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근현대사]1894년 순창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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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근현대사]1894년 순창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 안욱환 원장
  • 승인 2022.07.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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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욱환 '순창희망포럼' 주민자치위원장

가까운 정읍 고부에서 시작한 동학농민혁명의 불꽃이 전국을 휩쓸 때 순창도 엄청난 들불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호남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순창에서도 많은 농민들이 스스로 차별적인 봉건제도에 반대하고 일본 등 외부 세력을 배척하는 깃발을 높이 들고 이 땅의 진정한 주인임을 천명한 역사적 사건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르게 순창에 살고 있는 우리는 1894년에 순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전봉준 장군이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서 체포되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이 사실은 순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역사가 되었고 그 결과 어느 누구도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나 기념사업 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순창 동학접주 우동원

이런 부정적인 영향으로 우리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동학농민혁명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역사의 풍랑을 겪은 한 사람의 행적이 밝혀지게 됩니다. 그는 순창 동학접주 우동원이란 인물로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살고 있던 그의 증손 우남조가 관련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08년 만에 우동원의 행적을 발굴한 사람은 순창군 문화관광과에 근무하던 한상호 학예연구사입니다. 그는 2002222일 전북대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는데 그 제목이 동암 우동원의 갑오년 행적-전라도 순창 동학접주 우동원의 우동암행문집을 중심으로-입니다. 이 논문을 통해 비로소 순창 지역의 동학농민운동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한상호 학예사는 그동안 순창이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있어서 불모지에 가까웠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순창의 동학농민혁명 역사가 정립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면서 이번에 밝혀진 행적을 토대로 우동원의 아들 우치홍이 3.1운동에 참여한 행적도 밝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논문 발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창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는 소식은 없으며 다만 작년에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순창 3.1만세 문화제 행사를 처음으로 했던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동원의 행적과 우동암행문집의 성격을 살펴보고 앞으로 순창지역에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단체가 결성되어 자료 연구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술발표를 하여 실제로 1894년에 우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역 주민들이 알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순창접주 우동원(1844~1921)은 황토현 전투와 전주성 전투 그리고 공주 우금치 전투에 참여했던 순창군의 동학 책임자로 동학농민혁명 이후에는 진보회에 가입하는 등 개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순창군 목과면(지금의 금과면) 방축리 수박동이고 호는 동암이며 본관은 단양입니다.

1893년 전후 순창에 동학 전래

당시 순창군수 이성열은 동학도들이 전국적으로 움직이자 이에 대비하고자 관청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동암 우동원이 이에 항거를 하자 그를 붙잡아 매를 때리는 핍박을 합니다. 고초를 겪고서 어쩔 수 없이 군역에 응하였던 동암이 군수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자신은 양반의 후손으로서 군역 참여는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암은 1893년에 자기 집에서 가까운 담양의 남응삼 접주를 방문하여 동학에 입교를 하게 됩니다.

우동원은 동학이야말로 국가의 정책을 시정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구심점이라고 확신하였는데, 계급을 철폐하고 빈부귀천의 차별을 없애며 탐관오리를 쓸어버리는 방안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농민들과 한 마음으로 이 혁명에 동참하였는데 특히 그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동학농민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동학에 입교한 이후 순창접주로서 수많은 순창의 농민들과 함께 여러 전투에 참여합니다.

순창지역에 동학이 전래된 시기는 우동원이 동학에 입교하였던 1893년 전후해서 순창지역에도 동학이 전래된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김만두, 지동두, 안의만, 신석우, 설두원, 김동화 6명의 천도교 입교 기록 등이 남아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합니다.

 

우동원의 후손,

풍산 대가 정착

1894년 정월 3일에 전봉준과 손화중, 김개남은 창의문을 선포하고 고부군 북면 말목장터로 모여서 고부성을 함락시켰는데 농민군은 탐관오리의 목을 베고, 군기고를 열어 무기를 거두고, 옥문을 열어 억울한 사람들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 후 농민군은 보부성에서 백산으로 진을 옮겼고 이 때 그곳에 모인 순창의 장령급의 인물은 이용술, 양회일, 오동호, 김치성, 방진교, 최기환, 지동섭, 오두선이라고 동학관련 기록인 오지영의 <동학사>에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우동원도 백산전투를 비롯해서 황토현 전투 그리고 우금치 전투에 참여합니다.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에게 패배한 후에 우동원은 189412월 순창에 들어와서 임만원이란 이름으로 바꾸었고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1211일에 남쪽 바닷가로 도피를 합니다.

18941113일에 관군이 우동원의 일가족이 있는 방축리 수박동 집을 수색하고 핍박하자 가족들은 전남 옥과 마전리로 몸을 숨기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가족들은 포박당한 채로 1116일 순창 장날에 숲정이 사정(지금 순창읍 재래시장 부근)에서 총살을 당하였고 시체마저 수습할 사람이 없어 방치되었습니다.

7년 동안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하던 우동원은 1900년에 고향소식을 알고자 순창 땅을 다시 밟게 되어 살아남은 가족과 상봉을 하고 순창군 오산면 대동리(지금의 풍산면 대가리)에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는 우동원의 고손 우정섭과 모친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동원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순창은 다른 지역과 비슷한 시기에 동학이 전래되면서 수천 명의 동학도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으며, 집강소 통치기에 지배 세력과 협조적인 체계를 통해 동학군에 의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던 지역이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순창의 동학농민혁명 기념하자

한상호 학예사가 발굴한 자료에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자료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후손들과 우리 지역의 향토사 연구자들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 상황과 이후 역사를 고찰하는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순창과 관련된 동학농민혁명 자료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인명과 지명을 살펴서 그 후손이 누구인지 그리고 순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학술 발표가 이어지고 이를 기념하는 사업도 우리 지역에서 활성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이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곳이라는 자책에서 벗어나 전 장군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선택한 제2의 근거지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순창은 나라가 어려울 때 많은 사람이 의병으로 활동하고 순창군수 이성열도 동학농민군의 위세에 눌려서 동학농민군의 집강소에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도록 한 곳이며, 우동원도 접주로 활동하고 지역에 천도교 교당도 운영되고, 3.1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된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자 터전이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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