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흥초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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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초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2)
  • 김수현 객원기자
  • 승인 2022.12.21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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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옥 교사
강순옥 교사

 

복흥 출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선생을 연극으로 꾸며

복흥 빵집에서 시작한 교육연극

올해 복흥초는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복흥 출신인 가인 김병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선생을 공부하고 관련 영상을 보고, 생가 길과 낙덕정, 가인연수관을 지역의 주민과 교사, 학생들이 함께했다. 서울 창동 서울가인초등학교에도 가고, 광주 현대사 역사 투어도 했다. 가인과 함께 1년을 산 셈이다. 활동의 꽃은 무엇보다 연극이었다.

“5, 6학년 아이들과 대본 작업부터 했는데, 더딤 아이들이 아주 적극적이었지요. 뿌듯했어요.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간식 먹고 놀면서 해요. 연극이 싫어지게 하면 안 되니까요. 유튜브에 올리니 스스로 보고 연습하는 쪽이에요. ‘친구들 목소리는 잘 들리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작구나하고요. 할수록 아이들이 진지하게 참여하고, 목소리가 커지고 역할에 몰입하는 걸 보면서 기뻤어요. 연극을 하면, 의상을 입고 자연스레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게 되거든요. 연극의 힘이죠.”

그녀는 5년 넘게 교육연극을 공부해왔다. 그 시작은 의외로 복흥의 빵집이다.

우리 마을에는 수녀님들이 만드는 빵집이 있어요. 더딤반 아이들과 빵 만들기 수업했는데 오븐에서 빵이 구워질 동안 책을 같이 읽었죠. 역할을 나눠서 읽어요. 아이들이 빠져들어 읽다 보니 점점 더 실감이 나잖아요. 그러니 연극을 해보자는 거예요. 그러면서 연극으로 아이들이 변하는 걸 보고, 마침 회원 모집을 하고 있던 북금곰 전국교육연극연구회에 원격 연수를 듣고 참여하게 되었지요. 1회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자율연수까지 들었지요.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아이들하고 해보면서 교육연극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틀려도 괜찮아. 무슨 말을 해도 좋아

복흥초 교사들, ‘서로가 서로의 복

우리 끼리는 잘 모르다가도 전학 온 학생들이 밝아졌다는 이야기 들으면 새삼 느껴요. 조용히 묻혀 지냈던 아이인데, 섬세한 관심을 받으면 달라지지요. 시골 학교는 아이들이 줄어드니, 혁신을 할 수밖에 없어요.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을 자연스레 만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틀려도 괜찮아. 무슨 말을 해도 좋아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려면 무슨 말을 해도 야단맞지 않는 안전한 관계여야 하고, 아이들의 말에 의해 실제 바뀌어 갈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죠. 말해봤자 안 바뀌면 말이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아이들이 집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학교라고 말할 때가 제일 보람 있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시도를 해봤는데요. 도움반과 통합학급을 통합했다고 할까요? 통합학급의 더딤 학생들을 더딤반에 오라고 하고, 통합학급 수업에 제가 참여하기도 했어요. 수업을 쫓아가기 어려운 아이들은 더딤반에 와서 한글도 떼고 구구단 떼고요. 통합반에서는 글쓰기, 연극, 활동 수학 교과에서 학습 모둠을 두 개로 만들어서 활동 에이(A), (B)로 나눠 진행했어요. 비공식적인 2교사제를 한 거지요. 성공적이었지요. 학생 처지에서는 학생에게 꼭 맞는 배움이 가능하고, 더 긴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요. 통합반도 훨씬 다양하고 깊게 학습할 수 있고, 특수학습에도 좋은 경험과 자료가 되는 상생적이고, 전국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선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고 교사들 간에 협력적인 분위기, 교장, 교감 선생님도 응원해주시는 복흥초니까 가능했다고 봅니다. 교사들끼리 말해요. 서로가 서로의 복이라고요.”

 

아이를 전주에서 순창으로 전학시켜,

아이는 마을이 키워주고,

교사는 마을을 키운다

 

복흥초 학생들

 

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작은 학교의 힘을 점점 더 느꼈다.

전교생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누가 누구 동생인지, 형편을 서로 알아요.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왜 하게 되었는지 아는 곳이에요. 말 안 하던 애가 말을 하고, 마음 놓고 이야기할 선생님이 있고요. 마을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생태적인 관계라고 할까요. 제 아이를 순창에 데리고 온 이유기도 하죠. 도시 학교에서 애가 평균을 깎아 먹는다, 학원이라도 보내달라는 교사의 말을 듣고 순창으로 데리고 왔어요.

