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1950년대 말 순창읍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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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1950년대 말 순창읍내 풍경
  • 조순엽
  • 승인 2022.11.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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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탄(白呑) 조순엽(순창읍)

1950년대 순창읍 시가지 지명 설명

1. 다방  2. 간이골프장  3. 각시숲  4. 농협창고  5. 고등공민학교  6. 일본인소학교(순창여중고)  7. 식량영단  8. 제재소  9. 계림사서점  10. 양조장  11. 정미소  12. 과수원(옥천초)  13. 아이스케키가게  14. 변전소  15. 포목전  16. 미곡전  17. 우물  18. 우시장  19. 동산약국  20. 일본인집  21. 우편국  22. 자수골목  23. 상사창고  24. 일본인집(서장관사)  25. 사방관리소  26. 농산물검사소  27. 홰나무골목  28. 한옥  29. 한약방  30. 광주여객정류장  31. 의용소방대  32. 중앙의원  33. 은행나무집  34. 백합사진관  35. 중국집  36. 문화서점

 

순창읍 주산인 금산 정상에서 순창읍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기러기 한 마리가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순창읍 지형을 홍안남비형’(鴻雁南飛形)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요즘 금산골프장 시설 확장 건으로 군민 의견이 분분하다. 군민 간 반목이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읍내에 1차선 간선도로가 두 곳 뿐이었던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군민 모두가 한 마음이었던 1950년대 말 순창읍 시가지가 생각나 몇 자 적어 본다,

 

은행교 주변

남원에서 순창을 오다보면 물통고개(망고개)를 넘어서 순창농고(현 제일고) 앞을 오면 큰 저수지(현 축구장)가 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순창농고 옆으로는 관사촌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지고 신축 교실과 테니스코트로 변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순창농고를 지나 당시 읍내에 있었던 두 개 다리 중 하나였던 은행교를 건너면 남원삼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현 버스터미널 쪽으로 가는 도로가 없었다. 현 도로는 1955년 창림마을이 조성된 후 1959년쯤에 개설된 것으로 기억한다. 왼편에 설준꼬라는 여성이 운영하는 다방과 건너편에 간이 골프장이 있었다.

조금 더 들어오면 동은행마을 일본인(西宅·이사다꾸) 집에 고등공민학교가 있어 배움에 굶주린 어린 학동들에게 배움터를 제공했다. 그 후 소주(燒酒)공장을 운영하다가 요즈음은 노인요양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엔 일제강점기 때 동은행마을에 일본인들만의 소학교(국민학교)로 운영되다가 1955년 순창여중이 들어섰다. 교정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는데, 지금은 해태아파트가 들어서 그 좋은 숲들을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옆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식량영단’(食量營團)을 만들어서 큰 정미소를 운영했다. 일본으로 많은 양의 쌀이 수탈되었고, 광복 후에는 정부양곡 도정 공장으로 많은 양의 쌀을 가공했다. 지금은 일부가 정마트로 변했다. 그 맞은편에는 봉 씨가 운영하던 규모가 제법 큰 제재소(製材所)가 있어 각종 목재를 생산했다. 그 후 정부 양곡 도정공장으로 변모한 바 있었고, 지금은 청소년문화의집(작은영화관 포함)으로 변신했다. 바로 옆으로는 계림사란 서점이 자리 잡았었다. 조금 더 올라오면 남은행마을에 임천양조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병원(다사랑병원)으로 변했다.

 

십자지거리 주변

순창시장사거리(십자 지거리)에서 군청 방향으로 찍은 사진. 백양사세탁소 상가 간판 모습과 경찰서장 관사가 보인다.
순창시장사거리(십자 지거리)에서 군청 방향으로 찍은 사진. 백양사세탁소 상가 간판 모습과 경찰서장 관사가 보인다.

 

바로 옆이 옛날에는 십자지거리(사거리)라고 불렀던 순창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였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행인들이 가만히 서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밀려서 발걸음이 옮겨질 정도로 북적대던 길이었다. 상인들은 이곳 십자지거리에 점포 하나 가지는 것이 큰 꿈이었다.

