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19) 팔덕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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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19) 팔덕면 구룡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0.12.3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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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리 용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형국

구룡리(九龍里)는 팔덕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입석(선돌)마을과 신평마을을 합쳐 구룡리라 했다. 팔덕면 관문으로 동쪽 머구리재를 경계로 순창읍 신촌마을과 접한다. 서쪽으로 산동리, 북쪽으로 월곡리와 광암리, 남쪽으로는 덕천리와 맞닿아 있다. 강천산에서 내려온 산동천과 덕진봉에서 내려온 덕진천이 구룡리 앞에서 합수해 경천으로 흘러간다. 2020년 11월 30일 기준 인구는 72세대, 150명으로 남자 71명, 여자 79명이다. 

 

▲신평마을 전경.
▲입석마을 전경.

입석마을 유래와 선돌

입석마을회관 앞에 있는 ‘구룡리 선돌(용두각) 유래’ 표지석에는 마을 유래가 적혀있다. “구룡리는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구룡쟁주(九龍爭珠) 형국이다. 남쪽 수구에 두 마리 용이 마주보고 있으며, 동북쪽에 네 마리 용이 있고, 서남쪽에 세 마리 용이 마을 앞 평단석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형상이다. 동북쪽에서 여의주를 좇아 온 용의 뿔이 서 있는 지형에 약 400여년전 김백천이라는 사람이 집터를 잡고 거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인색하여 (시주를 권하는 스님들에게도 매우 인색해 못되게 구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 덕을 전혀 베풀지 않았다.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떤 도승이 김 부자에게 이 용의 뿔 모양 바위(용두각)를 넘어뜨리면 더욱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욕심 많은 김 부자는 많은 사람을 동원해 그 바위를 쓰러뜨려 묻어버렸다. 그러자 김 부자 집에 불이 나고 연이어 액운이 겹쳐 집안이 몰락하고 말았다. 도승은 떠나면서 때가 되면 이 바위는 다시 서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천지조화로 마을 터가 앞쪽으로 옮겨지고 오늘 이 바위를 마을 앞으로 옮겨 용의 뿔을 다시 우뚝 세우니 구룡쟁주의 형상이 복원되었다. 앞으로 마을은 다시 번창할 것이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훈을 후손 만대에 알리고자 이 글을 새기다. 
- 2005년 2월 17일 입석마을 주민 일동”

서동현 입석마을 이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어렸을 때부터 들은 얘기가 김백천 집터(현재 위생매립장 올라가는 삼거리 도로 하단)에 있던 선돌(용두각)이 얼마나 컸던지 순창읍 백산리에서도 보였대요. 바위 윗부분이 마당처럼 넓고. 1990년대까지는 아홉 개 선돌과 여러 느티나무, 정자나무 등 하루 저녁에 마을을 세 바퀴 돌며 당산제를 지냈어요. 1994년 어느 날 김백천 집터 표지석 부근에서 당산제를 지내는데 돌 뿌리가 땅속에 묻힌 게 보여요. 혹시 이것이 어르신들이 말한 그 바위가 아닐까? 땅을 파보니까 바위 옆에 날개가 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꽹과리 치면서 마을을 돌며 모금 운동을 벌였죠. 장비를 불러서 파는데 정말 전해온 이야기처럼 용두각(선돌)을 땅에 파묻은 흔적이 역력해요. 땅속에서 숯도 나오고, 용두각을 받친 돌도 몇 개 있고 그랬어요. 용두각이 얼마나 거대한지 크레인 스윙 모터가 망가졌어요. 1998년에 더 큰 장비를 불러서 지금 마을회관 앞으로 옮긴 거지요. 2005년에 표지석을 세웠고요.”

 

▲구룡리 선돌(용두각)과 마을 유래 표지석.

입석마을 선돌의 의의

입석마을에는 아홉 개의 선돌이 세워져 있다. 마을 북쪽에 세워진 쌍입석, 동쪽에 세워진 돌탑 선돌, 남쪽에 위치한 자연 선돌, 마을 가운데 위치한 용두각(龍頭角)과 동자석 등이다. 
입석마을 선돌은 마을 태동과 관련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풍수 비보 선돌이자, 마을 터를 지켜 주는 진터 선돌로서 의미 있는 선돌 문화를 보여준다. 불가에서 호법신으로 상징되는 아홉 마리 용이 풍수지리 및 미륵 신앙과 결합해 구룡리에서 구현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는 선돌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홉 개의 선돌과 여러 당산나무를 대상으로 한 당산제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신평마을 유래와 선돌