시골 학교에서 삼촌들 비닐하우스 도와드리고, 새참 얻어먹고 오고, 지리산 자전거길 친구들과 다니고, 집에서 밥 먹는 것보다 친구 집에서 먹고 올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자고 오기도 하고요. 교회를 포함해 온 마을이 아이를 키워줬어요. 중학교 때까지 순창에서 다녔어요. 아이는 그때 무지개 오케스트라 활동도 했는데, 그 활동을 계기로 전공도 국악으로 하게 되었죠. 마을이 아이를 키워준 덕분에 저는 제가 필요한 아이들과 있었죠. 누구든 집에서 돌봄이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늦게 오시거나, 아침밥을 못 먹여서 보내시거나 그럴 때, 관사에서 숙제도 하고, 같이 먹고 자고 했어요.”

 

공교육이 나를 키웠다

혜택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터

 

복흥초 학생들

 

인터뷰의 끝자락, 그의 투지와 기개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궁금했다. 그는 장수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제가 동생들 업고 키웠거든요. 아이 업은 채 숙제하다 엄마 젖 먹이러 가다 동생 오줌에 옷이 젖고, 개울에서 동생 기저귀 빨고요. 겨울에는 손이 굽으니까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가지고 가서, 도끼로 얼음을 깨고 빨래했죠. 소나무 가지 부러뜨려가며 아궁이에 불 때고요. 학교도 50분을 걸어 다녔어요.

제가 추위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가려워서 긁다 보면 얼굴이 퉁퉁 부었어요. 너무 부어서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였어요. 읍내에서 아버지가 약을 사 오시면 그거 먹으면 좀 가라앉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할머니들이 물으세요. ‘자네는 몇 살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나?’ 하시죠. 제가 공부 욕심이 많았는데 학교에 보내주시지 않으려고 했어요. 선생님들이 설득해서 겨우 진학했지요.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뚜껑에 밥과 반찬을 모아주었어요.

선생님들이 전과, 참고서, 교사용 지도서를 주셔서 공부했어요. 공교육이 저를 키웠어요. 고등학교 때, 다짐했어요. 내가 받은 혜택,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려준다고요.”

그녀의 학창시절이 자연스레 그녀를 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교사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같이 겪게 됩니다. 동시에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됩니다. 가정폭력이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에 오면 맞은 데 없는지 몸을 일단 살펴봅니다. ‘네 몸에 멍 자국 조금이라도 있어 봐, 내가 바로 신고한다. 나한테는 신고의 의무가 있다!’ 그러면 아이에게서 신뢰의 눈빛을 읽게 돼요. 자신의 편에 서는 어른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는 모양이에요. 상처로 닫힌 마음이 열리고, 조금씩 신뢰로 채워갑니다. 아이들 옆에 있는 게 매일 감사하지요.”

이제 오십 고개를 넘은 그에게 승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생겼다.

승진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승진에 관심이 없어요. 승진이 앞다투어서 가야 할 길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있는 곳이 좋아요.”

승진하기에는 그는 너무 바쁘다. 아이들과 온종일 붙어있어야 하고, 남은 시간에는 동시, 연극, 수학, 그림책 연구회 4개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너무 벅차지 않을까?

즐거워서 하는 사람을 막을 길은 없어요!”

코로나19 유행 이후 공교육의 자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일고 있다. 많은 교육자가 백년지대계 교육, 계몽의 교육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학교가 공부와 함께 일상적 돌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뷰를 마치며 오는 길,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25년 전부터 미래의 교육을 실천해온 강순옥의 오래된 미래 교육과 그 텃밭이 되어온 순창의 미래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편집자) 지난호(615)에 이어 강순옥 교사의 오래된 미래교육를 두차례 연재합니다. 지역의 작은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세요. 작은 마을, 작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이 알려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5-5반이야기'에서 복흥초 아이들이 쓴 시

<경모의 이야기· 317>

 

나는 여덟 살

성모형은 열 살

준모형은 열다섯 살

인모형은 열여섯 살

엄마는 마흔여섯 살

아빠는 쉰일곱 살

할머니는 여든 살

할아버지는 여든다섯 살

 

우리 가족 나이는 317

시원이네 가족은 337

그래서 시원이네가 20(스무 살) 더 많다.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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