에 간부터 해놓고 어제 땋은 고추 세척기로 돌려서 건조기에 돌리고 산에서 주워 온 알밤들 선별기에 넣어서 대중소로 가린 다음 벌레 먹은 것들 개려야 택배로 보내지라. 올해부텀 친환경이라 약을 작년처럼 못했더니 벌레 먹은 것이 허천나게 많구만요. 한번 굴리고 두 번 굴리고 세 번 굴려서 봐도 담을 때 보면 또 있어라. 세탁에 빨래 돌리고 잘 말려진 고추 갔다가 반으로 쪼개서 담그고 마늘이랑 생강이랑 양파랑 챙겨서 준비허구요. 고추가는 기계에 밥이랑 배도 쪼개서 갈고 모든 것들을 갈아서 뭔 짐장김치 허듯이 아주 큰 통에 비벼야 헙니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택배 주문 받은 것들 상자 작업해서 보내고 택배 송장 쓰고 나니 오늘까지 써야 되는 이 글을 요렇게 후다닥 쓰고 있응게 서울떽 글이 미친년 바람 난듯 써졌어도 시절이 하 수상헝게 그런갑다 허고 이해해 주씨요 잉!
저녁 학원 수업 하러 가야 허거든요,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시방 지가 김용택 시인처럼 글구만요.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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