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슬로시티 순창’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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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슬로시티 순창’을 상상하며
  • 구준회
  • 승인 2023.02.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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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풍산 두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빨리일 것이다. 아침에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직장에 도착하면 다시 만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고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점심시간에는 붐비는 식당 앞에서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일과를 마치면 콩나물시루와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쯤 되면 빨리빨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의 도시 직장인의 모습이다.

그나마 농촌에서는 느리게 사는 것이 용인되는 듯하다. 만원 버스나 만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는 꽤 상승한다. , 농촌의 하루는 도시의 하루보다 길게 느껴진다. 아마도 천천히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정된 시간을 살고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각자가 느끼는 행복감은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바쁘게 빨리 사는 사람보다, 느리게 천천히 사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높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필자가 10년 전 귀촌을 결정하고 순창으로 이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순창읍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는 청소년들과 어르신들을 자주 목격한다. 천천히 살고 싶어서 순창으로 귀촌한 나조차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그냥 지나가기 일쑤다. 가끔은 멈춰 서서 먼저 건너가시라고 손짓을 하면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자동차가 멈추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귀촌한 이유는 더 있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소속감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 울타리 안에서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모든 것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었다. 심지어 시간까지도.

슬로시티 국제연대좋은 삶을 표방한다. 슬로시티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그 시초에는 슬로푸드 운동이 있다.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탈리아에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1986년에 매장을 열자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지역 고유의 음식을 지키려는 모임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슬로푸드 운동 세가 점차 확장되었고 199910,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키안티 시()의 시장이었던 고() 파울로 사투르니니와 몇몇 도시의 시장들은 운동을 음식에만 국한하지 말고 도시의 삶 전체에 느림을 도입하자는 뜻을 모았다. 이들이 내건 운동 명칭이 이탈리아어로 치타 렌타(Citta Lenta)’ 또는 치타 슬로(Citta Slow)’이다. 영어로 슬로시티(Slow City)’이다.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행복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느린 도시만들기인 슬로시티 운동은 지역이 원래 갖고 있는 고유한 자원(자연환경, 전통산업, 문화, 음식 등)을 지키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 문화·경제를 살리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슬로(slow)는 단순히 빠르다는 패스트(fast)의 반대인 느리다보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을 찾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찾으며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지향한다.

우리나라에도 17개 시·군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슬로시티의 중요한 요건은 지역의 전통과 생태가 보존되어 있는가, 전통 먹거리가 있는가, 지역주민에 의한 다양한 지역 공동체가 전개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순창과 접한 담양군은 창평면을 중심으로 슬로시티에 지정되었다.

순창군은 ’, ‘발효라는 전통과 강천산, 섬진강 등 생태가 보존되고 있으며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전통 먹거리가 있고, 다양한 지역 공동체가 전개·유지되고 있다. 순창의 장점들을 잘 부각시켜 슬로시티 가입을 신청한다면, 시간은 걸릴 수 있겠지만 슬로시티 순창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주적인 삶을 살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현대인의 모습을 보면 주인이라기보다는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고있는 듯하다.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면, 시간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면서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순창이 그러한 꿈이 실현되는 곳이기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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