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臥薪嘗膽,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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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臥薪嘗膽,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 정문섭 교수
  • 승인 2013.10.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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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 엎드릴 와 薪 섶나무 신 嘗 맛볼 상 膽 쓸개 담

조화(趙嘩)가 쓴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온다. 월왕구천, 와신상담욕보오(越王句踐, 臥薪嘗膽欲報吳), 월왕 구천이 나무 섶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며 오나라에 보복하려고 하였다.

춘추(春秋, BC770-BC476)시대 어느 해, 오(吳)왕 합려(闔閭)가 월(越)나라를 쳤으나 오히려 월나라 대장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고 죽었다. 3년이 지나 그의 아들 부차(夫差)가 월나라에 보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부차는 군사를 잘 조련하여 전쟁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월왕 구천(句踐)이 당해 내지 못하고 결국 투항하여 부차의 포로가 되었다.
구천이 비록 포로로 잡혀 왔지만 마음속으로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월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우선 부차의 신임을 얻는데 진력하였다. 구천이 갖가지 모욕과 굴욕을 참아가며 부차에게 충성하므로 부차는 구천이 정말 자기에 대하여 잘 복종하고 있다고 믿었다. 절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 부차가 구천의 충성을 다짐 받은 후 다시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구천은 돌아오자마자 바로 옛 신하들을 모이게 하여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계책을 착착 준비하여 나갔다. 그리고 많은 인재들과 백성들이 같이 고통을 같이 감내하기로 결의하였다. 자기는 나라를 잃은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표시로 잠자리에서 이불을 덮지 않고 나무 섶 위에서 자고 또 방안의 벽에 곰쓸개를 달아 놓고 밥 먹기 전과 잠자기 전에 반드시 쓸개를 한 번 핥아 쓴맛을 느끼며 나라를 잃은 슬픔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10년간 문종(文種)과 범려(范蠡)의 보좌를 받아 생산을 늘려 국력을 충실히 하고, 백성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병행시켜 강대하고 단결이 잘 된 나라가 되었다. 마침내 오나라를 공격하여 항복시켜 당시 여러 나라들 사이에 우뚝 서는 패왕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와신(臥薪)은 부차가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무 섶 위에서 잤다는 것이고 상담(嘗膽)은 구천이 나라를 찾기 위해 쓴 쓸개를 핥으며 지냈다는 것으로 이 두 단어를 합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성어가 만들어졌다. 이 성어는 훗날 원수를 갚거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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