여기에서 동쪽 유등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봉명식 씨가 운영한 순창 최초의 아이스케이크 업소와 정미소가 있었다. 그 옆으로 일본인 하촌’(下村·시모무라)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탱자나무 울타리 과수원이 있었다. 그 자리에 동국민학교(현 옥천초)1951년 개교했다. 조금 더 가면 한전변전소가 있었고, 둑을 지나면 다리도 없는 양지천을 맨발로 건너다니기도 했다.

다시 사거리에서 시장 상가를 지나 가다보면 오른편 기전마을엔 1959년 문을 연, 순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동산약국)이 꽤나 성업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옆은 일본인(下村)집이 있었고, 한때는 요정(호남관)으로 변해 손님들을 맞이한 적도 있었다. 일본인이 지은 집 중에 유일하게 순창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집이다.

 

자수골목과 순창시장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우편국(우체국)이 있었다. 지금은 순창농협이 자리하고 있다. 뒷집은 순창농고 교감 관사로 사용했는데, 집안에 히말리아시다100여년이 넘은 큰 나무가 위용을 자랑했다.

그 옆으로 좁은 골목에서는 전국 유일무이한 자수시장(刺繡市場)이 열렸다. 부녀자들이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자수품을 내 놓아 판매하는 이색 시장이었다. 그래서 자수골목이라 불렀다. 그 옆으로는 땔감나무 시장도 열렸다. 연탄도 없었고 석유 , 기름은 더더욱 없던 시절, 촌부(村夫)들이 지게에 장작과 가리나무를 한 짐씩 지고 와서 거래했다. 우체국 맞은편 시기마을에는 남계파출소가 있었다. 그 옆으로 큰 공동우물이 있어서 주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했다. 도로는 거기서 끝이 났다.

순창시장 현 주차장터는 마포(麻布)와 무명베 포목시장이었는데, 장옥(墻屋·집이나 일정한 공간을 둘러막기 위해 벽돌 따위로 쌓아 올린 것)은 없었다. 단오 때는 난장과 씨름판을 벌여 순창군민은 물론 인근 옥과·담양·남원·임실 등에서 몰려온 구경꾼들로 시끌벅적거렸다. 바로 옆 미곡 시장에서는 동춘서커스단이 가설무대를 만들어 흥겨운 나팔소리와 줄타기 등의 묘기로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모처럼 시골 아낙네들이 어른들 몰래 밤 외출을 했었다. ()시장에서는 옛 일본인 상사 창고건물을 이용해 영화 등을 상영한 바 있었다.

 

시장에서 군청 가는 길

다시 십자지거리(사거리)에서 군청 방향으로 조금 오다 보면 남은행마을 일본인집(山福·야마후꾸)이 있었다. 해방 이후 경찰서장 관사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그 집 맞은편으로는 기전마을에 농산물검사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은 홍어 음식점으로 변했다. 그 뒤편엔 수경의원이 한때 번성했었다.

조금 위로 오른편 남은행마을엔 사방관리소가 있었다. 지금은 순창군산림조합으로 변했다. 사방관리소 옆 골목길로 들어서면 큰 홰나무 한 그루가 푸른 잎을 피워서 그늘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래서 그 골목을 홰나무고샅이라고 불렀다.

왼편 기전마을에는 높은 의용소방대 망루가 자리 잡고 있어서 사이렌과 종을 달아놓고 불 난 곳을 살피곤 했다. 그 옆으로는 큰 간이건물을 지어놓고 극장이랍시고 영화상영과 연극 공연 등 각종 집회를 열곤 했다. 필자가 학생 시절엔 단체관람으로 콩나물시루같이 좁은 곳에서 영화 등을 감상했다. 당시에는 남녀 좌석이 구분되었다. 옆쪽으로는 김응보 씨가 운영한 순창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의 맥반석목욕탕 자리이다.

