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엔번방 사건’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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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엔번방 사건’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 박상옥 교사
  • 승인 2020.04.0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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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푸른꿈고 교사

‘엔번방 사건’의 충격은 내 성별 정체성이 느끼는 공포로부터 시작됐다. 기사를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 만큼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러나 26만 명이라는 숫자에 이어 10대 이용자가 많다는 소식은 개인적인 공포를 넘어 교직자로서 참담함이 밀려왔다. 피해자들 속에 나의 제자가 있으면 어떡하나, 26만명 속에 설마 나의 제자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나, 자기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보느냐는 항의의 목소리들까지 머릿속에서 뒤섞여 이삼일 잠을 설쳤다. 이런 사건들 앞에서 참담함, 자괴감, 나아가 교육자로서 죄책감이 깊다. 
솔직히 학교 성교육이 사회적으로 끊이지 않는 성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 성교육은 학생들의 야유를 받기에 십상이었다. 생물학적 특징에 주목하고 기본적으로 ‘금기’시 하는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인 내용 때문이다. 미투운동과 젠더평등 의식의 확대 덕분에 성교육 시간이 강화되고 성 평등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내용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기숙사 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에서는 개교 이후 일찍부터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젠더 갈등, 폭력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금기’로 접근하는 성교육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십대 스스로 주체로서 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자는 취지에서부터 미투운동을 둘러싼 감수성의 차이들을 공론화하는 성 캠프를 두 차례 시도했었다. 
작년부터는 미디어 속의 여성 혐오, 페미니즘 미디어 리터러시, 생리 공론화 등 다양한 성 담론을 성교육 내용으로 기획하고 학생들의 삶에서 중요한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표현할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의 성 의식과 태도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많다. 학생들은 숱하게 일어나는 성범죄, 그리고 범죄를 처리하는 사회의 태도 등의 영향을 받으며 왜곡된 성 의식과 여성 혐오문화 속에서 산다. 그보다 더 근본으로는 성차별적 사회구조 속에서 산다. 이런 구조의 변화 없이 학교 성교육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다만 교육 차원에서부터 변화를 원한다면 연간 몇 시간의 의무 성교육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중요한 교과목으로 성교육을 편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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