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삶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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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삶의 온도
  • 신형식 원장
  • 승인 2021.04.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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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시인

오랫동안 자연과학을 연구해온 나는 질서라는 말에 익숙하다. 질서는 사전적으로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또는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다수의 사물 사이에 있는 규칙적인 관계라는 뜻이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사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이 규칙적인 관계를 탐구해왔다. 그러면서 자연의 위대한 질서에 경탄했다.

그 중에서도 봄날 꽃피는 과정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현화(顯花)식물들은 어떻게 기온이나 밤낮 길이의 변화를 알아채고 꽃피울 시기를 판단하는 걸까.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1930년대부터 식물학자들은 잎에서 생성되는 플로리겐(florigen)이라는 호르몬과 개화유전자의 상호작용 결과라는 공허한 개화생리 이론만 제공해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허망한 과학자의 눈을 닫고 봄날 꽃의 영혼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을 간절하게 지켜보았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꽃은 자기 삶의 온도를 잘 알고 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일을 두고 삶의 질서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니다.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어오르듯,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 영혼이 피어나는 비등점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들은 영혼의 비등점 순서에 따라 꽃을 피운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매화는 10도 이하에서도 작고 앙증맞은 꽃잎을 연다. 목덜미가 선득한 날에도 쨍하고 볕이 나면 매화는 주저없이 자기 속을 내보인다. 산수유도 10도 언저리에서 노랗게 빛을 낸다. 목련은 낮 기온이 13도를 넘어가는 날을 기다렸다가 소리 없이 꽃을 피운다. 이때 쯤 개나리가 덩달아 노랗게 울타리를 덮는 사이 진달래도 슬그머니 피어난다. 며칠 지나면 양지바른 곳의 벚꽃이 이르게 피기도 한다. 벚꽃은 16도 이상이 사나흘 지속될 때 핀다.

이렇듯 꽃은 자연의 질서에 맞춰 자기 삶을 살아가며 온도에 맞춰 본심의 꽃을 세상에 내놓는다.

봄꽃을 관찰하다가 내 삶의 온도는 몇 도일까 생각했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가 떠올랐다. 우리네 삶의 온도는 냉정과 열정 사이 어디쯤일까? 젊은 날 천방지축 내달았던 열정과 패기가 내 영혼을 한껏 고양시켰던 것을 기억한다. 동시에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지금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지난날을 반추하는 나를 본다. 장고 끝에 사는 일이 결국 한 송이 꽃을 피워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화려한 꽃을 젊은 날 일찍 피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여전히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이렇게 다짐한다. “오늘이야말로 내 꽃을 피우기 딱 좋은 삶의 온도가 아닐까?

하루하루 자기 삶의 온도를 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질서한 세태와 세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꽃이 자기 열정의 최고조에 이를 때 비장(秘藏)의 속잎을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도 최선의 삶을 살면서 차분하게 영혼의 온도를 높일 때 인생이라는 꽃을 피워낼 수 있다.

꽃을 피우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지역의 자긍심, 문화, 역사, 지역의 힘 같은 것들도 꽃필 날을 기다린다. 우리순창의 꽃 백일홍도 화려하게 개화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순창군민 모두 조금씩 삶의 온도를 높인다면, 우리의 어우러진 열정이 비등점에 이르러 순창의 영혼을 찬란하게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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