 

광주여객 정류장

군청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현 새집음식점 옆에 김 모 씨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약방(김영삼 약방)이 있었다. 그 옆은 광주여객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광주나 대구 쪽으로 가는 버스들이 좁고 포장도 안 된 시가지를 먼지를 펄펄 날리며 누비고 다녔다. 현재의 설패션 옆 화원 자리이다. 여기서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규모가 큰 신씨(申氏) 소유 한옥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중앙로 도로가 뚫리면서 없어지고 전화국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은행나무와 중국음식점

왼편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초가집으로 된 중앙의원이 있었다. 지금의 신용협동조합 자리이다. 그 옆으로는 한참 후인 1972년에 동계 출신 한 모 씨가 설립한 대한극장(현대극장)이 문화생활에 목말랐던 군민들을 위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옆집은 통일교 초창기 포교소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왼편으로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지금은 없어진 남계마을 최 모 씨 집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옛날 옛적 순창 시가지가 바다였다는데 중국 상인이 배를 타고 지나가다가 뿌린 은행 알이 싹을 틔워 수백 년 된 노거수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었다. 은행나무를 벌목할 당시 마을 아주머니들 수십 명이 농성을 벌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끝내 베어내고 말았다.

(경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백합사진관이 손님들을 맞이했다. 뒤 쪽으로 100여 미터 되돌아오면 간선도로변 오른쪽으로 순화마을에는 문화당서점이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鹽田·쇼다)이 초가집에서 전당포를 운영했었다. 지금은 흔적이 없어졌다. 조금 더 올라가면 순창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으로 남계마을에는 금융조합이 있었다. 지금은 옛날 건물은 없어졌고 노인회관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그 옆집은 골목 안쪽에 초가집으로 중국인 곡()씨 형제가 유일하게 중국집을 운영했다. 당시 짜장면한 그릇 먹는 것이 크나큰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옆집으로는 해동의원이라는 병원이 있었다. 그 후 십자의원, 수경의원 등이 계속 병원으로 운영되다가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었다. 지금은 대동의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앞으로 순창농고 창설자인 김영무 선생의 양곡 창고가 있었다. 그 건물에 수리조합이 문을 열었다.

 

순창극장 사거리와 전북여객 정류장

다음은 순창의 두 번째 사거리이다. 왼쪽에 규모가 약간 큰 정미소가 있었고, 사거리에서 경천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1955년 이전한 중앙교회가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다. 강둑을 내려가서 경천을 건너가기 위해서 길이 3미터, 2미터쯤 되는 돌다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교항마을과 풍산면 쪽으로 가는 돌다리였다. 현재 돌다리 일부를 강둑에 꺼내서 전시하고 있는데 돌다리를 복원하면 좋은 관광 상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거리에서 전주 쪽으로 두 번째 뚫린 간선도로(1950년대는 시내에 이 두 길 뿐이었다), 속칭 고추장거리로 전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1913년 설립한 순창읍교회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 관북마을에는 조성순(曺聖淳)이란 분이 일제 말기에 건축한 큰 한옥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맞은편으로는 순창군 교육청이 자리 잡고 있다가 마을금고 건물로 변했고, 지금은 카페가 들어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조금 더 전주 쪽으로 가다보면 전매서가 있었다. 지금의 순정축협 자리이다.

다시 군청 사거리로 가보면 왼편엔 전북여객 정류소가 있어서 전주행 버스가 운행됐다. 오른편으로는 순창경찰서와 순창면사무소, 순창극장(1958년 개관)이 연달아 자리했다. 면사무소는 충신마을로 옮긴 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경찰서 자리는 순창 최초의 아파트로 변신했다. 1958년 개관한 순창극장은 녹원식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 지 오래이다.

면사무소 맞은편엔 일본인(山本·겐지로) 소유 주택이 있었다. 숲이 우거지고 규모도 큰 일본식 주택이어서 지금까지 잘 보존했으면 관광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본 건물에 한때 고등공민학교가 자리 잡고 있던 때도 있었다. 이후 주택을 소유한 고 박남재 화백이 미술관으로 바꾸려고 했다고 하며, 지금은 다세대주택으로 변모했다.

 

등기소와 순창교

등기소는 예나 지금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내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몇 년 전 일본인 관광객이 자기 가족이 등기소에 근무할 때 심었던 소나무라고 하면서 감회에 젖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등기소 뒤편에는 우편국이 있었는데 6.25 때 불타버려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군청 앞 순창교(淳昌橋)는 일제 말기에 순창에 두 개뿐이었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였다. 읍민들은 모두 순창교라는 이름 대신 한다리(큰다리)라고 불렀다. 광주행 버스가 다니던 길로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요새 지은 다리들도 한다리 같이 오래도록 보존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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