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흥초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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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초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
  • 김수현 객원기자
  • 승인 2022.12.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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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초 강순옥 교사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복흥초 강순옥 교사(오른쪽)

 

"출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파티에 간다고 생각하고 입어요!”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구어 길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 가을날. 강순옥 교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고 두근거린다. 강순옥 교사는 복흥초 도움반 교사다. 2002년 팔덕초에서 순창과 인연을 맺었다. 올해 초, 그가 묵고 있는 복흥초 관사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복흥초 자랑, 아이들 자랑, 그림책 이야기, 연극 이야기이야기는 도는 모퉁이마다 우수수 쏟아졌고, 놀라다가 배를 잡고 웃다가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선생님의 삶의 이력으로 넘어가는 대목쯤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잠깐만요! 이 이야기들을 저 혼자 듣는 건 비도덕적이에요!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긴 머리에 고운 차림. 파티에라도 초대받은 듯하다.

특수학교 시절부터 이렇게 입었어요. 특수학교에서는 교사들은 전부 체육복과 운동화 신죠. 아이들과 몸으로 만나거든요. 힘을 쓸 일도 많고 시간을 다투어야 해요. 한순간도 긴장을 놓기 어렵죠. 그런데 아이들이 장애가 있다고 해서 미적 감각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모든 아이가 미적 경험을 원해요.

엄마가 항상 머리를 커트로 짧게 잘라주는 친구가 있었어요. 분노 조절에 어려움이 있어서 공격적일 때가 있었거든요. 교정 신발만 신어야 하는데 이게 색감이나 디자인 감각이라고는 없는 거거든요. 저는 칫솔 하나를 고를 때도 무슨 색을 할래?’ 물었어요. 분홍색을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바지 위에 샤스커트를 입혀주고, 커다란 분홍 리본을 만들어 꽂아주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시간만 나면 거울 앞에 서 있어요. 문제행동을 할 시간이 없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싫어하는 반찬은 죄다 자기 담임 선생님 식판에 옮겨 놓던 학생이 제 긴 머리 향기를 맡더니 제가 주는 반찬을 거부하지 않고 먹는 거예요. 그 뒤로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어요. 집중력이 짧은 친구도 수업 시간에 더 오래 참여해요. 점심시간에 커피를 타주고, 제가 오는 시간에 맞춰 신발을 놓아주기도 해요. 아름다움은 누구나 그렇듯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죠. 학교에 출근할 때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파티에 간다고 생각하고 입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주세요.”

그가 장애아동 특수학교 교사로 부임했을 때 이야기다.

학교에만 오면 교실 모서리에 코를 박고,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친구가 있었어요. 수업을 할 수가 없었죠. 고민하다가 집에서 기르던 토끼를 교실에 데려왔죠. 토끼를 보는 순간, 눈이 커지면서 산토끼!!” 소리치며 달려오는 거예요. 제가 할 일은 옆에서 전자오르간을 치며 산토끼 노래를 불러주는 거죠. 다음 날부터 이 친구는 학교만 오면 교실에 뛰어 들어와요. 화분에 있는 풀을 뜯어서 토끼를 주고요. 이 친구가 채소를 안 먹어 변비가 심한 친구였거든요. 토끼 옆에 오이, 상추를 씻어다 두었죠. ‘산토끼 상추 먹어. 시금치 먹어, 산토끼! 토끼 한 입, 나 한 입하면서 변비도 고쳤어요.

유독 다리가 길고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말을 못했죠. ‘~!’ 이게 그 친구의 유일한 언어였어요. 마침 제가 그때 자음카드 한글학습이라는 교사 연수를 받았어요. 김영생 선생님이라고 당시 순창 장학사였지요. 더딤 학습자의 한글 수업법을 창안하신 분이에요. 아주 혁신적이더라고요. 이분 연수받고 깨달음을 얻어 바로 그 친구와 한글을 공부하기로 했어요.

한글 한 자만 공부하면 농구하러 가기로 했죠. ‘!’ 하니까 따라 해요. 그리고 글자를 보여줬죠. ‘이게 아야.’하니, ‘하더라고요. ‘잘했어! 오늘 공부 끝났어. 농구 하러 가!’. 아이는 신나죠. 자음으로 들어가서는 가글하며 자를 배우고, ‘하하하웃을 때, ‘자를 배우고, 쌍비읍은 뽀뽀하면서 배우고, 유리판을 놓고 해서 입김 생기면 를 배우고요. 물론 하나 배우고 바로 농구하러 보내고요. 이 아이가 동네에 있는 가나다라슈퍼를 보고 읽자 할머니가 감동하셔서 바구니 가득 홍시를 머리에 이고 오신 게 지금도 선명하네요.

저는 늘 부모님들께 말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 관찰하세요. 그리고 그걸 주세요.’ 많은 부모가 자녀의 행동에 불안과 염려의 시선을 가지고 보십니다. 아이가 장애가 있을 때는 더하시지요. 아이가 부족하고, 사고 칠까 봐 아무것도 만지지 마. 하지마하게 됩니다. 뭐든 아이 대신 해줍니다.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요.

