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펜문학 2013년 제12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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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펜문학 2013년 제12호’ 발간
  • 황의관 정주기자
  • 승인 2013.12.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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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구림 남정)ㆍ선산곡(순창 남계)ㆍ양규창(동계 구미) 향우 작품 실려

“참여하고 화합하여 사랑받고 주목받는 「전북펜문학」이 되자.”
구림 남정 출신 수필가, 김경희(67ㆍ사진) 회장(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지역위원회)이 「전북펜문학」 12월호 발간사에서 밝힌 당부다.
지난 2월 22일 ‘전북펜클럽’ 회장에 취임한 그는 ‘사랑받는 「전북펜문학」을 위하여’ 지난 1년 동안 “성실히 자잘한 일부터 신경 쓰면서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전북펜’으로서 기분 좋은 펜문학 활동”을 위해 세밑에 「전북펜문학」을 발간했다.
김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국제펜클럽 헌장에 적혀있는 정신 실천을 호소했다. 이어 지난 10월, 김제 아리랑축제에 참가한 조정래 작가의 선행을 소개하며 “우리 문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전북은 긍정적인 희망이 참 아쉽다”며 “잘나고 못나고, 잘 쓰고 못 쓰고에 앞서 우리 고장 사람으로서의 우리 정신 그리고 펜의 힘을 어떻게 간직하고 써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이 책에는 우리 고장 출신 양규창(54ㆍ동계 구미 출신) 문인의 시조 두 편(면도를 하며, 비의 단상)과 수필가 김경희 회장. 선산곡(63ㆍ순창 남계 출신) 부회장의 수필 ‘암자의 고독을 찾아가는 길’과 ‘속ㆍ끽주만필-흥타령’이 수록돼있다. 전민일보에 수필 ‘끽주만평’을 연재하며 작가의 젊은 시절 고향 사람들과의 사연과 정담을 진솔하고 흥미롭게 전개했던 수필가이자 화가(미술교사)이고 소리쟁이(?)인 선산곡 문인의 작품은 그를 아는 이들이 그와 함께 한 또는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게 했다.
이번에 발간한 ‘전북펜문학 2013년 제12호’는 전북지역 등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시(구순자 시인 등 30인)ㆍ시조(양규창 외 3인)ㆍ동시(유현상 작가외 4인)ㆍ동화(양봉선ㆍ윤사월)ㆍ수필(김경희ㆍ선산곡 외 20인)ㆍ평론(김광원 외 2인)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 작품이 실렸다. 이 책의 편집위원장은 양규창 문인이다. 

<선산곡 의 수필 ‘속ㆍ끽주만필-흥타령’ 전문>

술상이 들어왔다. 큰 접시에 품위 있게 깎아 놓은 과일안주에 이쑤시개가 서너 개 꽂혀 있었다. 접시와 함께 투명한 유리잔이 놓인 상은 작았다.
“두루매기 벗으시오.”
여인이 한 말이었다. 한잔 술 마시는데 가벼운 옷차림으로 앉자는 뜻이었다. 내가 벗은 옷을 받아든 여인이 두루마기 소매 깃을 합쳐 겨드랑이 부분을 벽에 걸었다. 저고리동정을 드러내기 싫어 벗지 않았던 목도리까지 여인이 굳이 벗겨내어 두루마기 위에 걸었다.
“총각이 두루매기 입은 사람은 내 생전 처음 봤소.”
여인이 맥주병 마개를 깐 뒤 술잔을 권하면서 내게 한 말이었다. 하긴, 열여덟 어린나이부터 입기 시작한 옷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속으로 뇌까린 말이었다.
“한 잔 허시오.”
쪼로록 술잔 안에서 나는 소리, 호박색 맥주가 거품을 머리에 이고 잔에 채워졌다.
“함께 한 잔.”
내가 술병을 잡았고 여인은 당연한 듯 술잔을 들었다. 저고리소매 끝을 걷어쥐고 두 손으로 술 따르는 내 모습이 신기했던지 여인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참는 모습이었다. 나는 꿀떡 첫 잔을 마셨고 여인은 절반 마신 잔을 술상위에 놓았다.
“전작이 있으셨소?”
“아니.”
무슨 말인가 더 오갔다. 생각해보면 두루마기 펄렁이며 이 집을 찾은 나 자신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여인과 단 둘이 마주 앉은 자리가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나가다 불쑥 들렀다는 나를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맞아준 것이다.
여인이 따라 준 술을 나는 잘도 받아마셨다. 여인도 자기보다 어린 남자가 정중히 따라 준 술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적당히 함께 마시는 동안 대화는 일상의 것뿐이었다. 연정을 품을 사이도 아니었건만 여인의 말은 조신했고 나는 어른답게(?) 보이려 가끔 끝을 자른 말투였다.
제법 술이 취하기 시작했다.
“눈 오요.”
살짝 벌어진 미닫이 문 틈으로 밖을 바라본 여인이 한 말이었다. 한 시절 겪은 여인에게도 눈은 순백의 청춘을 회상케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는지 그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문 열어 놓고 마실까?”
내 말에 반색을 한 여인이 미닫이 두 짝 문을 드르륵 좌우로 열었다. 방안의 불빛이 마루를 거쳐 마당까지 뻗어 나갔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마당에 눈이 하얗게 쌓여가고 있었다. 눈은 내리고 있었지만 포근한 겨울밤이었다.
여인이 북을 끌어 내 앞에 놓고 북채를 건네주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는 중모리 박으로 북을 치고 여인은 흥타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내 정이 깊었기로, 님의 뜻도 알 만이라.”
애원성에 가까운 여인의 소리는 높은 청을 잡지 않아 나직했다. ‘절절이 속아 놓고 속은 것이 한’이 된 듯, 누군가에게 푸념하듯 느리게 풀어지는 사설은 여인만의 독특한 것이었다. ‘안 속으리라 속은 내가 웃으며 왔다 울고 간다’는 체념 섞인 넋두리 뒤에 ‘아이고 데이고’ 후렴구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받았다.
“속아도 꿈이요, 속여도 꿈속이라.”
위로도 아니요, 속내도 아닌 사설에 무슨 흥이 필요했나, 여인이 ‘얼씨구’ 추임새를 넣었다. 두어 마디 사설이 오가면 목이 마르다. 북채를 놓고 술잔을 들었다. 마시고 따르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처음엔 찬물로 세수한 듯 창백했던 여인의 얼굴이 어느새 홍조를 띄고 있었다.
“어째 오시었소?”
번히 알면서도 어째, 어찌 왔느냐고 물었다. 답은 회피에 가까웠다.
“눈 올 줄 알고.”
여인이 픽 웃었다. 북을 당겨 앞에다 놓고 이번에는 여인이 북채를 들었다. 비껴두고 할 말이 흥타령에 있다는 듯 여인이 다시 소리를 시작했다. 다른 소리인줄 알았는데 역시 흥타령이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겨울 밤 방문 활짝 열어놓고 둘이서 주고받는 흥타령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인은 한을 풀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과연 무엇을 풀어내고 있었을까. 여인에게는 같잖았을지 모르는 내 흥타령 가락도 까라진지 이미 오래되었고 밤은 자꾸 깊어만 갔다. 돌아갈 막차 시간은 지났는데 어쩌자고, 어쩌자고 눈은 쉬지 않고 내려 저렇게 쌓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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