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제막급/ 자신의 배꼽을 물며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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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제막급/ 자신의 배꼽을 물며 후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1.12.2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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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섭 박사

서제막급(噬臍莫及, shì qí mò jí)

씹을 서, 배꼽 제, 말 막, 미칠 급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온다.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

 

나름 학력과 경력을 갖춘 그에게 지역구 국회의원님이 은밀한 조건을 내며 군수 공천을 주겠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들이 아사리 판에 뛰어드는 거라며 극구 말렸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가문의 영광을 놓칠 수 없다며 덥석 잡았다. 그 이튿날부터 문중, 마을, 동창회, 부녀회 등 온갖 회장들을 찾아 100도로 허리를 굽히고 술을 마시며 억지웃음을 보여야했다.

얼마 후 몇 십 표로부터 수백 표를 가져오겠다고 장담하는 사람들, 이른 바 파리 떼들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과 밭, 아내가 알탕갈탕(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하여 이뤄 놓은 서울 아파트와 상가가 넘어가고 있었다. 투표 3일전 유력한 표 잡이가 또 큰 손을 벌렸다. ‘선산이라도 담보로 해 대출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가 머뭇거리자, ‘자기 명단을 갖고 건너편으로 가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한 표가 아쉬운 마당에 어찌하겠는가? 이튿날 오후 거액이 날아갔다.

이전투구 속에 겨우 당선이 되었다. 선거자금을 출납한 외사촌 동생을 비서실장으로 앉히고 도와 준 간부들에게 논공행상하였다. 실장이 지역 내 온갖 토목사업 등 이권사업과 관내 직원의 채용·승진·이동을 그려내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임기 6개월이 남은 어느 날 재선 공천을 못 받게 된 그에게 엎친 데 덮쳐 지검(地檢)의 출두명령이 떨어졌다.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고, 주사 세 사람이 돈을 주었는데 사무관 진급을 안 시켜 주었다고 투서를 내었으며, 토목공사를 하게 해주고 20%도 더 떼어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실적을 올리려는 지검의 열성 검사가 침소봉대하여 그를 구속기소하였다. 영어(囹圄)의 몸이 된 그를 찾아 온 아내 앞에서 그는 서제막급하며 통곡하였지만, 옛적 단란했던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중국 춘추시대(BC770-BC221) 초기, ()나라 문왕(文王)이 신()나라를 토벌하러 나섰다. 신을 치기 위해서는 등()나라를 지나가야 하므로 문왕이 등나라 기후(祈侯)에게 통과를 요청하였다. 기후는 조카가 왔다면서 문왕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이에 추생(騶甥담생(聃甥양생(養甥)이 기후 앞으로 나가 간언하였다.

저희들이 보건데 저 문왕은 머잖은 장래에 반드시 전하에게 칼끝을 겨누고 달려들 것입니다.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훗날 크게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향노루가 자신의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닿지 않는데 그 땐 어쩌겠습니까.”

문왕은 내 조카인데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과인이 만일 조카를 해친다면 과인이 먹다 남긴 음식은 그대로 남을 걸세. 사람들이 나의 불의를 미워하여 제사도 지내 주지 않을 것이야.”

저희들의 간언을 귀담아 듣지 않으시면 사직(社稷)이 남아나지 못할 것이 뻔한데, 전하께서 잡수시고 남길 음식이 어디 있단 말씀입니까?”

그래도 기후는 끝내 세 충신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연회까지 베풀며 문왕을 접대했다.

그러나 얄팍한 인정을 과신하여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던 등나라는 십년 후 문왕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 성어는 사람에게 붙잡힌 사향노루가 자신의 배꼽에서 나는 사향 냄새 때문에 붙잡힌 줄로 여겨 자신의 배꼽을 물어뜯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후회하기 전에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말로 쓰였다. 우리가 흔히 쓰는 후회막급(後悔莫及)과 유사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일이 다가오니 온갖 사람들이 자천타천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 4100여 명의 자리를 놓고 적어도 다섯 배 열 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군수 자리? 53낙은 이미 오래 전 옛말이 되었다. 인품과 능력은 보이지 않고 재력이 있고 떼거리를 잘 끌고 다니는 자들이 날뛰고 있다. 시중에 떠도는 두꺼운 얼굴에 허리를 꺾고 지내며 조폭두목을 능가하는 권모술수를 가져야 당선된다는 얘기가 헛말이 아닌 것 같다.

이미 이를 알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분은 현명한 것이고, 중도에 하차한 분은 그나마 다행이고, 마지막 경선까지 갔다가 돈과 명예를 잃은 분은 불행 중 다행한 편이다. 하지만 일부 현직들은 지금도 언제 어떤 자가 나타나 양심고백을 하거나 삼인성호(三人成虎)하여 갑자기 갇힌 몸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뒤늦게야 서제막급하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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