신평마을은 입석마을 서쪽에 형성된 자연 마을이다. 물무(물무골 안쪽에 마을이 있었음)에 살던 사람과 서당등(書堂嶝)에 살던 사람들이 들에 새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해 새들이라 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인데, 정착 당시 마을 어귀에 오얏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전주이씨 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전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신평마을 선돌은 2기로, 하나는 신평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고 다른 하나는 마을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마을 가운데에 세워진 선돌은 행주형(배터) 지세에 세워진 돛대 선돌이라 한다. 돛대 선돌은 신평마을이 배 형국이라는 뜻인데, 홍수로 인한 침수 때도 마을이 안전하게 지켜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세운 듯하다. 신평마을이 배 형국이고 행주형(行舟形) 지세에 세워지는 돛대 선돌로 삼았다는 것은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 홍수로 인한 침수가 종종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경천과 덕진천이 합수하면서 마을이 침수되는 일이 잦자 마을을 안전하게 지켜 내기 위한 풍수 비보적 장치로 선돌을 세웠다 한다.

▲신평마을 선돌.

고인돌 떼

구룡리 주변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입석마을과 신평마을을 연결하는 농로 북쪽 밭에 고인돌 13기가 무리 지어 있었다. 1982년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순창지방의 전통문화 개발을 위한 연구’라는 주제로 추진한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 1989년 전북향토문화연구회에서 순창군문화유적 지표조사와 2003년 전북대학교박물관 주관으로 《순창문화 유적분포 지도》 제작을 위해 추가로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1989년까지만 해도 13기의 고인돌이 잘 보존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이동되거나 파손된 덮개돌만 쌓여 있다. 

▲구룡리 고인돌과 선돌.

머구리재길 

머구리재길은 입석마을-순창읍 신촌마을-순창읍으로 이어지던 길이다. 여인들은 감ㆍ밤 같은 과일이나 채소를 머리에 이고 와서 읍내 시장에 내다 파는 등 팔덕면 모든 사람이 이용하던 유일한 도로였다. 뿐만아니라 옥과, 구례, 곡성, 경상도에서 서해안의 소금과 생선(조기)을 지게로 운반하던 유일한 노선이요. 옥과, 순창 일부에서 설고개를 거쳐 구림 신광사제를 통해 태인ㆍ김제 평야의 식량 운반 보부상길이었다. 그래서 머구리재 밑에 주막이 번창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1년 도로 포장공사로 노선이 변경되어 구룡리에서 순창읍 백산리 앞 국도(순창-광주 간) 노선으로 연결하게 되어 머구리재길은 지방도로에서 군도로 전락했고, 지금은 폐쇄되어 신촌마을로 가는 계단만 놓여있을 뿐이다. 


신평마을 느티나무

신평마을 한가운데에 290여 년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9미터(m), 가슴 높이 지름 1.72m, 수관(樹冠) 폭 22m이다. 1982년 9월 20일 보호수 제9-12-62호로 지정되었다.
들판에 우뚝 선 느티나무는 멀리서 보면 2단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가로수와 마을을 수호하는 나무로 농사짓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만남의 광장이 되고 있다. 주변에는 작은 입석과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보호수 밑에는 돌탑이 있어 농사일하는 사람들이 점심이나 새참을 먹을 때면 꼭, 고수레하며 먹는 자리이기도 하다. 돌탑은 주위 논에서 나온 돌을 한데 모아 하나둘 쌓아 올린 것이다. 

▲신평마을 느티나무.

신평마을 찬물유원지

신평마을 찬물유원지는 순창군이 강천산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하기 위해 개발한 관광상품이다. 땅속에서 뿜어 올린 맑고 깨끗한 찬물이 특징이다. 강천산을 향하는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선 뒤 첫 번째 다리인 ‘구룡교’에서 바로 좌회전해 900미터쯤 직진하면 왼편으로 개울 건너 시원한 정자가 반긴다. 돌다리가 놓인 오른편 정자와 시야가 탁 트인 왼편 정자 모두 지나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 곳이다.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삼삼오오 먹거리를 챙겨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다 가기도 한다. 

▲신평마을 찬물유원지.

팔덕 다용도보조구장

팔덕 다용도보조구장은 구룡리 49번지 일원에 있다. 야구장 1면과 야구ㆍ축구 겸용구장 1 면이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유소년 야구대회 중심지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유소년 야구경기는 선수단 방문 때 학부모 등 대규모 방문단이 꾸려져 지역 경기를 활성화 하는 일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기 일정 동안 1000여 명의 선수와 관계자들이 지역에 머물기 때문에 식당ㆍ여관ㆍ민박 등 지역상권에 활기가 돌게 한다. 
2021년 9월에는 야구장 옆(구룡리 24-4번지)에 실내 야구연습장도 완공될 예정으로, 앞으로 야구 전지훈련단 유치에도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팔덕 다용도보조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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