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장] ‘순창 촌놈’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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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국장] ‘순창 촌놈’이 되기까지
  • 최육상 기자
  • 승인 2021.10.19 16: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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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을 접고 올해 115일 부모님 고향인 순창군에서 혈혈단신 터를 잡았다. 맞다. 아직 결혼을 못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느덧 시골 농촌 생활을 시작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내 외양을 보시고 시골 촌놈 다 됐다고 말씀하신다. ‘서울 촌놈이었던 나는 1년 안에 시골 촌놈이 돼 보자고 결심했었다. 어머니의 인정, 이쯤 되면 성공적인 순창생활 적응이다.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취재하고 글을 쓰고 다듬는 생활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삶이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지난해 코로나가 발생하고, 나이 쉰이 되면 소설 한 편을 써야겠다고 했던 스무 살 때 또 다른 막연한 계획이 순창에 터를 잡게 할 줄을.

대학 동기들 모두 나이 쉰 안팎이다. 100세 시대에 딱 절반을 산 셈이다. 순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마을 중의 하나다.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취재를 핑계 삼아 짧은 시간 동안 순창군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다. 여러 군민들을 만났다. 곡괭이를 들고 지금도 콩밭을 메는 100세 어르신, 80대 후반에 한글을 깨치고 90세에 시인이 된 어르신, 커다란 마을우물을 청소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물을 퍼내던 87세 어르신, 마을의 막내라는 68세 이장님 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몸소 보여주시는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시골 농촌이 도시에서 동경하는 것처럼 그저 더없이 정겹고 살갑고 고즈넉하지만은 않다. 고달픈 땅에서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한다. 온몸으로 삶을 지탱해야 한다. 어르신들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을 보면 살아온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서 순창에 내려왔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엇비슷했다. 남자 친구들의 경우 대부분 나도 퇴임(퇴직) 후 자그만 텃밭이 딸린 시골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자기 대신 터를 잘 잡고 있으라는 조언 아닌 부탁과 함께.

순창에 와서 분명하게 바뀐 생활이 한 가지 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먼 산과 드높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가슴이 그야말로 뻥 뚫린다. 아무리 피곤했어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상쾌한 느낌이다. 순창은 공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 숲에 익숙하던 몸이 자연 속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매일같이 받는다.

물론, 이곳 토박이들은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산과 숲, , 밭에 무덤덤하다 못해 오히려 답답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왔던 탓에 자연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모른다.

얼마 전에 만났던 ‘30대 청년이장농부를 선택한 삶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장의 꿈은 소박하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어느 정도 적응하기 전까지는 자기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자리를 잡으면 마음대로 시간 조정이 가능해요. 저도 직장생활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데 지금이 좋죠. 마음이 편하니까. 언제고 쉴 수 있고. 농촌도 충분히 살 만하거든요.”

100세 시대 절반을 살아 낸 나와 친구들은 어떤 꿈을 좇아가고 있을까. 스무 살 청년으로서 꿈꾸던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한가? 내 자신에게 매일매일 묻고 있다. 자연 속에 안긴 시골 농촌이라 그럴까. 빠르지 않고 느려도, 급할 것 하나 없는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서 그럴까. 스무 살 때 꿈꾸었던 꿈이 밤하늘 숱한 별처럼 선명한 요즘이다.

30대 어느 날, 최명희의 장편 대하소설 혼불을 읽다가 주인공 경태의 말에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소설 속에서 경태는 이런 말을 했다.

오래오래 비루한 행복에 빌붙어 사느니 피가 우는 대로 살아볼 생각이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 말이 세상을 정말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젊은 혈기로 세상에 짐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순창에서 만난 군민들의 팔뚝에는 대개 굵은 핏줄이 울퉁불퉁 솟아 있다. “피가 우는 대로 살아볼 생각은 치열하게 사는 것도 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의 터전을 가꾸어 가는 것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문득, 스무 살 때 기자가 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싶다는 꿈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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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락 2021-10-26 11:55:46
멋지고 값진 삶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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