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33)구림 금창리 – 한국 근대사 격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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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33)구림 금창리 – 한국 근대사 격전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1.10.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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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산 호랑이’ 양춘영 의병장 배출한 국화촌
전봉준 장군 끌려간 신광사재

금창리는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다. 동쪽으로 안정리, 남쪽으로 방화리와 인접하며, 서쪽으로 쌍치면, 북쪽으로는 정읍 산외면과 경계를 이룬다. 구암면(龜巖面)에 속하던 국화(菊花)황학(黃鶴)창평(昌平)금상(金箱) 4개 마을을 묶고 금상의 자와 창평의 자를 합쳐 금창리(金昌里)로 개편하고 구림면에 소속되었다. 행정리는 황계마을과 금상마을이며, 자연 마을로 국화촌마을과 이율마을이 있다. 2021621일 기준 인구는 59가구, 108(남자 55, 여자 53)명이다.

 

마을 유래

 

금창리는 우리 근대사의 격전지다. 구한말 의병장 양윤숙(양춘영)이 태어난 곳(국화촌)이자, 박경락(朴京洛) 등 많은 의병이 활동했던 곳이다. 피노리에서 체포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이 사실재와 신광사재를 거쳐 순창관아와 담양을 지나 나주관아로 끌려가던 압송로이기도 하다.

황계마을은 누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황계포란(黃鷄抱卵) 형상이다. 토착 성씨는 평산 신씨다. 황계촌, 국화촌, 이율마을 세 마을이 황계마을을 이룬다.

국화촌(국화마을)은 황계촌 뒤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구와촌(狗臥村), 즉 개가 누워 있는 형상의 마을이라고도 한다.

이율마을은 황계촌 앞 마을이다. 두 마리 소라는 뜻에서 이우라고도 불렀다. 소툼벙과 소매봉이라 부르는 곳이 있으며,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란 외와등이라는 지명도 있어 소와의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

금상마을은 쌍치면과 구림면, 정읍군 경계 지점인 신광사재에서 남쪽으로 산맥이 뻗어 내려 산과 물이 서로 얽히어 싸고돌아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초기에 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최초로 터를 잡았다고 하며, 평산 신씨남원 양씨여진 양씨가 토착 성씨다. 마을 부근에 금이 나온다 하여 이름을 금상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마을 지형이 금반(金盤) 형상이므로 금상굴이라 했다는 설도 있지만 풍수지리적으로는 행주형지세(배 형국)라 한다.

황계마을 전경
국화촌 전경
이율마을 전경
금상마을 전경

 

험준한 자연지형

 

금창리는 큰 산들로 둘러싸인 험준한 고개와 계곡이 많다.

이율마을에서 서북쪽으로 가는 산이 벌통산(689m)이고, 금상골 남쪽에 있는 산이 두루봉이다. 투구봉(706m)은 국화촌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장군이 쓴 투구 형상이라고 한다. 덕가리봉은 이율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병아리를 가두어 기르는 도구 형상이다.

고개도 많은데 매봉재물더미재당산재민재뛰엄재사실재솔개재 등이 있다. 특히 신광사재(570m)는 금상골에서 쌍치면 용전리 먹산리로 가는 고개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全琫準)이 압송되어 넘어간 길이다.

바위 이름도 독특하다. ‘공구밭굴은 큰 바위가 공처럼 생겨서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랑이 잠깐 사모를 벗어 놓고 물을 마시는 형국인 사모바위도 있다. 꿩 구워먹은 바위얼음바위삼형제바위가마바위범바위 등에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금창리에서 발원하는 물들은 하천을 형성하며 금상마을 앞에서 합수된다. 금상리 하천은 옛날부터 금이 채취된다 하여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물은 황계촌과 베틀아우를 지나 안정리로 흘러서 섬진강으로 합수된다.

신광사재 - 산능선 라희봉고지 너머 쌍치 피노리가 보인다.

 

금상마을 탑제

 

금상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행주형 지세’(배 형국)이다. 마을 터가 떠나가는 배() 형상과 같다는 것이다. 배가 흔들리지 않고 항진하려면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래서 마을 앞에 돌탑을 조성해 놓았다. 지기를 누르는 돛대 기능을 하는 짐대도 매년 세우고 있다. 우물을 파면 배 바닥에 구멍이 생겨 물이 차서 침몰한다고 하여 예전에는 개인적으로 집에 우물을 파지 않고 공동우물을 사용하거나 계곡물을 이용해 왔다고 한다.

금상마을 돌탑은 마을 터의 지기를 눌러줄 목적으로 조성한 압승형 돌탑이다. 원래 돌탑은 마을 어귀에 할아버지탑(영감)과 할머니(할멈)2기가 있었으나, 할아버지탑은 소실되고 현재는 할머니탑만 있다.

금상마을 돌탑은 원추형 돌탑이라 할 수 있다. 냇돌을 둥글게 쌓아 올리면서 위쪽으로 좁아지는 형태인데, 돌탑 상단에 1~3기의 선돌을 세워 놓았다. 돌탑 규모는 높이 170, 310이다. 돌탑 위 입석은 각각 높이 70, 20, 두께 25와 높이 50, 25, 두께 15이다. 돌탑 주위로 짐대가 세워져 있다.

금상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1일에 탑제를 지낸다. 2월 초하루는 영등날이고 영등할머니가 오신다는 날이다. 마을 주민들은 탑할머니를 영등할머니로 믿고 있으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할머니탑제를 거행한다.

금상마을 탑제는 할머니탑에서 탑제와 짐대제를 병행한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탑제와 짐대제와 영등제를 함께 지낸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짐대는 마을 뒷산에서 곧게 뻗은 소나무를 베어 나뭇가지로 오리 형상을 만들어 짐대 끝에 올려 고정시켜 완성한다. 짐대제를 지낼 때 오리의 머리 방향을 매년 안팎으로 교차해 세워 놓는다. 머리 방향을 마을 안쪽을 향해 세워 놓는 것은 마을에 풍요와 안녕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의미가 있고, 머리 방향을 마을 밖으로 향해 세우는 것은 마을에 묵은 재앙과 낡은 것을 마을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의미가 있다.

금상마을 돌탑과 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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