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에 띄우는 편지!
상태바
[기고] 고향에 띄우는 편지!
  • 고윤석 향우기자
  • 승인 2014.01.09 1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망의 희망찬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15만 내외 군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사랑이 항상 가득 넘치는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올해가 갑오년(甲午年) 말(馬)의 해이고 보니 어릴 적 고향의 어르신들께서 밤낮 입버릇처럼 하시던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50년 전 피폐하고 암울했던 시절,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부모형제 곁을 떠나온 낯선 타향 땅에서의 설음이 너무나 크고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는 하늘이 얼마나 크고 넓은 알 수 없으니 더 넓은 곳에서의 더 많은 경험과 체험을 해봐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장장 4만 킬로미터(km)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서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하여 그 물길을 따라 거슬러 돌아온다는 연어의 모천회귀 본능은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타향에 살고 있는 출향 향우가족에게 연어의 모천과 같은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처음 눕혀진 땅이므로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의미지요. 타향에서 실컷 살다가 이젠 늙고 병들었기에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고 혹자들은 이야기 하지만 40~60년 전에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이 60대 이상 되신 출향 1세대 향우들은 호구지책으로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 수가 없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에 취직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배움도 없는 터에 더구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냉대 속에 가혹한 타향살이였고, 사정이 그러 하다 보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몇 천원에서 많아야 2~3만원이고 심지어는 숙식만 해결해 주는 조건으로 위험한 공장 현장에 내몰리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쪼개고 쪼개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의 약값에 보탰고 동생들의 학비로 송금하면서도, 먹고 입고 싶은 것들을 참아내며 한 푼, 두 푼 저축해 모은 돈으로 몇 마지기의 논밭을 마련하는 등 찢어지게 가난했던 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40여년이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를 시집 장가보내기 바빴고 조상님과 어르신을 챙기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온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젊음의 꽃을 피울 겨를도 없이 가난을 벋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반평생을 보낸 뒤에야 야윈 허리를 겨우 펼 수가 있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숱한 한숨과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고, 기나긴 밤을 한숨과 눈물로 지새워야했던 출향 1세대 향우들의 타향살이는 상상으로도 짐작이 가지 않을 만큼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느덧 이제 칠순, 팔순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자나 깨나 조상님과 부모형제 친지들을 생각하며 못 다한 애향의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 품 속 같은 아늑하고 따뜻한 고향으로의 회귀는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을 뿌리칠 수 없는 출향 향우들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희망찬 갑오년 새해에는 15만 내외 군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 화합하고 소통하며 살맛나는 고향 순창, 자랑스러운 순창을 만들기 위해 보무당당(步武堂堂)한 대열로 “아자! 아자! 아자!”를 연소하며 힘차게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