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빨갱이’는 어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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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빨갱이’는 어른이 될 수 없다
  • 양상춘 작가
  • 승인 2021.12.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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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춘 작가(동계 구미)

100여 년 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이후 억압과 수탈을 자행하는 동안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반민족행위자(친일파)로 부른다. 반민족행위의 형태나 정도는 실로 다양했는데 그중 작위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제가 강제병합 과정에서 충순(忠順)과 공로를 인정하고 식민통치를 앞장서 선전하며 정당화할 전위대로 부려먹을 사람들을 골라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따위의 작위를 수여한 것이다.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면 망국의 치욕으로 여겨 작위 수여를 거절하고 반납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받아들였다. 가문의 영광이라며 선조의 묘소에 가서 작위를 받았다고 조상에게 알리는 소위 봉고제를 하고 연일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도박, 축첩(蓄妾), 아편 흡입, 사치 등 방탕한 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꽁테(comte:백작)라 부르고 민중들을 업신여기거나 거들먹거렸다. 민중들은 그 꼴불견을 비꼬아 그들을 꼰대라 불렀다.

해방이 되고 나라를 되찾은 듯했지만 꼰대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민주공화국의 주춧돌을 놓을 때부터 그들은 크고 작은 걸림돌로 알박기를 해놓고 이후 그 걸림돌을 주춧돌이나 아예 기둥으로 위장시켜 온갖 단물을 다 빼먹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박아놓은 걸림돌을 뽑아내려는 사람들을 불온한 세력이라며 빨갱이로 낙인찍고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수탈을 이어갔다.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빨갱이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를 옥죄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단어 중 하나였다. ‘공산주의를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이란 뜻을 넘어서 사이비 자본주의자 꼰대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써 먹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가치와 품격보다 돈이 우선이고 공익은 멀리하고 사익을 쫓으면서도 자신들을 보수로 둔갑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60대 이상의 나이 든 사람들에게 조금 어색한 게 하나 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깔이 빨간색인데 어쩌다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도 빨간색을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산당=보수의 등식에는 터무니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둔갑한 보수주의자들의 행태를 보면 일제강점기 꼰대들의 꼴불견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빨간색인데 진짜 빨간색이 아니고 가짜 빨간색이다. 그래서 나는 사이비 자본주의자이며 꼰대 보수주의자를 빨갱이라 부르고 싶다. ‘꼰대=빨갱이의 등식이 생경하겠지만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를 보면 보수로 위장하고 보수의 얼굴에 먹칠하고 다니는 빨갱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꼰대가 요즘은 늙은이나 선생님을 이르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은어라지만 사실 비하하는 표현이다.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고 몇 개월 후에는 만65세가 되어 대한민국 공식 노인이 되는 나는 딱 꼰대 그 자체이다. 그래서 교직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젊은이(학생)들이 나를 꼰대라고 부르며 외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성찰도 한다. 권위와 고집만 앞세우고 듣지는 않고 들어도 공감하지 못한 꼰대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 노력 속에는 솔직히 심리적 저항과 감정적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대 간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다.

보수인가 진보인가를 떠나서 누구나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어가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누가 꼰대라고 부르건 말건 자기 멋대로 살아가겠다며 고집불통이 되면 사회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미달한 것이고 어른으로 대접받을 기대를 포기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동적으로 노인이나 늙은이는 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어른의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할 따름이다.

빨간색을 뜻하는 한자 단()이 디딤돌로 자리 잡고 있어야 푸른색의 청()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보수가 빨간색을 흔들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국가)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겠다는 의미, 다시 말하면 청년 세대가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는 어른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빨간색이 아니라 빨갱이꼰대가 되어 후대의 걸림돌이 된다면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꼰대는 원래 백작(귀족)을 의미했다. 요즘 말로 하면 가진 자, 또는 기득권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추운 연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개멋진 꼰대와 따뜻한 차 한잔하고 싶다. 빨간 순창고추장으로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그것 또한 마다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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