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34)/ 싸목싸목 눈 녹던 모습들, 모다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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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34)/ 싸목싸목 눈 녹던 모습들, 모다 어디로 갔을까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4.02.07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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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34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워치코롬 설날에 겁나게 기삐고 오지게들 지내셨능게라잉?
보고자프던 사람들과 손목도 씨게 잡아 댑따 흔들어도 보고 그 누군가와는 거시기하게 안아도 보고 그러셨겠지라잉.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맨날 들여다보며 만내는 사램마다 자랑치던 손주놈들에게 환하게 웃음시롱 세뱃돈도 두둑히 주셨는지 모르겠구만요. 고놈의 명절날 되기 전부터 이제사 오나 저제사 오나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길목들 뚫어져라 쬐래보시던 울 엄니 아부지들 눈들도 안녕하시제라!
말로는 “아야! 연휴도 짧응게 애덜 데꼬 힘들게 오지 말고 꽃피면 한번 핑허니 댕겨가그라” 그러셔도 눈은 하냥 그립고 보고잡고 불그스레한 볼따구에 뽀뽀해주고 싶은 것이 눈 감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눈 속에 담아보길 원하시더랑께요.
돌아가신 울 시아버님이 그랬응께요. 명절날만 되믄 거시기허게 속 터져서 한잔! 세상을 어울렁더울렁 오지게 살아주길 바래는디 자식들이 고렇지 않응게 한잔, 큰 아덜이 맴 고생 몸 고생하는게 암만 참아 봐도 썩은 두엄더미 속같이 뜨끈뜨끈 해징게 또 한잔. 맨날 쐬주잔에 눈물을 마셨지요. 항상 명절날만 앞두면 울 아버님 술잔이 안 채워지길 바랬었지라. 울 네 딸들의 재롱으로 기냥 몽땅 잊어버리시길 바랬지만 부모 가슴속의 몫은 다 따로 있더랑게요.
그나저나 워째 해가 갈수록 설날 기분이 안나능게 요상허구먼요. 20여년 전 지가 시집왔을때 마을 골목에 지금처럼 자동차가 많지 않어도 “엄니 저 왔어요”하면서 대문을 들어서던 자식들이 넘쳐 났었지라. “워메! 울 귀헌 새끼들 왔구먼”하고 얼싸안던 정겨움이 집집마다 환한 꽃이 되었던 시절이었죠. 겁나게 맛있는 음식들도 넘쳐나서 담 너머로 ‘요거 한번 잡숴봐봐, 울 막둥이가 쪼메 귀한거라고 사왔구먼. 성님네는 뭐했당가? 맛난 것 있음 요 주둥이로도 먹어보게 줘봐 잉’ 하며 애교스런 말투에 정이 뚝뚝 묻어났지라.
명절 전날에는 둘째 아주버님 친구들이 왼 마을을 휩쓸며 허벌나게 맛난 음식들과 농익은 술은 어느 집 것이 맛있는지 훑으러 다니셨구요, 우리 집에 오셔서는 옛날 옛적 서리 해먹던 동치미와 고구마 이야그들을 하시면서 박장대소 하셨제라, 오정자 마을에서 동갑내기가 많았다던 남편의 동창들은 도대체 그 조용하고 얌전한 남현이랑 결혼한 샥시가 워떠케 생겼는지 궁금해가꼬 떼지어 몰려왔제라.
이간질 시킨다꼬 남편의 첫사랑 이야기에 맥없시 동창 여자 친구들 이름만 입방아에 올렸다가 서울떽이 맞장구치며 웃어붕게 피시식 방구냄시 사라지듯 흔적도 없어졌지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골목길마다 싸목싸목 눈 밟아감시롱 이집 저집 다니면서 세배를 드리던 그 정겨운 모습들, 하루 종일 쉴 틈 한번 없이 세배 오신 분들을 위해 상을 차려내면서도 웃음꽃을 피우게 만들던 그 사람들은 정말 모다 어디로 갔을까요.
오래 오래 지속될 줄 알았는데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썰렁하니 차암 거시기합니다. 
하하! 근디 지도 밖에 나가 있는 딸들땜시 기둘려봉께 재미진 맛도 있네요.
올해는 쇠고기 구워주고, 묵은지 감자탕 실컷 해주고 맛난 조기찌개 끓여주고 식혜도 허고 꼬막 숯불구이 해주고 알밤도 꾸워주고 겁나게 먹였구만이라. 모정떽이 보내준 두부에 메밀묵에 유과까정 먹는 호사도 누렸구요. 울 큰 딸이 스스로 빚은 만두와 잡채와 푸짐한 전들까정 자~알 먹었는디라. 요상시런 생각이 한켠에서 드는디요.
서울떽의 사랑스런 네 딸들이 모두 시집간 다음에 즈그 엄마처럼 친정에 못오게 될 경우 지는 눈 빠지게 기둘림서 눈물 뚝뚝 흘리고 있을까라. 아님 차례상 일찌감치 채려놓고 둘이 여행을 가는 쿨한 부모가 될까요. 여엉 감이 안잡히지만 아적까정은 냄편이랑 손 마주잡고 여행가는 쪽을 택하겠구만요. 지 글을 재미나게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사람으로 부~자 되시고 나쁜 재채기 없이 평탄하시고 돈벼락도 맞으시고 건강과 향기가 가득한 한해 되시길 서울떽이 겁나게 빌어드릴께라. 회문산의 영험한 기운 팍팍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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