아이가 크면 달라질까요? 이런 태도가 아이의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부모만 그렇지 않지요. 사회의 장애에 대한 시선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럴수록 수저도 놓게 하고, 양말도 신게 하고, 신발 끈도 묶게 하라고 합니다. 불완전하게 하면 어때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처음에는 미숙합니다.”

 

예전엔 책을 꺼내면 다 사라졌는데, 지금은 다 모여요.”

그는 그림책 전도사다. 그림책이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고 그림책을 펼친다. 교실뿐 아니다. 교무실, 행정실을 가리지 않는다.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복흥초에서는 이미 익숙한 그림이다.

제가 워낙 책을 좋아했어요. 산책하며 책을 읽는 요령을 알아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아이가 있었어요. 학교에 안 오려고 하고, 와도 수업 시간에 엎드리고 있어요. 체험학습도 안 가요. 학교 오기 싫다고 캐리어 속에 숨어있던 적도 있었어요. 사이가 좋았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상실감으로 많이 힘들어했지요. 죽음에 관한 책을 함께 읽었어요. 아이는 엎드린 채 있었지만 다 듣고 있었어요.

최민경 작가의 십자매 기르기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가 나와요. 죽음에 대해 새롭게 조망하고, ‘다른 집도 죽는구나하며 자기의 경험을 객관화시킬 수 있게 되었던 거죠. 조금씩 털고 일어나더라고요.”

그는 역사 동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근대사를 다룬 책을 읽을 때는, 머리도 하나로 땋고, 검정치마 흰 저고리를 입어요. 코스프레를 하는 거지요. 환경구성의 최고는 담임이잖아요. 책 읽지 않는 아들 때문에 북스타트 연수에 참여했고, 책모임 책톡을 시작했어요. 책 선정부터 아이들과 같이해요. 미리보기로 읽어보고 아이들이 스티커를 붙여 순서를 정하죠. ‘핵폭발 뒤 아이들’, ‘최후의 늑대등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뭐니 뭐니 해도 책과 정이 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모임이다. 쌍치초 아이들과 매주 토요일 4시간 책을 같이 읽고, ‘샛길 새기라는 이름으로 책 관련 활동도 했다. 복흥초 아이들과 책모임에서는 ‘5학년 5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읽고, 순두부 라면을 끓여 먹었다. 같이 장보고 텃밭에서 깻잎 따오고 파 뽑아와 만들어 먹은 순두부 라면의 기억은 아이들이 졸업하고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책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다! 왜냐, 책은 읽을수록 더 찾아 읽게 되고, 나쁜 습관은 자연스레 빠지며, 본 책을 여러 번 읽고, 여러 권 사서 선물하게 된다. 마지막 나누기는? 좋아하는 책은 여럿이 함께 읽고 서로의 삶을 나누게 된다!”

그가 만든 책읽기 응원의 말이다. 그녀의 그림책 수업에는 다양한 전략이 숨어있다. 실제로 그는 재연 연기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녀의 실감나는 재연과 치고 빠지기’(읽어주다가 가장 궁금할 때 책 덮기) 전략에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다.

풍부한 영상 자료와 함께 오브제(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상징물, 여기서는 책 속의 소품)의 활용도 그녀의 전략 가운데 하나다. ‘산이 웃었다그림책에서 아빠가 주인공 딸에게 건넨 하얀 돌, ‘등대 소년그림책에서 벽지를 뜯으면 나오는 벼랑의 돌등 책을 읽다가 눈을 감고 손을 내밀면, 아이들은 책에서 막 꺼낸 것 같은 소품들을 만나게 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것은 책에서 나온 것인가?’

아이들이 그녀의 전략에 넘어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의 시도 때도 없는 그림책 수업은 이제 따로 전략이 필요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책을 꺼내면 다 사라졌는데, 지금은 다 모여요.”

읽기는 자연스레 쓰기로 이어진다.

한 아이가 ‘5학년 5반 아이들온책읽기 숙제를 안 했어요. 물어봤더니, ‘우리 학교 애들도 아니고, 아는 애들 이야기도 아니니까 재미없어서 안 읽었어요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요. 어릴 적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옛날 옛적에 순옥이란 아이가 살고 있었어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얼마나 손에 땀을 쥐고 들었는지 몰라요. 맞는구나 싶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 되는 진짜 우리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를 써가기로 했어요. 처음엔 시시하다고 안 쓴다고 했는데, 지금은 기다려요. 서로에게 다음 편 언제 나와?’하고 묻지요.”

아이들이 써온 시시한(?) 이야기는 반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음호에도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이야기를 계속합니다)

 

‘5-5반 이야기에서 복흥초 아이들이 쓴 시

<시원이의 이야기 - 300살이 넘는다고?>

 

우리 할머니 나이는 92

아빠는 66

엄마는 49

큰누나는 39

작은누나는 37

막내누나는 26

군대 간 베트남 형은 20

나는 8

 

할머니랑 내 나이를

합치면 100살이다.

우리 가족 나이를

다 합치면 337살이다.

 

~~~ 300살이 넘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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