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3) 뜨개질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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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그림책(3) 뜨개질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 승인 2020.12.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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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바넷 글/존 클라센 그림.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기나긴 겨울이 오면 예전 우리네 어머니들은 뜨개질바늘을 손에 잡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모자며 목도리며 스웨터를 짜기 바빴습니다.
순창으로 이사 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저도 그동안 잊고 지내던 취미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단절된 공간, 갑자기 생긴 여유, 아직은 어딘가 부족한 새집 환경에 뭐라도 해보려고 뜨개바늘을 집어 들었습니다. 바람들어오는 창가에 커튼을 떠서 달고, 낡아빠진 소파를 가려줄 커다란 덮개를 뜨고, 가벼운 장바구니, 핸드폰 주머니, 머리띠, 머리 고무줄에 이르기까지, 시간만 나면 뜨고 또 떴습니다. 작은 소품들은 새집에 찾아오는 손님맞이 선물로 제격이었고 저에게도 나눔의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칙칙하고 추운 마을에 사는 애너벨이 우연히 털실 상자를 발견합니다. 애너벨은 자신의 스웨터를 뜨고, 남은 털실로 강아지 마스에게, 학교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를 비롯한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스웨터를 떠 줍니다. 심지어는 동물들과 집, 나무들까지. 검댕으로 칙칙하던 마을은 알록달록 따뜻한 옷을 입은 마을로 유명하게 되죠. 어느 날, 욕심 많고 어리석은 귀족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줄 테니 상자를 팔라고 했지만 애너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귀족은 도둑을 시켜 털실 상자를 훔쳐내었지만, 열어보니 텅 빈 상자였습니다. 화가 난 귀족은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상자는 다시 흘러흘러  애너벨에게 돌아갑니다. 

애너벨과 귀족에게 털실 상자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애너벨은 타인을 위한 따스한 마음으로 상자를 보았기에 스웨터를 계속 떠도 상자 안에 털실이 남아 있을 수 있었고, 귀족은 상자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에 털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너벨은 우중충한 마을을 알록달록 정감 가는 세상으로 바꾸었고, 귀족은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돈만 날리는 헛된 짓을 한 거죠.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 사람 모두가 털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 할까요? 이처럼 애너벨은 따스한 마음과 뜨개질 솜씨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 오를레브 글/오라에이탄 그림.

또 하나의 그림책 <뜨개질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뜨개질바늘과 털실을 꺼내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뜨기 시작합니다. 춥고 피곤한 발을 위한 슬리퍼부터 시작한 뜨개질은 카펫, 마룻바닥, 그리고 침대, 베개와 시트 등을 뜨면서 점차 아름다운 집이 되어 갑니다. 이윽고 집을 완성한 할머니는 정말 소중한 아이 두 명을 뜨고, ‘마음’까지 떠서 넣어준 후 학교에 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이 '털실로 뜬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아요. 화가 난 할머니는 동사무소와 정부에 따지지만, 아무도 이 아이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처음엔 할머니가 ‘털실로 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 하다니 정신이 온전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털실로 뜬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온전하지 않은 아이들 즉, 장애가 있는 아이들,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의 자녀들, 이런 소외된 아이들이 아닐까요? 할머니는 제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싸웁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뜬 집과 아이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관광객이 몰려들자, 마을 유지들은 부랴부랴 할머니가 뜬 집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화가 난 할머니는 털실을 모두 풀어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귀족이 애너밸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털실 상자만을 욕심내었듯이,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할머니의 집만 소유하고 싶었던 거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너벨이 돌아온 털실 상자로 계속 뜨개질을 하듯이 지금, 이 순간 할머니도 어디선가 뜨개질을 계속하고 있을 거라는 희망입니다. 애너벨이 세상을 따스하게 바꾸었듯이 뜨개질 할머니도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뜨개질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2011년에 자본의 탐욕, 실업, 빈곤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령시위’에 뜨개질하는 할머니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은 당시 햇볕이 잘 드는 광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온종일 모자, 장갑, 목도리, 조끼 등을 떴습니다. 차가운 바닥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시위대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었지요. 할머니들이 시위대를 위해 뜨개질을 시작한 것은 “사랑하는 손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또 애너벨이 마을의 집과 나무에 털실로 짠 옷을 입혀주는 행위도 동상ㆍ가로수 등 공공시설물에 뜨개 덮개를 허가 없이 씌우는 일종의 ‘얀 바빙(뜨개질 폭탄)’으로 보여집니다. 다양한 색채와 패턴으로 이어 붙인 손뜨개는 우리에게 생태ㆍ참여ㆍ공동체 등의 의미를 환기하며 메마른 시설물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화문 광장,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뜨개ㆍ바느질 농성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뜨개질의 기본인 한 코 한 코가 모여서 마음을 나누는 연대의 그물망이 이어져 가는 거죠. 
저도 처음엔 나와 가족을 위해 시작한 소소한 뜨개질이지만 점차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어 가는 ‘작지만 커다란’ 뜨개질이 되기를 꿈꿔 봅니다.   

글 : 김영연 길거리 책방 주인장
전) 에반이즈 사고력교육연구소 연구실장
에반이즈 (언어사고) 초등교재 집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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